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베네룩스

[네덜란드 여왕 양위 특집] 네덜란드의 왕비들...번외편 헨리에트 둘트레몬트 드 베지몬트

엘아라 2013. 5.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중간에 이렇게 글이 어중간하게 끝나는것이 제일 싫어서 말입니다.

시리즈는 새로운 주에 맞춰서 새롭게 늘 하고 싶은것인데 이렇게 특집이 어중간하게 끝나는것이 제일 싫다죠.

어쨌든 금요일까지 뭔가 더 써봐야겠습니다.-0-;;;;;


네덜란드의 첫번째 국왕이었던 빌렘 1세도 아들에게 양위를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황은 20세기 여왕들과 좀 달랐는데 그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양위해야했고 그 중심에는 그의 귀천상혼한 아내인 헨리에트가 연결되어있습니다.


[네덜란드 여왕 양위 특집] 네덜란드의 왕비들...번외편 헨리에트 둘트레몬트 드 베지몬트



헨리에트 둘트레몬트 드 베지몬트

나사우 백작부인

Countess Henriëtte Adriana Ludovica Flora d'Oultremont de Wégimont

(28 February 1792 –26 October 1864)


헨리에트 아드리아나 루도비카 프로라 둘트레몬트 드 베지몬트 백작녀는 왈론의 백작이었던 페르디난트 둘트레몬트 드 베지몬트와 요한나 수잔나 할트스틴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문은 리에주에 있던 가톨릭을 믿던 가문으로 헨리에트의 할아버지는 리에주의 중요한 정치가였다고 합니다.

헨리에트의 아버지는 헨리에트가 7살때 사망했으며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브뤼셀과 에노에서 거주했었습니다. 이후 헨리에트는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으며,1817년에는 빌렘 1세의 왕비였던 빌헬미나 왕비의 시녀가 되었습니다.



헨리에트


이후 1837년 빌렘 1세의 아내인 빌헬미나 왕비가 사망했고, 18개월뒤인 1839년 홀아비가 된 빌렘 1세는 아내의 시녀였던 헨리에트와 정식으로 결혼하길 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문제가 되죠. 1830년 벨기에 혁명으로 벨기에가 독립하면서 네덜란드는 벨기에를 상실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네덜란드는 주로 신교를 믿었으며 벨기에는 주로 구교를 믿는것도 한몫했었습니다. 그런데 헨리에트는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을 믿는 여성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가문은 벨기에에서 중요한 귀족 가문중 하나였었죠. 결국 네덜란드에서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교도와 결혼하려는 빌렘 1세의 인기가 추락하게 됩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헨리에트와 빌렘이 결혼하므로써 갈등을 일으키는것을 원치 않았죠.

결국 빌렘1세는 1840년 11월 아들인 빌렘 2세에게 양위한뒤 베를린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헨리에트 역시 빌렘 1세를 따라 갔죠. 둘은 1841년 2월 베를린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고 둘은 베를린에서 주로 거주했습니다. 둘이 결혼했을때 빌렘 1세는 68살이었으며 헨리에트는 48살이었죠. 빌렘은 퇴위후 "나사우 백작"이라는 칭호를 썼으며,헨리에테 역시 "나사우 백작부인"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프로이센으로 가는 빌렘 1세와 헨리에트

1840년


헨리에트는 나이든 남편을 돌보는데 열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인 빌렘 1세는 결혼 3년후 사망했습니다. 나이든 남편을 잘 돌봤던 헨리에트에 대해 네덜란드 왕실에서는 호의적이었으며, 빌렘 1세가 죽은뒤 아헨근처에 있는 성에서 거주하도록 해줬습니다. 헨리에트는 1864년 사망했으며, 그녀의 소원에 따라 베지몬트에 있는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빌렘 1세가 헨리에트와 결혼하기 원했던 시점부터 헨리에트가 오래도록 빌렘 1세의 정부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헨리에트가 18살이었던 1810년 그녀는 빌렘 1세의 정부가 되었으며 그의 아이 둘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빌렘 1세는 아내가 죽은뒤 헨리에트와 결혼하려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있는데 특히 1930년대 헨리에트와 빌렘 1세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인물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조금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헨리에트와 빌렘 1세의 후손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가져오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