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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11)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 : 알베르 1세의 왕비

엘아라 2013. 7.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엘리자베트 왕비까지 왔군요.

엘리자베트 왕비와 딸인 마리 조제까지 하고 나면 끝일듯합니다.

클레망틴이나 아스트리드 왕비나 조제핀-샤를로트는 이미 앞에서 해서 그냥 넘어갈까합니다.

사실 레오폴 3세의 귀천상혼한 부인인 레티 공비(릴리안 바엘)이나 레오폴 2세의 오랜 정부였던 카롤린 라크와도 해야하는데 일단 여기서는 건너뛸까 싶습니다.(나중에 할거 없으면 하죠뭐-0-;;)


[벨기에 국왕 양위 특집]벨기에 왕가의 여성들...(11)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 : 알베르 1세의 왕비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

벨기에의 엘리자베트 왕비

Duchess Elisabeth in Bavaria 

(Elisabeth Gabriele Valérie Marie, Duchess in Bavaria

(25 July 1876 – 23 November 1965) 



바이에른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 가브리엘 발레리 마리는 바이에른 공작인 카를 테오도르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포르투갈의 마리아 요제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아버지는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시씨황후의 동생으로 엘리자베트의 이름 역시 유명한 고모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트는 양치실리의 왕비나 알랑송 공작부인의 조카이기도 했었죠. 엘리자베트의 어머니인 마리아 요제파는 미구엘 1세의 딸로 자매들이 유럽의 여러 왕가와 혼인관계를 형성해서 유명한 인물이죠. 이때문에 엘리자베트는 어머니 쪽으로도 룩셈부르크 여대공이나 오스트리아의 황후등과 사촌관계이기도 했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여동생인 마리 가브리엘은 바이에른의 왕태자였던 루프레히트와 결혼했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부모

바이에른 공작 카를 테오도르와 그의 부인인 인판타 마리아 요제파


엘리자베트는 매우 화목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카를 테오도르는 예술 감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안과의사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술을 사랑했으며 특히 그림과 조각작품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엘리자베트는 부모가 일하던 병원에 자주 방문했었고 이 영향으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의 아버지인 카를 테오도르는 뮌헨에서 정식 개업의로 일했었습니다. 그는 왕족이었기에 돈이 필요해서 개업한것이 아니라 의사로써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서 개업한것이었죠. 이때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인 마리아 요제파는 남편을 도와 병원에서 자주 일했었으며 이런 부모때문에 엘리자베트 역시 아버지의 병원을 자주 방문했고 자라서는 아버지의 일을 돕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는 독일어,프랑스어,영어를 했으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줄 알았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트


엘리자베트는 1897년 화재로 사망한 고모 알랑송 공작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갑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벨기에의 추정왕위계승자이자 플랑드르 백작의 아들인 알베르를 만나게 됩니다. 알베르의 누나가 알랑송 공작부인의 며느리였기에 알베르 역시 이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이죠. 둘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고 몇달후 알베르는 엘리자베트에게 청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청혼을 수락했죠. 둘의 약혼기간은 3년이나 됐는데 이동안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나갔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다고 합니다. 둘은 1900년 뮌헨에서 결혼했습니다.



알베르와 엘리자베트의 약혼사진


비록 "Crown Prince"의 지위를 정식으로 받지는 않았지만, 알베르는 당시 벨기에 왕가의 유일한 남성후손으로 왕위계승자나 다름없었습니다. 특히 1905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는 실질적인 제1왕위계승자였죠. 그리고 1909년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2세가 사망하면서 알베르는 국왕이 되고,엘리자베트는 왕비가 되죠. 알베르 1세와 엘리자베트 왕비 그리고 자녀들은 화목한 모습을 보였으며 벨기에에서 매우 인기 있는 왕족이 됩니다.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벨기에는 독일의 침략을 받습니다. 알베르 1세는 독일에 협력하길 거부했고 이때문에 독일과 전쟁을 해야했죠. 알베르 1세는 벨기에 군과 함께 독일과 끝까지 맞서 싸웠으며, 14살의 장남인 레오폴이 입대해서 싸우는것을 허락할 정도였습니다. 엘리자베트 왕비는 남편을 도와 전선을 자주 방문했고, 다친 병사들을 간호했으며 영국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명분으로 몰래 기밀서류를 전달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1차대전이 끝난뒤 벨기에에서 국왕 부부는 전쟁영웅으로 칭송받았으며 엘리자베스 왕비는 독일 출신이었음에도 매우 인기있게 됩니다.



엘리자베트의 남편 알베르 1세와 장남 레오폴


1934년 알베르 1세가 등산중 추락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엘리자베트 왕비는 남편의 죽음에 크게 충격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인 레오폴과 그의 아내인 아스트리드는 매우 인기있었기에 왕비는 왕실에 대한 걱정을 덜해을듯합니다. 남편이 죽은후 엘리자베트 왕비는 예술에 대한 후원에 점차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아인슈타인과도 친분을 쌓았다고 알려져있죠.


하지만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이 다시 벨기에를 점령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아들인 레오폴은 독일에 항복했고 엘리자베트 왕비를 비롯한 왕족들은 성에 억류당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 엘리자베트 왕비는 유대인 아이들 수백명의 목숨을 살리게 됩니다. 왕비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독일쪽 친척들과 국왕의 어머니라는 지위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브뤼셀이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나게 되자, 엘리자베트 왕비는 자신의 거처를 영국군 사령부로 이용하도록 허락하기도 했었죠.



영국의 메리 왕비와 함께 있는 엘리자베스 왕비

옷 스타일로 봐서는 1920년대쯤 돼보입니다.



전후 아들인 레오폴 3세가 퇴위해야할 처지에 이르렀을때 왕비는 장남을 옹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차남이 섭정이 되는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이것은 1960년대 그녀가 공산주의 국가들인 소련,중국,폴란드를 방문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때문에 엘리자베트 왕비는 종종 "Red Quee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기도 하죠. 벨기에 정부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엘리자베트 왕비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냉전시대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을 했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 왕비는 예술을 후원했으며 특히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트 콩쿨"은 엘리자베트 왕비의 이름을 딴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그녀는 약학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이에 대한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 왕비

1920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