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16)안스바흐의 카롤리네 : 조지 2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3. 9.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영국의 첫 왕비에 대해서 이야기하네요.

현재 영국(UK)라고 부르는 나라는 앤 여왕때 스코틀랜드를 합병하면서 생긴 나라입니다.

이때문에 영국의 첫 왕비는 조지 2세의 왕비였던 캐롤라인 왕비였죠.

그럼 캐롤라인 왕비에 대해서 해볼까합니다.


영국의 왕비들...(16)안스바흐의 카롤리네 : 조지 2세의 왕비(첫번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카롤리네

Caroline of Brandenburg-Ansbach 

(Wilhelmina Charlotte Caroline; 1 March 1683 – 20 November 1737)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카롤리네는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마르크 그라프였던 요한 프리드리히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밑으로 남동생이자 후에 안스바흐의 마르크그라프가 되는 빌헬름 프리드리히가 있었습니다. 위로는 살아남은 세명의 이복언니오빠들이 있었죠.그녀의 아버지인 요한 프리드리히는 카롤리네가 3살이던 1686년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에 카롤리네의 어머니인 엘레오노레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인 아이제나흐로 돌아가죠.



카롤리네의 어머니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


엘레오노레는 2년후인 1688년 작센의 선제후였던 요한 게오르그4세와 재혼하게 됩니다. 이 결혼을 주선한 사람은 엘에로노레의 친구였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였습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는 당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사실상 요한 게오르그의 이복 여동생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선제후는 어머니의 강압에 못이겨서 엘레오노레와 결혼한것이었죠. 엘레오노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작센 선제후의 궁정인 드레스덴으로 갑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대단히 불행했습니다.

요한 게오르그는 아내를 죽이려고 까지 했다고 합니다. 요한 게오르그는 아내를 칼로 찌르려했는데 이때 요한 게오르그의 동생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가  맨손으로 그 칼을 막았고 그결과 그는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될정도였죠.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그 4세

....--;;; 어이 상실 남편입니다.


어쨌든 엘레오노레는 작센 선제후비로써 매우 불행하게 살았으며 두 아이를 유산했었죠. 그녀의 남편은 정부만을 사랑했고, 정부가 천연두로 숨을 거둔직후 정부에게서 천연두를 옮아 사망합니다.

다시 과부가 된 엘레오노레는 작센에서 머물다가 두번째 남편이 죽은 2년후인 1696년 사망하죠. 카롤리네와 그녀의 동생은 이제 고아가 되었는데 보호자가 되어야할 카롤리네의 큰오빠는 어린 동생에게 관심이 없었죠. 결국 두 아이의 후견인이 된 인물들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였는데 선제후비인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는 엘레오노레의 절친한 친구였을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권한 결혼으로 매우 불행해졌던 선제후비에 대해 책임감을 느꼈었기에 아이들을 돌보게 됐다고 합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

후에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1세와 그의 왕비인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프로이센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선제후비였던 조피 샤를로테는 프로이센의 왕비가 됩니다. 조피 샤를로테는 하노버 선제후의 딸로 그녀의 어머니는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인 조피 선제후비였으며 오빠는 후에 영국의 조지 1세가 되는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그 루드비히였습니다. 조피 샤를로테는 지적으로 매우 뛰어났으며 강인한 성품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유주의를 좋아했으며 과학과 철학에 심취했었는데 라이프니츠와 평생 교류하면서 지냈고 여러 학자들을 후원했었죠.  카롤리네는 조피 샤를로테의 궁정에 오기 전까지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손글씨에 매우 서툴렀고 평생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롤리네는 조피 샤를로테의 궁정에서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후견인이었던 조피 샤를로테의 성품이나 재능을 많이 닮아가게 됩니다. 외동아들밖에 없었던 조피 샤를로테는 카롤리네를 마치 딸처럼 여겼으며 카롤리네 역시 조피 샤를로테를 어머니처럼 여겼을듯합니다. 둘은 모녀가 닮듯이 닮아갔으며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되죠.



조피 샤를로테

초상화 상으로는 엄마인 조피 선제후비랑 무진장 닮아보이네요


혼기에 이르자 아름답고 지적인 카롤리네는 가장 괜찮은 신부감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특히 조피 샤를로테의 어머니인 하노버의 조피 선제후비는 카롤리네를 매우 괜찮게 봤습니다. 첫번째 혼담은 1703년에 나오게 됩니다.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아들이자 오스트리아 대공이었던 카를 대공이 카롤리네에게 청혼한것이었죠. 이 혼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인물은 프로이센 국왕이었습니다. 하지만 1704년 카롤리네는 혼담을 거절하는데 그녀가 가톨릭으로 개종해야하는 문제 때문에 대공과의 결혼을 거절한것이었죠. 

1705년 6월 카롤리네는 다른 남편감인 하노버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조피 샤를로테 왕비의 조카로,그의 할머니가 카롤리네를 손자의 아내감으로 선택했고 둘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죠. 당시 결혼해서 후계자를 얻으라는 압력을 받던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에게 적당한 가문의 어떤 여자든 상관은 없었을듯합니다만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의 아버지였던 하노버 선제후는 아들이 자신과 같이 불행한 결혼을 하기 원치 않았기에 직접 신부감을 만나보도록 했다고 합니다.



하노버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

후에 영국의 조지 2세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는 곧 카롤리네에게 반했고 카롤리네 역시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에게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1705년 8월 헤렌하우젠의 성당에서 결혼하죠.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다음 카페 "로얄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 중 율리아님의 글 "조지 왕조의 공주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