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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카를로스 양위 특집]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 :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

엘아라 2014. 6. 1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위키에 사진이 없어요..ㅠ.ㅠ

어흑..왜만하면 위키 사진을 가져오고 싶은데..ㅠ.ㅠ


[후안 카를로스 양위 특집]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 :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




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

바르셀로나 백작부인 마리아 메르세데스

Princess María Mercedes of Bourbon-Two Sicilies, Infanta of Spain, Countess of Barcelona

(Spanish: Doña María de las Mercedes Cristina Genara Isabel Luisa Carolina Victoria y Todos los Santos de Borbón-Dos Sicilias y Orléans )

( 23 December 1910 – 2 January 2000)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인 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는 부르봉-양시칠리의 카를로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루이즈 도를레앙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의 아버지인 카를로는 양시칠리의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손자로 그의 백부인 프란체스코 2세는 양시칠리의 마지막 국왕이었죠. 또 프란체스코 2세와 또다른 백부인 루이지는 모두 시씨황후의 여동생들과 결혼했었습니다. 결국 양시칠리 가문의 수장 지위는 카를로의 형인 페르디난도가 이어받게 됩니다. 재미난것은 카를로의 첫번째 부인이 바로 알폰소 13세의 누나였던 인판타 메르세데스였다는 것입니다.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에스파냐 왕위계승자를 의미하는 "아스투리아스 여공"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이때문에 그녀의 남편인 카를로 역시 "인판타"칭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미난것은 그가 재혼한 뒤에 태어난 자녀들도 인판타/인판테 칭호를 쓴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아버지인 카를로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인판타 메르세데스와 둘의 자녀들

다시 말해서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이복 언니 오빠들은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남편인 후안과 사촌지간이었습니다.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어머니인 루이즈 도를레앙은 파리 백작인 앙리와 그의 부인인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라 도를레앙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앙리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필리프의 손자였었죠. 재미난것은 루이즈 도를레앙의 어머니 역시 에스파냐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루이즈 도를레앙의 어머니인 인판타 마리아 이사벨라는 에스파냐의 이사벨2세의 여동생이었고 이때문에 인판타 칭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이즈 도를레앙의 이모는 알폰소 12세의 첫번재 아내이기도 했었으며, 루이즈 도를레앙의 언니들은 포르투갈 왕비,아오스타 공작부인등이었습니다.


루이즈 도를레앙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어머니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아버지인 카를로는 에스파냐 해군으로 복무했었으며 이때문에 마리아 메르체데스도 에스파냐에서 살았었죠. 특히 그녀는 여섯살 많은 이복언니인 인판타 이사벨 알폰사와 함께 기숙학교에 있었으며, 방학때는 어머니와 함게 지냈기에 에스파냐어는 물론 프랑스어도 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31년 에스파냐가 공화국이 되면서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가족들 역시 에스파냐를 떠나야했었으며 외가가 있는 프랑스로 가게 됩니다.


마리아 메르체데스는 1935년 알폰소 13세의 딸인 인판타 베아트리스의 결혼식에 참석했으며 여기에서 베아트리스의 동생인 인판테 후안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후안은 이미 아버지 알폰소 13세의 후계자였었죠. 마리아 메르체데스의 가족관계나 배경은 에스파냐 국왕이 될지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둘은 만난해에 결혼하게 되죠



후안과 마리아 메르체데스


마리아 메르체데스는 에스파냐 왕위계승 요구자의 아내으며 그녀역시 에스파냐에서 태어났지만 에스파냐를 마음대로 갈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결혼초에는 이탈리아에서 2차대전때는 스위스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포르투갈에서 살았었죠. 몇번의 가족행사(아버지의 장례식이나 손자손녀의 세례식)정도에만 에스파냐에 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메르체데스는 남편인 후안과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후안은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카 프랑코의 말에 충실한 인물이 될것을 우려했었죠. 반면 후안 카를로스는 프랑코와 사이가 나쁜 아버지 때문에 그의 지위가 불안한것을 걱정했었습니다. 특히 프랑코의 외손녀가 후안의 사촌과 결혼하면서 상황은 더 위태로웠죠. 이런 상황은 부자사이에 불화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중재한것이 바로 마리아 메르체데스였다고 합니다.



시어머니 에나 왕비와 남편 후안과 함께 있는 바르셀로나 백작부인


1976년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가 국왕이 된 1년뒤에 후안과 마리아 메르체데스는 에스파냐로 돌아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해에 후안은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아들에게 지위를 물려줬었죠.  그리고 남편이 죽은 7년후인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남편곁에 묻혔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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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http://www.pinterest.com/pin/2823898391077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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