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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7) 마리 고댕 : 프랑수아 1세의 정부

엘아라 2014. 5.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수아 1세이전의 국왕들은 정부들 자료가 잘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자료 많은 사람들 하기로 했습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7) 마리 고댕 : 프랑수아 1세의 정부

 

 

Marie Gaudin

(1490 or 1495 -1580)

 

마리 고댕은 투르(프랑스 서쪽 지방의 도시)의 시장이었던 빅토르 고댕과 그의 부인인 아녜스 모랭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출생 연도는 1490년 내지 1495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1510년 Givray의 영주였던 필리베르 바부와 결혼했으며 둘사이에는 적어도 여덟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마리 고댕은 당대 최고의 미녀로 알려져있었으며 이때문에 그녀는 곧 프랑수아 1세의 첫번째 정부가 됩니다. 그녀가 정부가 되면서 그녀의 남편 역시 지위가 높아지는데 마리의 남편은 프랑수아 1세의 재정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의 지위는 그녀 가문의 소유인 라 부르데지에르 성을 짓는데 국왕이 도움을 주게 만들었습니다.

 

 

라 부르데지에르 성

17세기

 

마리 부부는 메디치 가문 사람들과 연결이 되는데 특히 그녀의 아름다움에 교황 레오 10세가 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프랑수아 1세는 자신의 아름다운 정부를 기꺼이 레오 10세에게 소개 시켜줬으며 레오 10세는 그녀에게 정표를 남겨주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프랑수아 1세

1515년

 

이후 그녀는 레오 10세의 사촌이었던 클레멘스 7세는 물론 프랑수아 1세의 숙적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도 관계가 있었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이런 인연으로 그녀는 후에 카를 5세의 누나인 레오노르가 프랑수아 1세와 결혼한뒤 그녀의 시녀로 다시 프랑수아 1세의 궁정으로 돌아갔고 왕비의 시녀로 오래도록 일을 했다고 합니다.

 

 

사촌들인 추기경들과 함께 있는 레오 10세

왼쪽이 줄리오 데 메데치로 후에 교황 클레멘트 7세가 됩니다.

 

 

마리 고댕은 매우 장수해서 1580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재미난 사실은 마리의 아들인 장 바부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시녀와 결혼해서 열다섯명이를 낳았는데 장의 딸인 프랑수아즈는 앙투안 데스트레와 결혼했고 프랑수아즈와 앙투안의 딸이 바로 앙리 4세의 정부중 제일 유명한 인물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입니다. 결국 가브리엘 데스트레는 마리 고댕의 증손녀죠.

 

 


 

자료출처

http://favoritesroyales.canalblog.com/archives/2011/05/05/21062143.html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