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시씨네 애들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시씨네 애들이랑 프란츠 요제프의 조카들이랑 손녀인 에르치까지만 하고 분가로 넘어갈까합니다. 카를 황제의 딸들은 위키에 사진도 안나오고 해서 그냥 슬쩍 넘어갈까 싶거든요.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74) 조피 :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딸
오스트리아의 조피 여대공
Archduchess Sophie of Austria
Sophie Friederike Dorothea Maria Josepha von Österreich
(Sophie, Erzherzogin von Österreich)
( 5 March 1855 – 29 May 1857)
오스트리아의 조피 프리데리케 도로테아 마리아 요제파 여대공은 1855년 3월 5일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그의 부인인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안나의 어머니이자 "시씨"라는 애칭으로 더 잘알려진 엘리자베트 황후는 만 16살에 결혼했으며, 조피를 낳았을땐 만 18살이 안된 나이었습니다. 조피의 이름은 할머니인 조피 대공비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조피의 부모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
조피가 태어난 다음해에는 동생인 기젤라가 태어났습니다. 이때 황후의 나이는 만 19살이 되지 않았죠. 이때문에 아이들의 할머니인 조피 대공비는 어린 며느리를 믿지 못했으며 황후에게서 아이들을 뺏아서 자신이 직접 양육합니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을텐데 일단 시씨가 너무 어렸었던것과 더불어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길 바랬기에 아이들을 양육하면 아무래도 또 아이를 갖는것이 늦어질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씨에게 도리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됩니다. 결혼초 시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에 비해 궁정에서 입지가 크지 않았던 시씨는 자신의 아이들을 자기 손으로 키우지 못하는것에 대해서 매우 슬퍼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조피의 탄생
1857년 황제와 황후는 제국의 여러나라들을 여행합니다. 시씨는 이제 어느정도 궁정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아이들을 여행에 데려가는 것을 허락받게 되죠. 아이들과 함께 부다페스트에 갔을때 두 아이들은 갑자기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게 됩니다. 10개월된 기젤라는 금방 회복되었지만 두살된 조피는 회복되지 못하고 어머니 품안에서 사망하죠. 조피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오염된 물에 의한 설사나 고열에 의한 열경련등이 원인으로 여겨지며 몇몇 학자들은 장티푸스를 의심하기도 합니다만 정확히 밝혀진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조피의 죽음은 시씨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시씨의 시어머니인 조피 대공비는 며느리가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아이가 죽었다고 비난했으며 이런 비난은 시씨를 아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만들죠. 시씨는 기젤라와 아들 루돌프의 양육에 거의 관여하지 못했으며, 아마도 아이를 잃었던 것과 그에 대한 비난때문에 스스로 아이의 양육에 참여하려 하지 못했을듯합니다. 루돌프의 경우 어머니의 애정을 몹시 갈구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또 후에 마리 발레리가 태어났을때야 비로소 시씨는 그간 아이들에게 못줬었던 애정을 퍼부었는데, 이에 대해서 마리 발레리는 도리어 부담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다음 카페 "로얄 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중 율리아님의 글 "엘리자베트"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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