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번에 할 여대공은 페르디난트 3세의 세번째 부인의 큰딸인 엘레오노레 입니다.
그러고 보니 합스부르크가문이 오래도록 폴란드와 통혼을 했군요.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33) 엘레오노레 :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레 마리아 요제파
폴란드의 왕비
로렌의 공작부인
Eleonor Maria Josefa of Austria
(Eleonora Wiśniowiecka orEleonora Habsburżanka)
(21 May 1653 – 17 December 1697)
엘레오노레 마리아 요제파는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그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만토바의 엘레오노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3세는 엘레오노레가 4살무렵 사망했었습니다만, 그녀의 어머니인 황태후는 의붓아들인 레오폴트 1세가 즉위한 후에도 궁정에서 은퇴하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엘레오노레의 부모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그의 세번째 부인인 만토바의 엘레오노라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요한2세 카시미에르 바사는 1668년 퇴위했으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의 왕위는 비어있어습니다. 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귀족들은 선거를 통해 국왕을 선출하려 하고 있었죠. 엘레오노르의 이복오빠였던 레오폴트 1세는 폴란드 국왕으로 로렌 공작이었던 샤를 5세를 지지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폴란드의 국왕으로 선출된다면, 동생인 엘레오노레를 그와 결혼시키려 했었죠.
하지만 폴란드 왕위는 폴란드 귀족 출신의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미하우의 아버지였던 제레미 미하우 비시니오비에츠키는 매우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이때문에 폴란드 귀족들은 미하우를 지지한것이었죠. 결국 엘레오노레는 1669년 12월 폴란드 국왕인 미하우와 결혼하게 됩니다.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
폴란드의 국왕
엘레오노레의 남편
미하우와 엘레오노레의 결혼생활은 정치문제때문에 매우 복잡하게 됩니다. 미하우는 아버지와 달리 그렇게 강인한 성품이 아니었으며 결국 귀족들은 유약한 국왕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 엘레오노레는 결혼 다음해에 임신을 했지만 아들을 사산했으며, 다음해에는 아이를 유산했습니다. 하지만 미하우에 불만을 가졌던 귀족들은 국왕이 왕비에게 임신한척하라고 요구했다는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으며, 국왕이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레
1670년
엘레오노레는 폴란드에 있는 동안 남편에 매우 충실했으며,자신의 조국이 된 폴란드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엘레오노레는 남편이 폴란드를 여행할때면 늘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비록 글을 쓸때는 라틴어를 쓰긴 했지만, 폴란드어를 말하는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또 왕비로써 매우 자비로웠으며 성품또한 훌륭했다고 합니다. 폴란드 궁정에서 남편과 자신에 대한 악의적 이야기를 하는것에 상처를 입었지만, 언제나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도 합니다.
폴란드의 엘레오노라 왕비
1673년 그녀의 남편인 미하우가 사망한뒤 엘레오노레는 잠시 폴란드에 남습니다. 그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국왕으로 요한 3세 소비에스키가 선출된 이후 엘레오노레는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갑니다.
1678년 엘레오노레는 처음 혼담이 오갔었떤 로렌의 공작인 샤를 5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남편이 죽은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엘레오노레는 로렌 공작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며 둘은 오래도록 연애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오빠인 레오폴트 1세는 동생과 공작의 결혼을 승인해줬습니다. ( 이 로렌 공작이 투르크로부터 빈을 구한 그 로렌 공작입니다.) 비록 오랜 연애관계이긴했지만, 이 결혼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햇는데 당시 로렌 공작령은 루이 14세에 의해서 점령당한 상태였으며, 샤를 5세는 자신의 영지를 되찾기 위해 강력한 세력이 필요했었는데 합스부르크가문은 부르봉가문과 견줄만한 세력이었죠.샤를 5세는 레오폴트 1세와 매우 좋은 친구관계가 되었으며, 훗날 투르크의 공격으로 빈이 위험에 빠졌을때 오스트리아를 구하게 되죠.
로렌 공작 샤를 5세
엘레오노레의 두번째 남편
엘레오노레와 샤를 5세 사이에서는 모두 여섯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큰아들인 레오폴은 로렌 공작으로 루이 14세의 조카였던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도를레앙과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는 프란츠 슈테판이죠.
엘레오노레는 1697년 44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엘레오노레
로렌의 공작부인
1684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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