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정부들은 많은데 자료가 없군요.ㅠ.ㅠ
정부들과 그후손들...(9) 안 드 피셀루 데일리 : 프랑수아 1세의 정부
안 드 피셀루 데일리
에탕프 공작부인
Anna Jeanne de Pisseleu d'Heilly,
(1508 – 1580),
안 드 피셀루는 에일리의 영주였던 아드리엥 드 피셀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문은 피카르디의 오래된 귀족가문이었지만 안이 태어났을때는 그다지 보잘것없는 가문이었다고 합니다.
안은 1522년 이전에 궁정으로 왔는데 처음에는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인 사보이의 루이즈의 시녀로 일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안이 국왕의 마음에 든것은 그녀가 18살때인 1526년경으로 추정합니다. 프랑수아 1세는 1525년 황제 카를 5세의 포로가 되어서 마드리드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카를 5세의 고모인 마르가레테와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인 루이즈가 협정을 체결해서 프랑스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마르가레테는 어린시절 프랑스 궁정에서 살아서 루이즈를 잘 알았을뿐만 아니라 마르가레테의 마지막 남편이 바로 루이즈의 남동생이기도 했었습니다.)아마도 프랑수아 1세는 마드리드에서 되돌아 온 뒤 안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녀와 연애관계가 된듯합니다.
프랑수아 1세
이때 프랑수아 1세에게는 이미 공식 정부인 마담 드 샤토브리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두 여인은 국왕의 총애를 두고 다퉜습니다. 아마도 푸아 가문을 좋아하지 않았던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 루이즈는 안이 아들의 정부가 되길 바랬을듯합니다. 어쨌든 1528년 마담 드 샤토브리앙이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면서 궁정에서 은퇴하므로써 안은 이제 국왕의 공식 정부가 됩니다.
마담 드 샤토브리앙
프랑수아즈 드 푸아
프랑수아 1세의 정부
안은 다른 많은 프랑수아 1세의 연인들처럼 지적이었으며 위트있었고 예쁘고 밝은 성품이었다고 합니다. 안에 대해서 "아름다운 여성중 가장 많이 배웠으며, 많이 배운 여성중 가장 아름답다"라는 평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안은 그녀의 선임이었던 마담 드 샤토브리앙보다 궁정에서 훨씬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복잡한 정치적 상황때문이었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카를 5세의 누나인 레오노르를 아내로 맞이해야했습니다. 이것 역시 협정에 일부였는데 프랑수아는 이 상황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했고 아내인 레오노르를 대놓고 무시합니다. 물론 오래도록 프랑스 궁정에서 왕비의 권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긴했었지만, 프랑수아 1세는 대놓고 정부를 더 대접하므로써 레오노르를 무시했었던 것이죠. 이때문에 안은 왕비와 맞먹는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1530년 레오노르가 파리에 입성했을때 프랑수아 이 모습을 안과 함께 지켜보기도 했었습니다.
인판타 레오노르
카를 5세의 누나이자 프랑수아 1세의 두번째 아내
1533년 프랑수아는 안을 팡티에브르 백작인 장 4세 드 브로스와 결혼시킵니다. 장 4세는 안과 결혼하면서 에탕프 공작지위를 하사받았고 안은 이제 에탕프 공작부인이 되죠.
프랑수아 1세의 정부로써 안의 궁정내 지위는 확고했으며 이때문에 프랑수아 1세 치세 말년이 되어가면서 그녀의 권력은 강화됩니다. 안은 이런 권력을 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충실합니다. 외삼촌인 앙투안 Sanguin을 추기경으로 만들죠. 그리고 성직자였던 형제 세명을 모두 주교로 만들었고 자매들은 수녀원장으로 만듭니다. 또 미혼이었던 여동생에게 좋은 혼처를 알아봐주기도 합니다.
안의 남편
팡티에브르 백작 장 4세
에탕프 공작
하지만 궁정내에서 안과 권력을 다투던 여성이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도팽 앙리의 총애를 받던 디안 드 푸아티에가 안의 경쟁자였죠. 안은 디안과 경쟁구도가 되자 정치적으로도 디안이 지지하는 인물과 다른 인물을 지지했고 이런 상황은 안에게 권력이 더 강화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안은 신교도들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인 입장이었으며 이것은 프랑수아 1세의 누이이자 나바라의 왕비인 마르거리트와의 관계가 좋았던것과도 연결될듯합니다.
디안 드 푸아티에
앙리2세의 정부
이런 안의 권력은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총애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결국 프랑수아 1세가 사망한뒤인 1547년 안은 궁정에서 추방당하고 디안 드 푸아티에가 궁정의 권력을 차지하게 됩니다. 안은 황제 카를 5세와 결탁한 반역자라는 판결을 받은뒤 추방당하죠. 디안 드 푸아티에는 안의 남편이 국왕에게서 받은 지위인 "에동프 공작 지위"마저 뺏았습니다. 안과 안의 남편인 장은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후 앙리 2세가 사망하고 디안 드 푸아티에가 몰락하면서 안의 남편은 다시 에동프 공작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안은 반역자라는 오명을 없애길 원했는데 앙리 3세때 그것이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안 드 피셀루
에탕프 공작부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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