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흑 쓰다보니 길어져서 결국 두개로 나눴습니다.-0-;;;;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7) 슈톨베르크-게데른의 루이제 : 영 프리텐더의 부인(두번째)
슈톨베르크-게데른의 루이제
영 프리텐더의 부인
알바니 백작부인
Princess Louise Maximilienne Caroline Emmanuele of Stolberg-Gedern
(20 September 1752 – 29 January 1824)
1774년 루이제와 영 프리텐더는 피렌체로 옮겨가서 살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알바니 백작과 백작부인"이라는 이름을 자주 사용했었죠. 그리고 1776년 이탈리아의 시인이었던 비토리오 알피에리 백작이 그들의 궁정에 나타납니다. 이전에 루이제는 로마에서도 젊은 남자들과 만나긴 했었습니다만, 그들과의 관계는 연애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알피에리 백작과의 관계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둘은 1778년 연인관계가 되죠. 하지만 사람들은 오래도록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합니다.
루이제가 연애질을 시작할 무렵, 영 프리텐더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전에 오래도록 술을 마셔왔고, 이 때문에 가끔 정상적 행동을 하지 않을때가 있었던듯합니다. 왜냐면 1780년 루이제가 남편곁을 떠나 수녀원으로 도망쳤는데 그녀는 남편이 그녀를 때려서 피신할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교황과 투스카니 대공비(에스파냐의 마리아 루이사,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2세의 황후) 그리고 심지어 시동생이었던 추기경-공작인 요크 공작까지도 루이제의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루이제를 지지하고 후원해줬는데 모두들 그녀가 알피에리 백작과 연인관계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나이든 후의 영 프리텐더
루이제는 남편과 떨어져 로마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알피에리 백작 역시 로마로 돌아왔죠. 둘은 다시 만났지만 이후 2년간 둘이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비밀로 붙였습니다. 하지만 1783년 4월 요크 공작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알피에리 백작은 로마를 떠나라는 압력을 받게 되죠.
1784년 4월 영 프리텐더와 루이제는 공식적으로 별거하게 됩니다. 둘은 교황령에 살았고 그 결과 이혼을 할수는 없었습니다. 교황령에서는 이혼이 아예 성립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이제는 남편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1784년 6월 루이제는 바덴의 온천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8월에 알피에리 백작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둘은 두달간 함께 지낸뒤 다시 헤어졌는데, 이것은 루이제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던 추기경-공작이 둘 사이를 알게 되면 루이제의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후 루이제는 볼로냐로 돌아갔지만 다음해에 다시 파리에 갔다가 또 알피에리 백작과 만나서 잠시 함께 지낸후 돌아가는것을 반복합니다. 결국 1786년 추기경-공작은 루이제와 알피에리 백작과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형수와 시동생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후 루이제는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대놓고 알피에리 백작을 만났으며 1786년 12월부터는 공개적으로 그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비토리오 알피에리 백작
1788년 영 프리텐더가 사망한뒤, 루이제는 공식적으로 과부가 되었으며 이제 알피에리 백작과 결혼할수 있는 몸이 되죠. 하지만 알피에리 백작은 결혼제도에 회의적이었으며 이때문에 루이제와 알피에리 백작은 함께 살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습니다. 루이제는 남편이 죽은뒤 초기에는 알피에리 백작과 파리로 가서 그곳에서 정착합니다. 그녀는 살롱을 열었으며 유명한 작가,예술가등을 초대했었으며 그녀는 곧 유명인사가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사는것은 위험했는데 당시 프랑스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었으며 왕족이었던 루이제와 귀족이었던 알피에리 백작은 프랑스에서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되죠.
1792년 10월 둘은 파리에서 간신히 몸을 피했고, 이후 피렌체에 거주합니다. 알피에리 백작은 피렌체에 집을 구입했으며 이곳에서 루이제는 파리에서처럼 다시 살롱을 열게 되죠. 하지만 피렌체의 살롱은 파리의 살롱보다 규모가 매우 작았다고 합니다.
루이제
파브르의 그림
1803년 알피에리 백작이 사망한 뒤, 루이제는 화가인 프랑수아-자비에 파브르와 자주 함께 지내게 됩니다. 파브르는 알피에리 백작과 루이제의 오랜 친구였는데, 루이제는 그에게 재산을 물려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알피에리 백작이 죽은뒤 그녀는 여전히 피렌체에 머물렀는데, 1809년 나폴레옹은 그녀를 파리로 불러오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루이제를 이용하려했지만, 루이제는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다음해인 1810년 루이제는 피렌체로 돌아갔었습니다.
1824년 루이제가 죽은뒤 루이제의 재산은 파브르에게 상속되었는데, 파브르는 이 재산을 가지고 고향에서 미술학교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파브르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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