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2)덴마크의 조지 : 앤여왕의 남편(두번째)

엘아라 2013. 7.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2)덴마크의 조지 : 앤여왕의 남편(두번째)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조지(요렌)

컴벌랜드 공작

Prince George of Denmark and Norway, 

Duke of Cumberland 

( 2 April 1653 – 28 October 1708),


1683년 7월 28일 30살의 조지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제 3왕위계승자였던 요크 공작의 딸인 18살의 레이디 앤과 세인트제임스 궁정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둘의 결혼식에는 앤의 백부이자 잉글랜드 국왕인 찰스 2세와 그의 부인인 캐서린 왕비 그리고 신부의 아버지와 새어머니인 요크 공작 부부가 참석했었죠.  앤은 잉글랜드의 중요 왕위계승자로 의회에서는 앤에게 매년 2만파운드 연금을 지급하기로 했었습니다. 조지 역시 덴마크의 영지에서 매년 만파운드의 수입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이 돈을 자주 미뤄서 주거나 덜줬었다고 합니다.) 찰스 2세는 앤과 조지를 위해 런던에 있는 "콕핏 the Cockpit"이라고 알려진 화이트홀 궁전에 딸린 부속건물들을 선물로줬다고 합니다. 이 곳은 앤과 조지가 런던에 있을때 거처가 되죠.


조지는 잉글랜드의 중요 왕위계승자와 결혼했지만,그는 동서인 오라녜공과 달리 그다지 야심이 없는 인물이었으며 아내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자신의 가장 큰 소망은 아내와 차마시면서 대화하고 근교를 다니는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에세 조용한 삶을 보내주셨다라고 이야기할정도였습니다.





앤은 결혼 직후 아이를 임신합니다만, 곧 아이를 사산했었습니다. 하지만 앤은 온천에가서 요양하면서 몸을 회복했고 다음 두해동안 메리와 앤 소피아 두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비록 딸들이긴 했지만, 두명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기에 이제 왕위계승자에 대한 걱정을 덜해도 됐을듯합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하죠. 1687년 조지와 두딸은 천연두에 걸리게 됩니다. 이때 앤은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유산했었죠. 조지는 다행히 천연두에서 회복되었지만, 두 딸은 그렇지 못했죠. 두 아이를 잃은 부부는 무척이나 상심이 컸는데 앤은 유산한뒤였으며, 조지는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부부는 상심해서 울고는 했는데 이 와중에서도 앤은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했다고 합니다.  일년후 앤은 다시 임신했습니다만 역시 아이는 사산됐다고 합니다.


1685년 앤의 백부인 찰스 2세가 사망하고 앤의 아버지인 요크공작이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조지는 국왕의 사위로 의회와 내각회의에 참석했습니다만 그에게 실권이 있었던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제임스 2세의 대관식에 조지의 동서인 오라녜공이 참석하길 거부했었는데 그것은 오라녜공은 제임스의 맡사위이긴 했지만 그는 prince의 아들이었으며 겨우 "공화국"인 네덜란드의 수반이었던 반면 조지는 King의 아들이자 동생이었기 때문에 예법상 조지가 더 높은 지위였고 대관식에서도 이에 따라야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2세가 즉위할 당시 제1왕위계승자는 앤의 언니 메리였지만, 메리는 오라녜공과 결혼한후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었기에 당연히 제2왕위계승자가 된 앤과 조지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특히 국왕과 왕비가 가톨릭교도였기에 신교도였던 앤과 조지에게 신교측 사람들이 대거 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앤과 조지를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정치 세력들을 "콕핏 서클"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앤의 아버지 제임스 2세


1688년 6월 제임스 2세에게 왕위계승자가 될 아들 제임스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이상한 소문들이 파다했었으며 사실상 앤과 조지 역시 이 이상한 소문에 어느정도 연루되어있었을것입니다. "워밍팬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서 앤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것은 앤과 조지가 잉글랜드내 신교도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었기대문이 아닐까합니다. 결국 1688년 11월 조지의 동서이자 제임스 2세의 맏사위인 오라녜공은 아내의 정당한 왕위계승권리를 찾는다는 명분과 잉글랜드내 신교도들의 지지를 힘입어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오게 됩니다. 훗날 "명예혁명"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사건은 사실상 오라녜공의 잉글랜드 침공이었으며 런던 앞바다에 떠 있던 수많은 네덜란드 전함을 본 잉글랜드 사람들은 매우 놀랐으며, 잉글랜드내 신교도들은 앞다투어 오라녜공에게 달려갔다고 합니다.



오라녜공의 잉글랜드 도착

제가 본 책에서는 이 광경에 대해 " 앞바다를 가득 메운 네덜란드 함대에 잉글랜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라고 언급하고 있더라구요.


이 상황에서 조지는 비록 신교도였지만 일단 국왕편에 서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