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요즘에 멍때리는 날이 많아서...글을 어떻게 구상해야할지 솔직히 감이 안잡힌다죠.
일단 쓰기시작하면 글이 써지기는 하는데 ...뭐랄까 머리속에 다음에는 이런 내용을 넣어야지..이런 생각이 하나도 안난다죠..ㅠ.ㅠ
영국의 왕비들...(35)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에드워드 7세의 왕비(두번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영국의 알렉산드라 왕비
Alexandra of Denmark
(Alexandra Caroline Marie Charlotte Louise Julia)
(1 December 1844 – 20 November 1925)
1860년대
이거 빈터할터 그림의 원판인가봐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장남이자 왕위계승자였던 웨일즈 공의 혼처를 일찍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특히 독일과 연결을 원했던 앨버트 공은 적당한 신부감을 물색하기 위해 프로이센으로 시집간 장녀 빅키에게 혼담이 오갈만한 왕녀들을 알아봐달라고 했었었죠. 사실 알릭스는 처음에는 빅키가 알아본 왕녀들에게 포함되지는 않았었습니다. 왜냐면 프로이센과 덴마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 때문에 사이가 굉장히 나빴으며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 공주를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을것입니다.
하지만 빅키가 알아본 수많은 후보감이 다 거절당한뒤 결국 알릭스의 차례가 되죠. 알릭스에 대해서 앨버트공은 흡족해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알릭스의 미모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하노버 가문의 친척들처럼 방탕할것을 걱정했던 여왕부부는 알릭스의 미모가 버티(에드워드 7세의 애칭)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을것이라 여겼었죠. (...--;;; 진짜 여왕 부부는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셨던듯....)
웨일즈공
1860년대
1861년 9월 빅키는 남동생인 버티에게 알릭스를 소개시켜줬습니다. 하지만 이 직후 문제가 발생하죠. 먼저 버티의 스캔들이 터졌으며 이후 앨버트 공이 사망합니다. 앨버트 공의 죽음은 여왕에게 큰 충격을 줬으며 여왕은 모든일을 내버려두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은거해버립니다. 결국 알릭스의 혼담은 한동안 중단되었었죠. 여왕은 버티가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여겼으며 이후 아들을 지속적으로 못마땅해합니다. 문제는 이런 여왕을 중재하던 사람이 앨버트 공이었는데 이제 중재자가 사라졌기에 여왕의 짜증은 늘 아들에게 머물렀었죠. 어쨌든 여왕은 죽은 남편의 뜻을 따라 알릭스와 버티의 결혼을 진행하기로 했었습니다. 결국 선본지 1년후인 1862년 웨일즈공은 알릭스에게 청혼하고 둘은 공식적으로 약혼하죠.
그리고 1863년 1월 코펜하겐에서는 영국의 제1 왕위계승자인 웨일즈 공과 덴마크의 추정왕위계승자인 크리스티안의 딸인 알렉산드라의 결혼 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됩니다. 그리고 웨일즈공과 결혼하러 영국으로 떠나기전 덴마크에서는 알렉산드라를 위해 큰 환송회를 준비합니다. 당시 덴마크 국왕인 프레데릭 7세는 미래의 영국의 왕비가 될 알렉산드라를 위해 호화로운 혼수를 마련해줬으며 연회를 베풀어 알렉산드라의 결혼을 축하했었죠.
약혼때쯤
1863년 3월 7일 알렉산드라는 부모와 함께 영국에 도착했고, 웨일즈공이 약혼녀를 마중갔었죠. 그리고 1863년 3월 10일 알렉산드라는 윈저에서 웨일즈공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실 왕위계승자의 결혼식이었기에 매우 화려해야했지만 사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때까지도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기에 궁정에서는 화려한 채색 옷이나 채색 보석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여왕 스스로는 결혼식이었음에도 검은 상복을 입고 참석했으며 시녀들 역시 회색이나 보라색이나 자주색들의 옷을 입게 했으며 신부들러리를 섰었던 미혼인 딸들(헬레나,루이즈,베아트리스)에게도 자주색 리본을 매게 해서 상중임을 알렸다고 합니다.
비록 "장례식 같았다"고 언급되는 앨리스 공주의 결혼식 같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침울했는데 결혼식때 울려퍼지던 노래는 앨버트공이 작곡한것이었고 결국 이런 상황은 버티의 누이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으며 여왕 역시 슬픔을 감추지 않았죠.
웨일즈공의 결혼식
가장 행복해야할 결혼식에서의 이런 상황은 아마도 알렉산드라가 결혼후 처하게 되는 많은 상황을 대변하는 것일듯 합니다. 늘 다른 여성과 연애질에 골몰하는 남편과 늘 테클을 거는 시어머니와 시동생들과 시누이들 간의 문제 등등이 기다리고 있었죠. 늘 다정다감한 성격이라고 알려지게 되는 알렉산드라는 이런 시댁식구들과 나름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데 시어머니에게 늘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그녀의 행동은 후에 여왕이 며느리를 어느정도 호의적 시각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후에 누구 말도 듣지 않는 여왕과 다른 가족사이에 어느 정도 중재자 역할을 하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알릭스와 버티의 결혼식때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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