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하노버 가문이야기를 하는군요.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는 조지 1세의 사촌이자 부인으로 조지 2세와 프로이센의 왕비이자 프리드리히 대왕의 어머니가 되는 조피 도로테아의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불화가 극심했고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죽을때까지 남편을 저주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8)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 조지 1세의 부인(첫번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Sophia Dorothea of Brunswick and Luneburg
(15 September 1666 – 13 November 1726)
일반적으로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도로테아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게오르그 빌헬름과 그의 정부이자 부인이 되는 엘레오노르 마리 드미에 돌브뢰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게오르그 빌헬름은 사실상 정식으로 결혼할수 없는 복잡한 계약관계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게오르그 빌헬름은 원래 팔츠의 조피와 결혼하려 했었는데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막내동생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와 조피와의 결혼을 성사시킵니다. 대신 그는 정식 결혼을 포기하므로써 그의 상속영지가 막내동생에게 상속될수 있도록 하므로써 조피와 그녀의 자녀들에게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기로 했었습니다.
조피 도로테아의 아버지
게오르그 빌헬름
하지만 게오르그 빌헬름은 1664년 한 프랑스 출신의 귀족 여성을 만나면서 사랑에 빠집니다. 엘레오노르 돌브뢰즈는 투아르 공작부인의 시녀였는데 공작부인이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러 카셀로 갔을때 게오르그 빌헬름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게오르그 빌헬름은 엘레오노르를 곧 정부로 맞아들였으며 1666년에는 둘의 딸인 조피 도로테아가 태어나죠.
게오르그 빌헬름은 결국 1674년 딸을 위해 엘레오노르와 귀천상혼 형태로 결혼했으며 2년후에는 딸을 적자로 인정했고 엘레오노르와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공표했었습니다.
조피 도로테아의 어머니
엘레오노르 돌브뢰즈
이것은 매우 미묘한 문제였는데 이 결혼때문에 게오르그 빌헬름의 상속권의 일부가 조피 도로테아에게 가게 되었으며 이것은 그가 동생의 결혼때 했었던 계약과는 다른 것이었죠.
하지만 조피 도로테아는 딸이었고 독일에서는 딸들에게는 영지의 상속권이 없었기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와 팔츠의 조피 사이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백부들의 영지를 상속받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복잡한 상속문제가 있었지만 조피 도로테아의 부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이때문에 조피 도로테아는 행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아름답고 활기찬 소녀였던 조피 도로테아가 적자로 인정받으면서 그녀는 상속녀로 유럽의 왕가에서 관심갖는 신부 후보가 됩니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에서는 가문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상속되는것을 원치 않았으며 결국 조피 도로테아는 백부들과 아버지로부터 모든영지를 상속받게될 게오르그 루드비히와 결혼하게 되죠.
하노버의 게오르그 루드비히
조피 도로테아의 남편
후에 영국의 조지 1세
1680년
이 결혼은 신랑신부의 아버지들은 상속문제에 대해서 해결할수 있었기에 흡족해했다고 합니다. 특히 신랑의 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는 조피 도로테아를 며느리감으로 매우 흡족해했었습니다. 조피 도로테아는 아름다웠으며 그녀와 아들과의 결혼은 가문의 상속재산을 지키는것은 물론 형인 게오르그 빌헬름의 재산을 아들이 상속받는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랑 신부는 이 결혼에 대해서 서로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둘은 사촌관계로 어린시절부터 알았지만 서로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둘이 결혼하게 되었을때 크게 실망했으며 특히 조피 도로테아는 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을 되돌릴수는 없었을듯합니다.
결혼 다음해인 1683년에는 아들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투스가 1686년에는 딸 조피 도로테아가 태어나지만 부부사이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멜루진 폰 데어 슐렌베르크를 정부로 들였으며 조피 도로테아는 이런 남편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재미난것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그녀의 시아버지이자 숙부였던 하노버의 선제후는 아들 책임이라고 여겼던 반면 시어머니인 조피 선제후비와 아버지인 게오르그 빌헬름은 조피 도로테아가 이 상황을 참고 살아야한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멜루진 폰 데어 슐렌부르크
조지 1세의 정부
하여튼 이런 문제는 곧 조피 도로테아가 큰 스캔들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다음 카페 "로얄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 중 율리아님의 글 "조지 왕조의 공주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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