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6)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일곱번째)

엘아라 2014. 3.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6)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일곱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Francis Albert Augustus Charles Emmanuel)

 later The Prince Consort

(26 August 1819 – 14 December 1861)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그리고 둘의 아홉아이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사이에서는 모두 아홉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영아 사망율이 높았던 시기였음에도 여왕의 아이들 아홉은 모두 성인으로 성장했었습니다.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독일의 황후이자 프로이센의 왕비

 


 

첫째는 딸인 빅토리아로 후에 프로이센의 왕비이자 독일의 황후가 되죠.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라고 불렸으며 애칭으로는 "빅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녀는 매우 총명했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 앨버트공은 첫딸이 태어나면서 빅키에게 완전히 빠져들었고, 빅키는 앨버트공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가 되었으며 가끔 여왕은 이런 남편때문에 딸에게 질투심을 느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려서 프로이센의 왕위계승자와 정략결혼했지만, 프리츠라는 애칭으로 불린 프리드리히와 빅키는 매우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빅키는 프로이센 궁정에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시아버지인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는 보수주의자였기에 자유주의자였던 빅키와 프리드리히는 언제나 견제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또 시어머니와도 사이가 별로 안 좋았는데 아우구스타 황후는 남편과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는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며느리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으로 대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들이었던 빌헬름 2세는 할아버지였던 빌헬름 1세의 영향을 받아서 부모와 정치적 노선이 달랐으며 이것은 빅키와 빌헬름사이가 매우 나빠지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장남 앨버트 에드워드

영국의 에드워드 7세

둘째는 아들이자 영국의 국왕이 되는 에드워드입니다. 버티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에드워드 7세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부모의 팍팍한 교육에 질려했는데 그는 그런식의 교육이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서 생활속에서 익혀나가면서 배우는것에 더 익숙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왕은 남편의 죽음이 장남의 책임이라고 여겼기에 아들이 웨일즈공으로 있는 동안 정치에 관여하는것을 훼방놨고 결국 버티는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미녀중 한명이었던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와 결혼했지만 둘은 서로 안맞는 사이였으며 에드워드는 늘 정부가 있었습니다.

 

 

 

둘째딸 앨리스

헤센의 대공비

 

셋째는 딸인 앨리스입니다. 앨리스는 늘 부드러운 성품에 다른 이를 먼저 챙겼다고 알려져있는데 아버지가 죽은후 어머니가 슬픔에 빠져 칩거했을때 큰 도움을 준 딸입니다. 여왕은 앨리스를 잃기 싫어했지만 남편이 정해놓은 혼처인 헤센으로 시집을 보냅니다. 헤센 대공의 후계자였던 루드비히와 결혼한 앨리스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주 영국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앨리스와 루드비히는 서로 안맞는 사이였다고 알려져있는데 앨리스는 지적인면에 그다지 관심없는 남편이 못마땅했으며, 루드비히는 늘 자선사업에만 열을 올리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앨리스는 가족과 함께 자주 영국으로 가서 어머니 곁에 머물면서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앨리스는 디프테리아로 아버지가 죽은 17년뒤 아버지 기일에 사망했습니다. 

 

 

둘째아들 앨프러드

에든버러 공작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통치군주)

넷째는 아들인 앨프러드입니다. 앨프러드는 평생 해군으로 살았으며 백부의 뒤를 이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령을 물려받았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결혼했는데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영국과 러시아는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었고, 마리야 여대공은 지적인 자신보다 백치미로 이름높았던 웨일즈 공비 알렉산드라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것에 못견뎌했으며 결국 영국 사교계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잘생긴 해군이었던 앨프러드는 마리야의 기대와 달리 그다지 똑똑하지 못했었죠. 이런 상황은 후에 마리야가 딸인 마리와 웨일즈의 조지와의 결혼을 결사반대하게된 주요한 원인이됩니다. (물론 정교회를 믿었던 마리야가 사촌끼리 결혼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한데..정작 둘째딸은 사촌이랑 결혼시켰던..--;;;) 


 

 

셋째딸 헬레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비

 

 

다섯째는 딸인 헬레나입니다. 헬레나는 언니인 앨리스가 결혼한뒤 어머니 곁에서 시중을 들면서 살았습니다.여왕은 헬레나가 결혼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살거라고 생각했었는데 , 헬레나는 남편감을 만나게 되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의 아들이었던 크리스티안은 아버지가 영지를 잃은뒤 물려받을것이 없는 이름밖에 없는 왕족이었죠 게다가 외모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었습니다만, 헬레나는 그에게 반해서 결혼하길 원합니다. 여왕은 딸이 멀리 떠나는것을 원치 않는다는것을 분명히 밝혔고, 물려받을것이 없던 크리스티안은 영국에서 사는것에 동의합니다. 여왕은 크리스티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헬레나는 남편과 함께 어머니 근처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가족에 충실했으며 남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넷째딸 루이즈

아가일 공작부인


 

여섯째는 딸인 루이즈입니다. 루이즈는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중 가장 문제아였으며 매우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때문에 어머니곁에서 시중드는것 자체를 싫어했어 어떻게든 어머니 곁을 떠나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어머니 곁을 떠나기 위해 영국 귀족과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여왕은 딸을 외국으로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허락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아가일 공작이되는 론후작 존 캠벨과 결혼합니다. 루이즈는 영국을 떠나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정치적 문제로 남편이 캐나다 총독이 되어서 캐나다로 갔을때 어쩔수 없이 남편을 따라가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다시 돌아왔으며 이것은 도리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었기에 결국 그녀의 남편인 론후작은 영국으로 돌아와야했다고 합니다. 이후 루이즈는 여러가지 스캔들에 연루되는데 특히 루이즈는 동생인 베아트리스를 질투해서 베아트리스의 남편이 죽고 난뒤 그녀의 남편과 자신의 "우정"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면서 동생에게 상처를 줬다고 합니다. 

 

 

 

셋째아들 아서

코넛 공작

아서라는 이름은 대부였던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일곱째는 아들인 아서입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사랑한 아들로, 아기때부터 여왕은 남편에게 남편을 가장 많이 닮은 아서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할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기대대로 착실하게 군인으로 살았으며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는 대부였던 웰링턴 공작처럼 육군으로 여러곳의 총독과 사령관직을 수행했었습니다. 아서는 프로이센 왕가 출신의 마르가레테와 결혼했는데 둘의 결혼생활은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결혼생활이었다고도 할수 없다고 합니다. 

 

 

 

넷째 아들 레오폴드

알바니 공작

 


 

여덟째는 아들인 레오폴드입니다. 레오폴드는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때문에 어머니의 과보호아래서 살아야했다고 합니다. 동생인 베아트리스와 함께 어머니 품에서 못떠났기에 누나인 루이즈와 마찬가지로 반항아기질이 다분히 있었다고 합니다. 형들처럼 군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위험했기에 그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어머니의 개인비서로 일을 했었습니다. 레오폴드는 언제 죽을지 몰랐기에 유럽의 공주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발덱-피르몬트의 헬레나와 결혼하게 됩니다. 헬레나의 어머니는 딸들을 좋은 가문에 시집보내려했었으며, 이때문에 헬레나는 "영국의 왕자"와 결혼했었죠. 헬레나와 레오폴드는 행복했다고 알려져있는데 레오폴드는 똑똑한 아내를 자랑스러워했으며 헬레나는 남편에게 순종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31살때쯤 칸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딸인 앨리스는 죽은 누나인 앨리스 공주의 이름을 땃으며, 후에 애쓰론 백작과 결혼해서 영국에서 인기있는 왕족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유복자였던 찰스 에드워드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령의 상속자로 독일에 갔으며 "히틀러가 가장 좋아한 왕족"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는 오래도록 나치를 지지했으며 2차대전이후 전범으로 체포되었고 전쟁배상금때문에 파산했다고 합니다.

 

 

막내 베아트리스

바텐베르크 공비

왠지 여왕과 함께 있는 사진을 넣어야될듯한 느낌이...ㅎㅎㅎ

 


막내는 딸인 베아트리스입니다. 베아트리스는 아버지가 죽고 난뒤 어머니곁에서 늘 잡혀서 살았으며 결국 그녀는 평생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왕은 베아트리스마저 떠나서 자신이 외토리가 될것을 두려워했고 딸을 놔주지 않았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오래도록 혼자 살것이라고 여겨졌지만 결국 조카의 결혼식에서 만난 조카의 시동생과 눈이 맞아서 결혼합니다. 여왕은 이 결혼을 결사반대해서 육개월간 딸과 대화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는 결혼후 아내와 함께 여왕과 살았는데 그는 결혼전 프로이센 군인이었으며 보어전쟁이 한참일때 여왕을 설득해서 전선으로 갑니다. 하지만 가는 도중 말라리아로 사망했었죠. 베아트리스는 결혼후에도 남편이 죽은뒤에도 여전히 어머니 곁에서 같은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것은 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이 죽은 뒤였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

그리고 아홉 자녀들

아마도 앨버트공이 죽었을때쯤의 모습인듯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