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지막이군요.
음냐 뭘하지..ㅠ.ㅠ
[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세번째)
토마스 스탠리
더비 백작
Thomas Stanley
1st Earl of Derby
(1435 – 29 July 1504)
1485년 3월 리처드3세의 왕비였던 앤 네빌이 사망합니다. 그녀가 사망하자 전 잉글랜드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리처드 3세가 조카인 "페어리 베시"와 결혼하기 위해서 아내를 독살했다는 소문이었죠. 이 소문은 브르타뉴에서 망명중이었던 헨리 튜더를 자극하게 됩니다. 헨리 튜더는 동생들이 사라진뒤 왕위계승권을 가졌던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로 맹세했었었죠. 그녀와의 결혼하는것이 장미전쟁을 중단시킬 좋은 명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만약 리처드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한다면 헨리 튜더의 계승문제에 큰 걸림돌이 될것이 분명했었죠.
결국 헨리 튜더는 다시한번 잉글랜드를 향해 가게 됩니다. 튜더 가문은 웨일즈에 기반을 둔 가문이었으며 헨리 튜더는 랭카스터 가문 뿐만 아니라 웨일즈의 호응도 충분이 얻을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이 상황을 토마스 스탠리가 전혀 몰랐을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스탠리는 이제 편을 바꿔서 의붓아들인 헨리 튜더를 지지하려하고 있었습니다.당시 웨일즈를 관할하던 인물은 토마스 스탠리의 동생이자 확고한 요크가 지지자였던 윌리엄 스탠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역시 헨리 튜더를 지지하는 편으로 편을 바꾸게 됩니다. 윌리엄 스탠리와 토마스 스탠리의 협력내지 묵인으로 인해서 헨리 튜더는 지지세력을 규합해서 리처드 3세와 전투를 하러 나서게 되죠.
토마스 스탠리의 동생
윌리엄 스탠리의 문장
헨리 튜더와 리처드 3세는 현재 "보스워스 전투"라고 알려진 전투에서 결전을 치루게 됩니다. 사실상 이전투는 세개의 세력이 있었습니다. 헨리 튜더를 중심으로하는 랭카스터 가문측과 리처드 3세를 중심으로 하는 요크 가문 측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탠리 가문의 군대였죠. 장미 전쟁중 늘 그랬듯이 스탠리 가문이 어느쪽에서느냐가 승리의 중요한 역할이 되었을듯합니다. 하지만 스탠리 가문은 이미 리처드 3세에게서 등을 돌렸었는데 리처드 3세가 토마스 스탠리에게 아들인 조지 스탠리의 목숨을 가지고 위협했을때는 이미 토마스 스탠리는 마음을 굳혔던 상황이었을듯합니다. 그리고 스탠리 가문이 헨리 튜더측에 서면서 보스워스 전투는 리처드 3세의 패배로 끝났으며 리처드 3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었죠.
리처드의 왕관을 헨리 튜더에게 건네는 토마스 스탠리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리처드의 왕관을 찾은 토마스 스탠리는 의붓아들에게 그 관을 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왕위계승에서 토마스 스탠리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헨리 튜더는 이제 잉글랜드의 헨리 7세로 즉위했으며 그가 즉위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중 한명이자 의붓아버지인 토마스 스탠리의 지위를 올려줍니다. 헨리 튜더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더비 백작의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궁정과 의회에 매우 높은 지위를 부여했었죠. 또 헨리 튜더와 요크의 엘리자베스 사이의 장남인 아서 왕자가 태어났을때 토마스 스탠리는 왕자의 대부가 되는 명예도 얻게 됩니다. 이후 토마스 스탠리는 헨리7세에 매우 충성했었죠.
사실 토마스 스탠리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편바꾸기가 가능했었던것은 그가 잉글랜드 서북방면에서 확고한 지지세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었으며 이런 지지는 장미전쟁중에서 그의 세력을 무시할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두 세력이 비슷한 상황에서 스탠리 가문을 끌어들이는것이 중요했었고 결국 이때문에 토마스 스탠리가 편을 바꾸고도 무사할수 있었던것이 아닐까합니다.
헨리 7세가 즉위한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토마스 스탠리는 더이상 함께 살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나 "vowess"로 입회한 수녀와 같은 삶을 살기 원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살아있는 여성이 남편의 허락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레이디 마거릿과 토마스 스탠리의 결혼이 정치적인 목적이 강했었고 이제 그 목적을 달성했었기에 둘이 서로 떨어져 지낸것이 아닐까합니다. 토마스 스탠리와 레이디 마거릿은 따로 살았지만 토마스 스탠리를 아내를 자주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스탠리는 1504년 사망했으며 그의 지위는 손자인 토마스 스탠리가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정식으로 서원해서 수녀로써 삶을 살았었습니다.
토마스 스탠리의 손자
2대 더비 백작 토마스 스탠리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벼운 역사 이야기] 누구 맘대로 결혼 하려고!!절대 안 시킬꺼야!!--+++ (0) | 2017.09.04 |
---|---|
The last Princess...1.'It's a fine child' (0) | 2016.04.24 |
보퍼트 가문 사람들....(17)찰스 서머셋 : 보퍼트 가문의 후손이자 보퍼트 공작가문의 조상 (0) | 2014.03.26 |
[The White Queen] 토마스 스탠리 :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남편(두번째) (0) | 2014.03.24 |
보퍼트 가문 사람들...(16)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 스탯포드 백작부인 (0) | 2014.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