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이야기의 비극적 부분을 해야겠군요.
개인적으로는 뭐랄까 조피 도로테아가 부모가 사랑하는 모습만 보고 자라서 자신도 그렇게 될거라고 꿈꿨던듯해요. 그냥 당대의 다른 왕족들처럼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받아들였다면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지낼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ㅠㅠ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9)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 조지 1세의 부인(두번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Sophia Dorothea of Brunswick and Luneburg
(15 September 1666 – 13 November 1726)
조피 도로테아는 남편이 자신말고 정부를 들인것에 견딜수 없어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화를 내게 되죠. 하지만 가부장적 독일인이었던 조피 도로테아의 남편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아내의 이런 행동을 참지 않았죠. 부부는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조피 도로테아 역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듭니다.
스웨덴 출신의 귀족이었던 필립 크리스토프 폰 쾨닉스마르크 백자은 그가 16살때인 1681년 첼레에서 처음으로 조피 도로테아를 만났습니다. 쾨닉스마르크 백작은 스웨덴의 유력가문 출신으로 그의 누나인 마리아 아우로라는 폴란드의 국왕이자 작센의 선제후였던 아우구스투스 2세의 정부로 그녀의 아들은 프랑스 육군 원수로 유명한 모리스 드 삭스였죠.
쾨닉스마르크와 조피 도로테아는 처음 만났을때부터 서로에게 끌렸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그냥 순수한 사이였었다고 합니다. 둘이 다시 만난것은 1688년 이었습니다. 조피 도로테아는 남편이 정부를 맞고 자신을 무시하는것에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조피의 시동생들은 형수를 힘내게 하기 위해 조피 도로테아의 살롱에 쾨닉스마르크를 데려왔다고 합니다. 쾨닉스마르크는 2년동안 하노버에 머물렀으며 조피 도로테아의 살롱에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둘 사이는 그저 호감을 가진 정도였을뿐이었죠.
필립 크리스토프 폰 쾨닉스마르크
1690년 쾨닉스마르크는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하노버를 떠났다 돌아왔는데, 조피 도로테아와 쾨닉스마르크는 서로 떨어져있는 동안 점차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게 되었으며 둘은 러브레터들을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1692년 둘의 연애편지가 조피 도로테아의 시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선제후는 이 사건이 알려질것을 두려워해서 쾨닉스마르크를 프랑스와의 전투에 내보내기로 했으며 하노버에 오는것도 금지하죠. 하지만 쾨닉스마르크는 자신의 지위를 사임하고서라도 하노버로 가려고 했고 결국 선제후는 하노버에서 쾨닉스마르크를 추방합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조피 도로테아의 남편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아내를 비난하죠. 이런 비난에 조피 도로테아 역시 정부를 들인 남편을 비난했으며, 둘의 싸움은 매우 커지게 됩니다.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아내와 몸싸움을 하면서 때렸으며 결국 시종들이 둘을 간신히 떼어놓을 정도였죠.
조피 도로테아의 남편
게오르그 루드비히
후에 하노버의 선제후
영국의 조지 1세
1694년 쾨닉스마르크는 갑자기 궁정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는 아마도 살해당했으리라고 추정되는데 여기에는 선제후(조피 도로테아의 시아버지)의 정부였던 플라텐 백작부인과 궁정 조신 일부가 가담했으리라 여겨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피 도로테아 역시 남편에게서 이혼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혼당한뒤 아이들과 볼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재혼도 금지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첼레에 있는 알덴 성에 유폐되어서 살아야만했습니다.
조피 도로테아의 두 자녀들은 어머니와 떨어진것에 대해서 애석하게 생각했는데 조지 1세와 조피 도로테아의 아들인 조지 2세는 아버지와 늘 원만하지 못한 사이였는데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빴던 이유중 하나가 조피 도로테아를 조지 1세가 감금한것이었습니다. 또 조피 도로테아의 딸이자 후에 프로이센 왕비가 되는 조피 도로테아 역시 늘 어머니를 생각했고 결혼후에 조금이라도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두 자녀들과 함께 있는 조피 도로테아
조피 도로테아는 첼레의 성에 갇혀서 30년 이상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1726년 조피 도로테아는 병이 들었고 죽어가게 되죠. 그녀는 죽어가면서 전 남편이자 이제 영국의 국왕이 된 조지 1세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무덤에서도 그를 저주하겠다고 썼었죠. 조지 1세는 조피 도로테아가 죽었음에도 그의 궁정에서 상복을 입는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딸이 있는 프로이센에서 상복을 입고 있다는 소리에 화를 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지 1세 역시 조피 도로테아가 죽은 4주후에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앞과 동일
그림출처
앞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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