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보퍼트 가문도 이제 슬슬 끝낼때가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는 사람은 바로 보퍼트 가문의 후손이자 현재도 있는 보퍼트 공작가문의 조상이 되는 찰스 서머셋에 대해서 해볼까합니다.
제가 이 사람에 대해서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서머셋 공작인 헨리 보퍼트의 아들이었는데 성이 "서머셋"이고 후에 "보퍼트 공작"의 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조와 후손의 성과 작위가 뒤바껴서 기억했다죠.
사실 "보퍼트"라는 성조차도 사실은 영지명에 가까웠으니 이상할것은 없긴 하네요.
아마 서머셋이라는 성을 쓴 이유는 아버지가 서머셋 공작이었기 때문에 그랬던듯합니다.
...그나저나 수요일날은 또 뭘해야할까요..ㅠ.ㅠ
보퍼트 가문 사람들....(17)찰스 서머셋 : 보퍼트 가문의 후손이자 보퍼트 공작가문의 조상
찰스 서머셋
1대 우스터 백작
Charles Somerset
1st Earl of Worcester
(c. 1460 – 15 March 1526)
찰스 서머셋은 1460년경 3대 서머셋 공작이었던 헨리 보퍼트와 조앤 힐이라는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습니다. 그는 장미전쟁 와중에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날때쯤에는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가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했던 시기였기에 아버지가 공작이었다고 하더라도 재산이나 다른 많은 것들을 기대할수 없었을듯합니다.
아마도 그는 어린시절 플랑드르 지방으로 보내져서 성장했을것이라 추측됩니다. 찰스 서머셋은 보스워스 전투 직전 필립 대공에게서 기사 서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필립은 마리 드 부르고뉴와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로 그는 어렸지만 어머니의 권리를 통해 부르고뉴 공작 지위를 이어받았었고 이때문에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찰스 서머셋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할만한 지위에 있었던듯합니다.) 그는 랭카스터 가문의 계승권을 주장하는 헨리 튜더를 강하게 지지했었습니다.
헨리 튜더는 찰스 서머셋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는데 일단 그가 왕위계승권이 없는 사생아였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듯합니다. 찰스 서머셋이 적자였다면 헨리 튜더보다 랭카스터 가문의 계승권을 우선적으로 주장할수 있었고 그는 결국 다른 요크가문 사람들처럼 헨리 튜더의 계승권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쯤으로 여겨졌을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마도 헨리 7세는 찰스 서머셋의 처지(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오래도록 망명생활을 했었던 것)가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기에 그에 대해서 더욱더 호의적이 될수 있었던듯합니다.
젊은 시절의 헨리 7세
헨리 튜더가 즉위하면서 찰스 서머셋은 헨리 튜더의 총애를 받는 신하중 한명이 됩니다. 헨리 7세는 그를 중용했으며 넓은 영지를 하사했으며 높은 궁정 지위도 부여합니다. 헨리 7세가 프랑스와 브르타뉴와의 문제에도 개입했을때 이를 위해 브르타뉴로 보낸 인물이 바로 찰스 서머셋이었습니다. 이후 헨리 7세는 프랑스와의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찰스 서머셋을 외교관으로 파견했었죠.
또 찰스 서머셋은 플랑드르에서 망명생활을 했고 이때문에 부르고뉴 공작가문과도 친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외교관으로 생활을 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주게 되죠. 특히 헨리7세 당시에도 요크 가문을 지지하던 인물들이 반란을 일으켰었으며 반란이 실패한뒤 부르고뉴 공작령으로 망명하려 했을때 찰스 서머셋은 이를 막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1496년경 가터훈장을 수여받았게 되죠.
헨리 8세가 즉위한 뒤에 찰스 서머셋은 여전히 중요한 신하였으며 특히 외교관으로 매우 신임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헨리 8세의 동생인 메리 튜더와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와의 결혼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죠. 또 비록 필립 대공은 죽었지만 대공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와 대공의 아들인 카를 대공(후에 카를 5세)와의 관계도 좋게 유지했고 이것은 그 개인에게도 물론 잉글랜드에 유리하게 작용했었습니다. 결국 헨리 8세는 1514년 찰스 서머셋에게 "우스터 백작"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우스터 백작으로써의 찰스 서머셋의 문장
찰스 서머셋은 1492년 헌팅턴 백작의 딸이었던 허버트 여남작이었던 엘리자베스 허버트와 결혼하면서 아내의 지위로 "허버트 남작"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찰스 서머셋과 엘리자베스 사이에서는 아들인 찰스 서머셋이 태어납니다만, 엘리자베스는 1507년 사망합니다. 아내가 죽고 얼마뒤 아내의 숙부가 죽으면서 아내 가문의 재산이 모두 서머셋 가문으로 상속되게 되죠. 아내가 죽은뒤 찰스 서머셋은 드 라 워르 남작의 딸이었던 엘리자베스 웨스트와 결혼했었죠. 둘사이에서는 메리라는 이름의 딸이 살아남아서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엘리자베스 웨스트가 죽은뒤 찰스 서머셋은 더들리경이었던 에드워드 서튼의 딸인 엘레노어 서튼과 세번째로 결혼했었다고 합니다.
찰스 서머셋의 현손인 5대 우스터 백작 헨리 서머셋은 영국 내전당시 국왕 찰스 1세를 지지햇고 그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기에 국왕으로부터 우스터 후작 지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1대 우스터 후작의 손자였던 헨리 서머셋은 찰스 2세에게서 "보퍼트 공작"지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현 보퍼트 공작인 11대 보퍼트 공작 데이비드 서머셋은 찰스 서머셋의 직계후손입니다.
보퍼트 공작 가문의 문장
자료출처
1.http://www.luminarium.org/encyclopedia/charlessomerset.htm
2.http://wbo.llgc.org.uk/en/s-SOME-RAG-1450.html
3.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last Princess...1.'It's a fine child' (0) | 2016.04.24 |
---|---|
[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세번째) (0) | 2014.03.31 |
[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두번째) (0) | 2014.03.24 |
보퍼트 가문 사람들...(16)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 스탯포드 백작부인 (0) | 2014.03.19 |
[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첫번째) (0) | 2014.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