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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두번째)

엘아라 2014. 3.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글이 또 길어집니다.

두개로 끝낼려고 했더니..ㅠ.ㅠ

세개로 나뉘네요..ㅠ.ㅠ


이번달까지만 하고 이제 the white queen에 나오는 인물은 접을까합니다. 

이거 하다보면 장미전쟁 관련 인물들 다해야할판이니까요..ㅎㅎㅎㅎㅎ


...그런데 월요일날 뭐하지..ㅠ.ㅠ


[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두번째)






토마스 스탠리

더비 백작

Thomas Stanley

1st Earl of Derby

(1435 – 29 July 1504) 

토마스 스탠리의 문장


에드워드 4세가 복위한뒤에도 토마스 스탠리는 궁정의 중요한 인물이자 에드워드의 지지자였습니다. 이때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두번째 남편과 토마스 스탠리의 아내가 사망하게 되죠. 레이디 마거릿은 대영주였지만 중세시대는 여성이 독자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하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디 마거릿은 자신과 자신의 재산 그리고 훗날 아들의 지위를 보장해줄수 있는 사람과 재혼해야만했죠. 그리고 선택한 인물이 바로 토마스 스탠리였습니다.


아마도 레이디 마거릿과 토마스 스탠리의 결혼은 정치적,경제적 목적이 강했을것입니다. 왜냐면 1470년이후 랭카스터 가문의 직계 남성 적자들이 모두 사라졌으며 결국 레이디 마거릿의 아들인 헨리 튜더가 가장 가까운 후계자였으며, 또 레이디 마거릿 역시 랭카스터 가문 출신의 대영주로 요크 가문 출신의 국왕에게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토마스 스탠리 같은 인물이 필요했었죠. 반면 토마스 스탠리는 레이디 마거릿과 결혼한다면 아내의 재산을 관리할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이득을 무시할수 없었을것같습니다.

둘의 결혼이 정치적 목적이었다는 것은 후에 레이디 마거릿은 남편의 허락을 받은뒤 서약한 수녀와 같은 삶을 살았었다것으로 뒷받침 될수 있을듯합니다 어쨌든 레이디 마거릿은 토마스 스탠리와 결혼한뒤 궁정으로 바로 돌아올수 있었죠.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토마스 스탠리의 두번째 아내



토마스 스탠리는 에드워드 4세 치하에서는 국왕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글로스터 공작인 리처드와 함께 전투를 치뤘으며 결국 리처드는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어린 왕자들을 남겨두고 국왕이 죽으면서 국왕의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와 국왕의 처가 식구들인 우드빌 가문 사람들의 대립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토마스 스탠리는 이들의 중재자 역할을 하려했는데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조지 스탠리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조카였던 조앤 르 스트래인지와 결혼했었기도 했었죠. 하지만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먼저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리처드는 우드빌 가문 사람들을 몰아냈으며, 토마스 스탠리 역시 체포되어서 한동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후 리처드는 형과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결혼이 "중혼"으로 둘의 자녀들에게 왕위계승권이 없다고 선언을 한뒤 국왕 리처드 3세로 즉위합니다.


리처드 3세는 즉위후 지지세력이 필요했으며 결국 토마스 스탠리를 다시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때문에 토마스 스탠리는 풀려날수 있었으며 리처드 3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토마스 스탠리가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해질것을 우려하는 계기가 됩니다.

리처드가 즉위하자, 토마스 스탠리의 아내인 레이디 마거릿은 리처드가 왕위계승 권리만큼 자신의 아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왕자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을 위한 기회를 얻게 되죠. 리처드를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왕자들이 있었다면 헨리 튜더에게 왕위가 돌아가지 않았을테지만, 왕자들이 없는 이상 헨리 튜더에게는 충분한 승산이 있었죠.



리처드 3세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의 위해 두가지 교섭을 시도합니다. 먼저 2대 버킹엄 공작이었던 헨리 스탯포드를 포섭하는 것이었습니다. 버킹엄 공작은 자신에게도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버킹엄 공작의 어머니 역시 보퍼트 가문 출신으로 레이디 마거릿의 사촌이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은 그가 자신의 아들보다 계승권이 낮으며, 헨리 튜더가 즉위한다면 국왕 다음의 최고의 지위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했고 버킹엄 공작은 레이디 마거릿의 음모에 가담합니다. 

그리고 레이디 마거릿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소로 피신해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교섭을 해서 자신의 아들과 그녀의 장녀를 결혼시키기로 합니다. 이것은 헨리 튜더가 왕위를 얻은뒤에 그 후손을 위해 왕위게승권을 확고하게 하는 일이었죠.


이런  상황에 대해 토마스 스탠리가 몰랐었을리는 없지만 이때 그는 리처드를 지지합니다.  버킹엄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토마스 스탠리는 리처드 3세를 확고하게 지지했으며 그의 편에서 전투를 합니다. 이것은 후에 음모의 중심인물이 그의 아내라는 것이 밝혀졌을때 유리하게 작용하죠. 리처드는 토마스 스탠리에게 그의 아내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지위를 유지하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레이디 마거릿에게 사권박탈을 내렸지만 그녀에 대한 감시를 토마스 스탠리에게 일임했으며 그녀의 재산 역시 토마스 스탠리가 관리하는 것을 허락해줬었습니다.



2대 버킹엄 공작 

헨리 스탯포드


아마도 토마스 스탠리가 아내와 반대편에 서서행동했던것은 아마도 장미전쟁동안 여러번 편을 바꿨었던 토마스 스탠리가 보기에 이번 반란에서는 승산이 없었을것이라고 여겼던듯합니다. 토마스 스탠리의 편바꾸기는 꽤나 성공적이었죠. 게다가 레이디 마거릿의 처분을 토마스 스탠리가 맡음으로써 레이디 마거릿이 여전히 아들을 왕위계승자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었죠.


물론 리처드 역시 의심을 완전히 떨쳐버린것은 아니었습니다. 1485년 토마스 스탠리가 궁정을 떠나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가도록 허락해달라고 했을때, 리처드는 허락하는 대신 토마스 스탠리의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스트래인지 남작 조지 스탠리를 인질로 궁정에 남아있게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토마스 스탠리가 편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