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4)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다섯번째)

엘아라 2014. 3.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4)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다섯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Francis Albert Augustus Charles Emmanuel)

 later The Prince Consort

(26 August 1819 – 14 December 1861)

1859년


앨버트는 여왕의 남편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어갔습니다. 특히 여왕은 앨버트에게 크게 의존했으며 그는 아내대신 점차 많은 국사를 처리해야했었죠. 뿐만아니라 앨버트는 아이들의 교육에도 매우 큰 신경을 썼습니다. 앨버트와 빅토리아 여왕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매우 엄격했는데 꽉짜여진 교육은 물론 생활면에서도 자신들이 다른이들보다 훨씬더 대접받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면서 살도록 교육받았었습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는데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언제나 "군주"임을 잊지 않았고 이를 아이들에게도 적용했었죠. 하지만 앨버트는 아이들과도 친근하게 대했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늘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면 아이들과 친해질수 없소"라고 이야기할정도였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

그리고 둘의 아홉아이들

 

앨버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1850년대 이후에는 공적인 의무를 수행하느라 아이들의 교육을 예전처럼 돌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했었죠. 게다가 그는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낳을 동안 아내를 돌봤을 뿐만 아니라 국정도 돌봐야했었습니다. 여왕은 임신한 상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여왕이 임신한 동안은 너무나 예민해졌기에 중요한 국가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리기 곤란한 경우도 많았었습니다. 이때문에 그때마다 앨버트는 아내를 대신해서 국정에 참여했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

결혼식 재연

이게 결혼 15주년때던가..


 

앨버트는 고향인 독일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통일을 지지했으며 자신의 딸들이 독일의 통일에 기여하길 바랬다고 합니다. 이에 1853년경 장녀인 빅토리아를 프로이센의 왕위계승자였던 프리드리히 왕자와 결혼시키려고 햇었죠. 1855년 14살의 빅키와 23살의 프리츠는 비공식적으로 약혼했으며 1858년 1월에 결혼했었죠.

 

 

 

빅키와 프리츠

윈저에서 신혼여행때

둘의 나이차가 확 나는것이느껴집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딸을 시집보냈지만 앨버트는 가장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낸뒤에 매우 허전해했었다고 합니다. 과로와 심리적인 영향 때문이었는지 앨버트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져갔습니다.

1859년 앨버트는 매우 심하게 앓았는데 이후 1860년 코부르크로 가다가 사고를 당합니다. 짐마차가 앨버트가 탄 마차에 충돌했는데 말이 죽을 정도로 심한 충돌이었지만 앨버트는 미리 마차에서 빠져나와서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심한 충격을 받았으며, 빅키와 형에게 이 사고가 자주 떠오른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태와 관계없이 앨버트는 계속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제 여왕은 앨버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으며 이런 상황은 그가 과중한 업무를 수행해야만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건강이 서서히 나빠져 갔는데 결국 1861년 앨버트의 건강을 급격하게 나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납니다.

 

 

앨버트공

1860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