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양위 특집으로 뭘할까 고민했는데 에스파냐 왕비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너무 많으니까 따로 할려고 생각중이고...에스파냐 공주들도 마찬가지고..ㅠ.ㅠ결국 에스파냐 근현대사쪽으로 해야하는데 사실 제가 살아있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보니...--;;;;
그래서 일단 후안 카를로스의 부모 이야기를 좀해보고, 형제자매들이야기도 해보고(알폰소 이야기를 해야할것같아서 말입니다.) 다음으로 대충 에스파냐의 복잡한 정치 상황이 시작된 원인중 하나인 페르디난트 7세가 이사벨2세에게 왕위를 물려준 이야기좀 하고 그래야겠습니다.-0-;;;;;
아 하는김에 조제프 보나파르트 이야기도 좀 하던가 그러구요. 대충 생각나는대로 해볼까합니다만 뭐 지금 생각으로는 즉위식전에는 몇편 안하고 끝내도 될듯합니다.-0-;;;
[후안 카를로스 양위 특집]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 후안 카를로스의 아버지
에스파냐의 후안
인판테 후안
바르셀로나 백작
Infante Juan of Spain, Count of Barcelona
(Juan Carlos Teresa Silverio Alfonso de Borbón y Battenberg)
(20 June 1913 – 1 April 1993),
인판테 후안은 에스파냐의 국왕인 알폰소 13세와 그의 부인인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에나)의 셋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후안의 아버지 알폰소 13세는 에스파냐 국왕인 알폰소 12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의 아들로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그가 성인이 될떄까지 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가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렸었죠. 후안의 어머니인 에나 왕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로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와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의 딸이었죠. 평생 어머니 곁에 지냈던 베아트리스 공주 였기에 에나 역시 빅토리아 여왕이 죽을때까지 여왕과 함께 지냈었습니다. 바텐베르크 가문 출신이라서 필립공의 어머니인 앨리스 왕자비와 앨리스의 동생인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와 사촌관계이기도 했었습니다.
알폰소 13세는 처음에는 사랑에 빠져 에나와 결혼했지만 여러가지 문제 특히 혈우병 보인자였던 에나가 아이들에게 혈우병을 물려줬다고 여겨서 아내를 매우 비난했으며 대놓고 여러여자들과 연애질을 했었죠. 에나는 늘 참았지만 결국 망명중 남편이 친구들과 헤어지라고 요구하자 그를 거절했고 이후 남편과 평생 함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폰소 13세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를 떠나버린 아내를 죽을때조차도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안의 부모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에나)와 에스파냐의 알폰소 13세
1931년 에스파냐 왕실을 망명을 떠나야했으며 후안 역시 가족들과 함께 망명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전까지 그는 에스파냐 해군 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망명생활을 하게 되므로써 그는 결국 에스파냐 해군이 될수 없었죠. 대신 그는 후에 영국 해군에 들어가 사관후보생의 생활을 마저하게 됩니다.
후안의 위로 두 형인 알폰소와 하이메가 있었기에 그는 왕위계승자가 될 가능성이 적어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큰형이자 아스투리아스공인 알폰소는 혈우병 환자였으며 하이메는 어린시절 수술이 잘못되어서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죠. 1933년 큰형인 알폰소가 귀천상혼하면서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고, 그의 둘째형인 하이메 역시 자신의 왕위계승권을 포기합니다. 이때문에 후안이 알폰소 13세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됩니다. 하지만 에스파냐 왕실은 망명중이었으며 언제 돌아갈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1935년 후안은 영국 해군 장교가 되는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가 정식 영국 해군이 되려면 에스파냐 국적을 포기해야했는데 그 당시 후안은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였기에 비록 망명중이라고 하더라도 국적을 포기할수가 없었죠. 결국 그는 영국 해군의 길을 포기합니다.
에나 왕비와 여섯 아이들
저중 장남과 막내는 혈우병환자였고 둘째는 귀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왼쪽에 베아트리스 공주 닮은 소녀가 마리아 크리스티나고 오른쪽에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 닮은 소녀가 베아트리스입니다. 후안은 앞에 어린 두 소년중 키큰쪽입니다.
1935년 1월 누나인 인판타 베아트리스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그는 미래의 아내가 될 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그해 10월에 결혼했었죠. 둘사이에서는 모두 네명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중 장남이 바로 에스파냐의 국왕이 되는 후안 카를로스였었죠.
둘은 결혼후 칸느와 로마에서 살았으며,2차대전이 일어났을때는 후안의 어머니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가 살고 있던 로잔에서 살았고 이후에는 포르투갈에서 거주했었습니다.
후안과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
후안은 두 형들이 계승권을 포기한 1933년 이후부터 알폰소 13세의 후계자가 되었었고 에스파냐에 왕정을 복고하기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1936년 알폰소 13세는 후안을 에스파냐로 보내 왕정 복고를 위한 봉기를 일으키려했지만 후안은 에스파냐와 프랑스 국경 근처에서 잡혔으며 돌려보내졌었습니다. 이후 후안의 왕위계승권을 확고하게하기 위해 알폰소 13세는 죽기 한달전 자신의 국왕(왕위계승요구자)지위를 아들인 후안에게 물려줍니다. 그리고 후안은 아버지가 죽은뒤 왕위계승요구자로 "바르셀로나 백작"칭호를 썼습니다. 이 바르셀로나 백작은 에스파냐 국왕이 가지는 다른 지위중 하나로 다시 말해서 그가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죠.(오를레앙 가문의 수장이 파리 백작 칭호를 쓰는것과 같은것이라고 보면됩니다.)
1959년 후안
에스파냐를 통치하던 프랑코는 1947년 왕정 복고를 약속합니다만 그는 후안을 왕위계승자로 두지 않습니다. 후안은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프랑코식 독재를 반대했었기에 그가 국왕이 된다면 프랑코가 유지하고 있었던 군부의 통치에 의한 독재가 아니라 민간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일을 할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죠. 결국 프랑코는 후안이 아니라 후안의 장남인 후안 카를로스를 자신의 후계자이자 에스파냐 국왕이 될 인물로 결정합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는 후안과 프랑코 사이를 매우 나쁘게 했으며 그 중간에 끼인 후안 카를로스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재미난것은 프랑코와 후안 둘다 후안 카를로스가 에스파냐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기여할것이라고 그다지 예상하지 못했었던듯합니다. 그렇기에 프랑코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후안 카를로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후안은 아들이 국왕이 된지 2년후에야 드디어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가문의 수장으로써의 지위를 아들에게 넘겨주게 되죠.
1977년 후안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아들인 후안 카를로스에게 넘겨줬으며 후안 카를로스는 이런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바르셀로나 백작"칭호를 부여합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파냐 국왕들만이 쓸수 있는 바르셀로나 백작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아버지의 권리가 정당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것이었죠. 그리고 몇가지 명예를 더 얻는데 그중에는 에스파냐 해군의 명예 사령관의 지위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후안
후안은 1980년 후두암 진단을 받았으며 1993년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사망후 그는 에스파냐의 국왕 "후안 3세"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 국왕들의 묘지인 엘에스코리알에 묻혔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3.http://www.pinterest.com/pin/178032991492164551/
4.http://erhj.blogspot.kr/2013/06/spain-centennial-of-count-of-barcelona.html
'쓰고있는글들 > 화요일 : 에스파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안 카를로스 양위 특집] 인판타 마르가리타 : 후안 카를로스의 여동생 (2) | 2014.06.19 |
---|---|
[후안 카를로스 양위 특집] 인판타 필라르 : 후안 카를로스의 누나 (0) | 2014.06.18 |
[후안 카를로스 양위 특집]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체데스 :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 (0) | 2014.06.17 |
후안 카를로스 국왕 양위 특집 : 1981년 2월 에스파냐 군부의 쿠데타 시도 (23F) (0) | 2014.06.04 |
인판타 카타리나 미카엘라 : 펠리페 2세의 딸 (0) | 2012.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