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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 오데트 드 샹디베르 : 프랑스의 샤를 6세의 정부

엘아라 2014. 4.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랑스를 먼저한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정작 제가 프랑스 사를 잘 모릅니다.==;;

진짜 "왜 프랑스를 한다고 한거야..잘 아는 잉글랜드나 할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뭐 이러면서 배우는거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모르기 때문에 대충 시대를 적당히 제맘대로 알아서 해볼까합니다.=-=

사실 정부들이 없지는 않았을테지만 아시다시피 중세 여성의 기록은 거의 없는편이고 게다가 기독교 관점에서 죄악이었던 "정부"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는것은 드문편입니다. 그래서 기록 있는 사람부터 해볼까하는데 하필 잘 모르는 프랑스라서 말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샤를 6세의 정부였던 오데트 드 샹디베르입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2) 오데트 드 샹디베르 : 프랑스의 샤를 6세의 정부





오데트 드 샹디베르

Odette de Champdivers 

(also known as Oudine or Odinette)

(b. about 1390 - d. ca. 1425) 

샤를 6세와 함께 있는 오데트 

19세기 그림



샤를 6세의 정부였던 오데트 드 샹디베르는 부르고뉴 출신의 귀족가문 여성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샹디베르 가문은 12세기 문서에도 나타나는 오래된 귀족가문으로 아마도 로렌 가문의 분가의 후손일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데트의 아버지는 오딘 드 샹디베르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는 샤를 6세의 궁정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또 오데트의 남자 형제들 역시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부르고뉴 공작의 측근이었다고 합니다.


1407년경 17살 무렵 오데트는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샤를 6세의 정부가 됩니다. 그녀가 정부가 된것에는 몇몇 이야기들이 있는데 아마 두가지이야기로 압축됩니다. "광인"이라고 불렸었던 샤를 6세는 정신병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이때문에 남편과의 관계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왕비 이자보가 남편을 두려워했고 이런 남편을 위해 정부로 오데트를 허락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그녀의 가문이 모두 부르고뉴 공작 가문과 연결되는것으로 봐서 당시 정치적으로 오를레앙 공작과 극악한 관계를 달리고 있었던 부르고뉴 공작(용맹공 장)이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데트를 국왕에게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부르고뉴 공작  장 2세

용맹공 장


어쨌든 오데트는 샤를 6세의 사랑을 받았으며 궁정에서 굉장히 확고한 지위를 얻게 됩니다. 궁정에서 그녀는 la petite reine ("the little queen")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활기찬 여성이었다고 오데트는 광기에 사로잡힌 불운한 샤를 6세를 사랑했고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돌봤다고 합니다. 오데트는 자주 침실에서 왕비의 옷을 입곤 했는데 아마도 샤를 6세는 광기때문에 그녀와 왕비를 잘 구별 하지 못했던 경우도 많았었던듯 합니다. 어쨌든 오데트는 궁정에서 확고한 지위에 있었으며 국왕에게서 많은 값비싼 선물과 영지를 하사받았었다고 합니다. 



샤를 6세


오데트는 15년이상 국왕의 정부로 살았으며 샤를 6세와의 사이에서 "마르거리트"라는 이름의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422년 국왕이 사망할때 그의 곁에서 임종을 지켰죠. 



오데트와 샤를 6세

19세기 그림


국왕이 죽은후 오데트는 딸과 함께 거처를 옮겨가게 됩니다. 그녀는 국왕으로부터 받던 연금을 더이상 받을수 없게 되었으며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결국 딸과 함게 부르고뉴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선량공 필리프의 보호아래 있었습니다. 1424년 3월 부르고뉴에 있던 오데트는 부르고뉴 공작의 행동을 도팽(샤를 7세)에게 알려줬다는 혐의를 받게 되죠. 중간에 사자 역할을 했었던 수도승이 부르고뉴에 붙잡혀서 이 사실을 발설했는데 오데트는 딸과 함께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에서 자신을 변호했었으며 아마 혐의를 벗었던듯합니다만 아마도 이후 부르고뉴를 떠나 도핀느 지방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오데트에 대한 기록은 1424년 9월 이후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도 그녀가 사망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아마도 1425년경 사망했으리라 여겨진다고 합니다.



샤를 7세


오데트는 샤를 6세와의 사이에서 딸 마르거리트를 낳았는데, 그녀는 아버지가 죽은후 어머니와 함께 여러곳을 다녔습니다. 이후 샤를 7세는 1428년 이복동생인 마르거리트를 샤를 6세의 딸로 정식으로 인정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하였던 벨빌르의 영주와 결혼시켰는데 막대한 혼수를 해줬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로 봐서 아마도 오데트가 이전에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에서 샤를 7세를 위해 무엇인가를 했었던것은 사실일듯합니다.


더하기...

왜 처음부터 100년전쟁이야기쯤이냐고요..그것도 제일 안 읽었던 리처드 2세쯤..ㅠ.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