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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0) 디안 드 푸아티에 : 프랑스의 앙리 2세의 정부(첫번째)

엘아라 2014. 7.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수아 1세 정부들 더 할려고 했는데 영어 자료가 없어서 그냥 때려치기로 했습니다.

메리 불린이 있긴 한데 메리 불린은 헨리 8세 할때 하도록 하죠..ㅎㅎㅎㅎ(언제할지는 알수 없지만 말입니다.)


앙리 2세의 정부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물론 앙리 2세 시절에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여성은 바로 디안 드 푸아티에였죠. 하지만 디안 말고도 다른 여자들과도 연애질을 했으며 사생아도 몇명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뭐랄까 다른 여성들과의 사이는 그냥 잠시 잠깐의 연애질 정도고 늘 디안의 품안으로 돌아가는것이...(물론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는 그냥 왕위계승자를 얻기 위해 결혼한 사람..ㅠ.ㅠ)  

하여튼 앙리 2세의 정부들중 제일 유명하고 영향력이 컸던 디안 드 푸아티에부터 해봐야겠죠.-0-;;;


정부들과 그 후손들...(10) 디안 드 푸아티에 : 프랑스의 앙리 2세의 정부(첫번째)




디안 드 푸아티에

생발리에르 여백작

에탕프 여공작

발렌티누아 여공작

Diane de Poitiers 

(3 September 1499 – 25 April 1566)

1520년대


디안 드 푸아티에는 생 바리에의 영주였던 장 드 푸아티에와 그의 부인인 잔 드 바타르니의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디안 드 푸아티에의 집안은 오래도록 프랑스 왕실과 연결이 되는 가문이었는데 디안의 할아버지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마리 드 발루아는 루이 11세가 정부에게서 낳은 딸이기도 했었습니다.(디안의 할머니인 잔 드 투르 드 라 다비뇽은 두번째 부인이었습니다.) 또 그녀의 외할아버지 역시 국왕과 가까운 사이였었다고 합니다. 소녀시절 디안 드 푸아티에는 국왕 샤를 8세의 누나인 부르봉 공작부인 안의 시녀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디안 드 푸아티에는 고위 귀족가문출신답게 교육을 잘 받았는데 그녀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지성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녀는 음악과 춤 예술,언어와  대화 기술들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쓰고 읽을줄 알았다고 합니다. 또 사냥에서 소질이 있었으며 스포츠도 잘하는 여성이었고 이런 활발한 신체 활동은 그녀가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도 미모와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디안은 15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39살이나 많은 루이 드 브레제와 결혼합니다. 루이 드 브레제는 샤를 7세의 외손자로 아녜스 소렐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둘사이에서는 두명의 딸이 태어나죠. 비록 루이 드 브레제는 미남이 아니었고 등이 굽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디안과 루이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루이 드 브레제는 국왕에 매우 충성스러운 인물이었는데 1524년 디안의 아버지가 반역죄에 연루되어 참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을때도 루이 드 브레제가 국왕에게 탄원해서 참수형은 면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디안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루이 드 브레제

디안 드 푸아티에의 남편

아녜스 소렐와 샤를 7세의 외손자


디안은 고위 귀족의 아내로 당시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의 아내인 클로드 왕비의 시녀가 됩니다. 그리고 왕비가 죽은뒤에는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인 루이즈 드 사보이아의 시녀가 되었고 프랑수아 1세과 합스부르크의 레오노르와 결혼한 뒤에는 레오노르의 시녀가 됩니다. 이때 많은 이들이 디안이 프랑수아 1세의 정부가 되었으리라 의심합니다만 그녀가 프랑수아 1세와 연관된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1531년 디안의 남편인 루이가 죽은뒤 디안은 상중에 흰색과 검은이 섞인 옷을 입습니다. 주로 검은 색에 흰색을 입었는데 프랑스에서는 흰색도 상중에 입을수 있는 색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디안은 평생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그녀가 과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더불어 그녀가 권력을 잡았을때 그녀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디안"이라는 이름은 달의 여신인 "다이아나"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며 그녀의 옷은 결국 밤에 뜨는 달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인식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상복을 입은 디안 드 푸아티에


디안이 앙리를 처음 만난것은 아마도 그녀가 클로드 왕비의 시녀로 일할때로 아마 그녀는 앙리가 자라는 것을 거의 지켜봤을듯합니다. 그리고 앙리와 그의 형인 프랑수아가 아버지대신 에스파냐로 갈때 그를 배웅한것이 바로 앙리의 할머니인 루이즈였으며 결국 루이즈의 시녀였던 디안 역시 앙리를 배웅했을듯합니다.  두 왕자들은 에스파냐에서 매우 고립된 생활을 했으며 무려 4년간이나 인질로 있었죠. 이때 앙리는 아마디스 데 가울라 같은 기사도 문학을 탐독했고 그 결과 기사도 이야기에 심취하게 됩니다. 이런 기사도 문학에서 꼭 헌신하는 귀부인이 등장하는데 앙리는 프랑스로 돌아온뒤 자신이 떠날때 배웅했었던 디안을 다시 만났고 결국 그녀에게 헌신하게 되죠. 프랑수아 1세는 11살인 앙리를 31살인 디안 드 푸아티에에게 맡겼는데 이후 앙리는 자신을 가르치고 돌봐주는 디안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가족을 떠나 고립된 생활을 했었던 어린 왕자가 아름다우며 어머니 같은 여성에게 빠져들게 된것이라고 추정할수 있을듯합니다. 이후 앙리는 자신을 돌봐주는 디안을 심하게 따랐으며 아마도 "기사도 문학"에 나오는 기사와 귀부인 관계로 자신과 디안의 관계를 여겼던듯합니다. 실제로 프랑수아 1세의 두번째부인인 레오노르를 위한 마상시합에서 형인 도팽은 왕비에게 경의를 보냈지만 앙리는 새어머니이자 마상시합의 주인공인 왕비가 아닌 디안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의 앙리 2세


아마도 디안은 어린 왕자의 열정을 그냥 자신을 많이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20살이나 어린 왕자는 디안에게 아들뻘이었으며 자신이 돌봐야하는 상대였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앙리의 삶에 많이 관여하게 됩니다. 1533년 앙리는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와 결혼하는데 이 결혼을 지지한 인물중 하나가 바로 디안 드 푸아티에였다고 합니다. 메디치 가문은 당시에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가문이긴 했었지만 자주 외국의 작은 공국들에 대해서 낮은 시선으로 보던 프랑스 왕실에서는 메디치 가문정도는 프랑스의 왕자가 결혼할만한 가문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죠. 하지만 카트린느의 어머니인 마델라인 드 라 투르 다비뇽은 프랑스 고위귀족가문 출신이었으며 특히 디안 드 푸아티에와도 친척관계였습니다.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의 외할아버지가 디안 드 푸아티에의 할머니와 형제 관계였었고 결국 둘은 육촌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디안은 친척관계였던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왕자와 결혼하므로써 자신과 연결되는 친척들이 이익을 얻을수 있을거라고 여겼을듯합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어머니

마델라인 드 라 투르 다비뇽

그녀는 디안 드 푸아티에의 아버지와 사촌간이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