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4)덴마크의 조지 : 앤여왕의 남편(네번째)

엘아라 2013. 8.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왜 길어졌나 싶었더니 명예혁명...ㅠ.ㅠ때문에 그런듯합니다.

제가 스튜어트 왕가에 별로 관심이 없음에도 어떨결에 스튜어트 왕가에 대한 책이나 명예혁명에 대한 책을 좀 읽는 바람에 이모양이 된듯합니다.-0-;;;;


영국의 왕비들...번외편(4)덴마크의 조지 : 앤여왕의 남편(네번째)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조지(요렌)

컴벌랜드 공작

Prince George of Denmark and Norway, 

Duke of Cumberland 

( 2 April 1653 – 28 October 1708)



앤은 결혼생활동안 수많은 아이를 임신했었습니다. 적어도 열일곱번은 임신햇다고 알려져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산되거나 사산되었으며 살아서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 오래살지 못했었습니다. 1700년에 앤과 조지의 자녀들중 유일하게 생존해있던 아이는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이었습니다만, 글로스터 공작 역시 1700년 11월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잉글랜드의 유일한 계승자는 앤밖에 없는 상황이 되며 결국 가톨릭 왕위계승자를 배제하는 법률이 통과되기에 이르게 되죠.



아들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과 함께 있는 앤


앤이 중요한 왕위계승자였지만, 조지는 여전히 윌리엄 3세 아래서 군대 지위를 얻지 못하고 조용히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702년 윌리엄 3세가 사망하고 조지의 부인인 앤이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조지는 윌리엄 3세 장례위원회 책임자가 되었으며, 아내에 의해서 군총사령관지위에 오릅니다.육군은 물론 해군지위까지도 이어받았습니다. 하지만 해군 실권은 조지가 아니라 말버러 공작의 형이었던 조지 처칠 제독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처칠 가문은 오래전부터 조지와 연결되어있었는데, 말버러 공작의 동생인 찰스 처칠은 조지가 덴마크에 있을때부터 시종이었다고 합니다. 또 말버러 공작의 아내인 사라 제닝스는 앤여왕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여왕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죠. 앤은 남편이 형부의 군사 지위를 모두 물려받길 바랬지만,조지는 윌리엄 3세의 네덜란드 군에 대한 지위를 얻지는 못합니다.앤은 사랑하는 남편 조지를 위해 의회에 일년에 10만파운드의 연금을 지급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조지

총과 배가 그려진것은 그의 군대 지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1706년 조지는 매우 심하게 앓게 됩니다.그는 곧 회복되는듯 보입니다만 곧 다시 병이 악화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때문에 자주 앓아누웠으며 점차적으로 건강이 나빠지게 됩니다. 

"1707년 실리 해군 재난"(실리 제도는 그레이트브리튼섬 근처에 있는 작은 섬들이었는데 에스파냐 계승전쟁에 지원하던 영국 해군 함대가 나쁜 날씨에 위치를 잘못계산하는 바람에 실리제도에  영국 해군 전함이 부딪혔고 전함 네척이 침몰햇으며 1400명의 선원이 폭풍우로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입니다.)이 일어나자 해군 책임자이기도 햇던 조지에게 비난이 쏟아집니다. 조지 처칠과 컴벌랜드 공작인 조지는 사임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며, 말버러 공작은 형에게 직접 사임하라고 편지를 쓸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지 처칠은 앤 여왕의 남편인 컴벌랜드 공작의 보호를 믿고 이를 거절했습니다.



조지 처칠

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의 형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던 1708년 조지의 건강은 매우 나빠졌으며,결국 1708년 10월 28일 켄징턴궁에서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자 앤 여왕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앤여왕은 남편이 죽은 곁을 떠나지 못하고 남편에게 계속 입맞춤을 했었고 말버러 공작이 간신히 여왕을 떼어내야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지의 죽음은 앤 여왕과 말버러 공작부인인 사라 처칠(사라 제닝스)와의 관계를 끝내게 만들기도 합니다. 여왕은 남편의 시신곁에 머물려고 했지만, 공작부인은 여왕에게 다른궁전으로 가서 지내라고 압력을 넣었으며 조지의 초상화등을 다 치워버리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왕의 슬픔을 잊게 하려는 행동이었을 테지만 ,앤 여왕에게는 매우 못마땅한 행동이었죠. 둘의 사이는 정치적 문제때문에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는데 조지의 죽음 이후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지는 1708년 11월 13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개인장으로 묻혔습니다.



덴마크의 요렌 왕자

덴마크의 조지

컴벌랜드 공작

앤 여왕의 남편


앤여왕의 남편인 컴벌랜드 공작 조지는 매우 조용하고 나서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당대에 그는 편안하고 조용하며 튀지 않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조지가 매우 무능력하고 바보같은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윈스턴 처칠은 컴벌랜드 공작에 대해 앤여왕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에게 "아주 약간 중요한 인물"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죠.

조지는 해군 훈련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항법에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항법에 관련된 책을 출판하는것을 후원하기도 햇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거의 활동하지 않았으며 단지 배 모형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다였습니다만, 아내인 여왕에게 언제나 충실한 남편이자 신하였다고 합니다.

앤여왕과 조지는 서로에게 매우 성실했는데, 둘은 많은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모두 잃었으며 이런 비극은 부부사이를 더욱더 공고히하는 계기였다고 합니다.


17세기말 18세기 초 유럽은 남성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여왕과 그 남편이라도 남편이 더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표적인 예가 앤의 언니 형부였던 메리2세와 윌리엄 3세였습니다. 윌리엄 3세는 아내와 동등하게 왕위에 올랐으며, 메리는 남편에게 성실했었죠. 윌리엄은 아내의 권리와 자신의 권리를 동등하게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조지는 아내인 앤에게 성실했고, 앤이 여왕으로써 권력을 대표했습니다. 조지는 아내의 재산과 권력을 이용할 마음이 없었으며 아내에게 어떤 요구나 주장도 하지 않았으며 그는 스스로 아내인 여왕의 신하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상적 여왕의 남편"의 모습이기도 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앤 여왕과 컴벌랜드 공작 조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머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