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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후손들....(5) 아녜스 소렐과 샤를 7세의 후손

엘아라 2014. 5.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읽다가 보니 아녜스 소렐의 후손들이 결국 왕가와 연결이 되네요.

그래서 그냥 이 연결고리를 찾아봤습니다.


정부들과 후손들....(5) 아녜스 소렐과 샤를 7세의 후손



아녜스 소렐


아녜스 소렐과 샤를 7세의 딸들은 샤를 7세에 의해서 적자로 인정되었으며 이때문에 귀족가문으로 시집갈수 있었습니다. 그중 둘째딸인 샤를로트는 노르망디의 총괄 책임자쯤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자크 드 브레제와 결혼합니다. 샤를로트와 자크 드 브레제 사이에서는 여러아이가 태어났는데 1477년 자크 드 브레제는 아내가 자신과 함께 자란 형제 같은이와 간통한것을 발견하고 둘을 살해합니다. 그후에 자크 드 브레제는 루이 11세에 의해서 감옥에 갇혔으며 아이들은 후견인에게 양육됩니다. 자크 드 브레제는 루이 11세가 죽은 뒤에 샤를 8세에 의해서 풀려나게 되죠.


샤를로트 드 발루아의 장남인 루이 드 브레제는 아버지의 뒤를 여러지위를 이어 받았었습니다.  그는 50대였던 1515년 자신보다 30살이상 어린 15살의 디안 드 푸아티에를 두번째 아내로 맞습니다. 루이 드 브레제는 곱추여서 그다지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디안 드 푸아티에와 그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디안 드 푸아티에는 남편이 죽은뒤에 궁정에서 정부로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루이 드 브레제는 1520년대 프랑수아 1세에 대한 음모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아마도 그는 이것을 국왕에게 알렸었던듯한데 문제는 이 음모에 장인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는 무사했으며 1531년 사망했습니다.디안 드 푸아티에와의 사이에서는 프랑수아즈와 루이즈 두딸이 있었습니다.



루이 드 브레제

아녜스 소렐의 외손자

디안 드 푸아티에의 남편


프랑수아즈 드 브레제는 부이용 공작이자 프랑스 육군 원수였던 로베르토 4세 드 라 마르크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과 둘의 후손들은 프랑스의 고위 귀족가문과 연결됩니다. 부이용 가문은 남성후계자가 단절되어서 여성상속자를 통해서 가문이 여러번 바뀌지만 결국은 프랑수아즈의 후손들이기도 합니다.

 


프랑수아즈 드 브레제


루이즈 드 브레제는 오말 공작인 클로드 드 로렌과 결혼합니다. 오말 공작은 기즈 공작 클로드 드 로렌과 그의 부인인 마리 드 부르봉의 아들로 오말 공작의 누나는 바로 스코틀랜드의 왕비이자 메리 스튜어트의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였습니다.  이 루이즈의 손녀인 안 드 로렌은 오말 공작가문의 상속녀로 느무르 공작인 앙리 드 사보이와 결혼합니다. 


오말 공작 

클로드 드 로렌

루이즈 드 브레제의 남편



안 드 로렌과 앙리 드 사보이의 자녀들중 샤를 아메데에게만 두명의 딸이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재미난 것은 샤를 아메데의 아내인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은 앙리 4세와 가브리엘 데스테의 손녀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샤를 아메데의 첫째딸인 마드무아젤 드 느무르라고 불렸던 마리-잔-바티스트는 사보이 공작이었던 카를로 엠마누엘레 2세 디 사보이아와 결혼합니다. 이 결과 이후 사르데냐 왕국의 국왕은 마리-잔의 후손이며 결국 이탈리아 왕가 역시 이 마리-잔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샤를 아메데의 둘째딸인 마드무아젤 도말라고 불렸던 마리 프랑수아 엘리자베트는 포르투갈의 왕비로 알퐁소 4세와 결혼했다가 결혼무효화한뒤 그의 동생인 페드루 2세와결혼했었죠. 그녀는 딸만 한명 있었고 그 딸도 결혼전 사망했습니다.

 


마드무아젤 느무르와 마드무아젤 도말

마리 잔 바티스트는 사보이 공작과 결혼했고 그녀의 후손은 이탈리아 왕가를 형성합니다.

마드무아젤 도말은 포르투갈 왕비가 되지만 그녀의 외동딸은 후손없이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