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레티 공비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이군요.-0-;;
위키에는 사진도 안나오는데 말입니다.
뭐 일요일까지 해야하는 법은 없으니까 은근슬쩍 끝내도 될듯하기도 해요.-0-;;;
참고로 클레망틴은 "나폴레옹 가문의 여성들"편에서 했고, 아스트리드는 "왕비가 된 스웨덴 공주들"편에서 했고, 조제핀-샤를로트는 룩셈부르크 대공가 이야기할때 했습니다.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12) 마리 조제 : 알베르 1세의 딸(첫번째)
벨기에의 마리 조제
이탈리아의 마리아 조제 왕비
Marie José of Belgium
(Marie José Charlotte Sophie Amélie Henriette Gabrielle)
(4 August 1906 – 27 January 2001)
사진출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가문 홈페이지 -0-;;;
http://www.sachsen-coburg-gotha.de
벨기에의 마리 조제 샤를로트 소피 아멜리 앙리에트 가브리엘은 1906년 벨기에의 추정왕위계승자였던 알베르와 그의 부인인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의 막내아이이자 고명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벨기에 왕가의 유일한 남성 후손이자 국왕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남은 남성이었기에 국왕이 죽은후에 왕위에 오를것이 확실했죠. 마리 조제의 어머니는 바이에른 공작의 딸로 고모가 미모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시씨황후였습니다. 마리 조제의 이름은 외할머니였던 포르투갈의 마리아 요제파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마리 조제는 매우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마리 조제의 부모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아이들을 무척이나 자유롭게 키우는 인물들이었죠. 이때문에 마리 조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스포츠를 즐겼다고 합니다. 또 마리 조제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사상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했으며, 또 전통적인 왕가의 교육 역시 받게 했다고 합니다.
마리 조제의 부모
벨기에의 알베르 1세와 그의 부인인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
1차대전이 일어나자 마리 조제는 영국으로 보내집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전쟁이 끝날때까지 영국에 있었죠. 그동안 그녀의 부모는 벨기에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웠으며 후에 큰오빠인 레오폴 역시 벨기에 군에 들어가서 전선에 나갈정도였다고 합니다. 전후 마리 조제는 벨기에로 돌아오게 되죠.
18살이던 1924년 마리 조제는 사교계에 처음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녀의 첫 무도회때 그녀는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 소유였던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신구를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할머니 플랑드르 백작부인의 외할머니가 바로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였습니다.)
어린시절의 마리 조제
더벅머리 소녀라 첨봤을때 깜짝 놀랐다는..ㅎㅎㅎ
마리 조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탈리아 왕가로 시집가도록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훗날의 왕비감으로 교육받았었는데, 마리 조제는 13살때 미래의 남편이 될 움베르토를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때 마리 조제는 어머니의 고모이자 한때 양시칠리의 왕비였던 마리 조피를 만났는데, 마리 조피는 마리 조제에게 사보이아가문을 경계하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사보이아 가문이 이탈리아를 통일하면서 양시칠리와도 전쟁을 했었습니다. 마리 조피는 포위상황에서 용감하게 저항했다고 알려져있죠.)
사보이아의 움베르토
후에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2세
1930년 1월 8일 23살의 마리 조제는 25살의 이탈리아의 왕위계승자인 움베르토와 로마에서 결혼했습니다. 결혼하면서 마리 조제는 피에몬트 공비가 되죠. 움베르토는 이탈리아의 제1왕위계승자로 "피에몬트 공"칭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후 마리 조제는 이탈리아 식이름인 "마리아 주세피나"라는 이름으로 바꾸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죠. 대신 절충안으로 "마리아 조제"라는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결혼직후 마리 조제는 움베르토와 함께 토리노에서 살았습니다. 움베르토는 당시 토리노에 주둔하던 보병연대 대령으로 있었죠. 마리 조제는 시댁 식구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벨기에 왕가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교육시켰으며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도록 했었던 반면, 이탈리아 왕가는 전통적인 왕가의 교육을 고집했었기에 이탈리아 왕가에서는 마리 조제의 자유주의적 사상을 이해할수 없었을듯했으며 마리 조제 역시 이런 답답한 이탈리아 왕가 사람들과 잘 지내기 힘들었을듯합니다. 마리 조제의 남편 역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결국 이런 차이는 마리 조제와 움베르토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죠. 그녀는 점차 시댁 식구와 남편과 남편 주변인물들과 거리를 두게 되죠.
마리 조제와 움베르토의 결혼식
1933년 마리 조제와 움베르토는 나폴리로 가서 살게 됩니다. 이때가 마리 조제와 움베르토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위키피디어
2.이탈리아어 위키
3.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가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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