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31) 티롤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엘아라 2013. 3. 1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티롤계의 첫번째 분가 끝입니다.

사실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역시 앞에서 했습니다.레오폴트 1세의 두번째 황후였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울궈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미묘하게 다를 예정입니다.ㅎㅎㅎ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31) 티롤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티롤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Archduchess Claudia Felicitas of Austria 

(30 May 1653 – 8 April 1676)



티롤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티롤을 포함하는 상오스트리아의 통치자였던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증손자로,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조카)와 그의 부인인 안나 데 메디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그녀의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과 어머니 안나는 무려 열두살이나 차이가 났는데 안나가 페르디난트 대공보다 열두살이나 많았습니다. 결혼할 당시 페르디난트 대공은 18살이었고, 안나는 30살이었죠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일반적으로 인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외가가 있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녀의 부모는 토스카나의 궁정을 좋아했으며 안나는 토스카나에 자신의 궁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자주 피렌체를 드나들었는데 이때문에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가 피렌체에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죠.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의 부모

상오스트리아의 통치자였던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과 안나 데 메데치

페르디난트 카를의 어머니 역시 메디치 가문 출신이고, 안나의 어머니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었죠.

또 안나의 친할머니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기도 했었습니다.

(가계도 그릴려니 귀찮아서..ㅠ.ㅠ 예전에 어디 그려놨던가?)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노래를 불렀으며 작곡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 사냥을 좋아햇고 매우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것은 부모의 영향이 컸던듯한데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메디치 가문 사람들처럼 예술을 후원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비록 정치적으로는 절대군주제를 추구하던 인물이긴햇지만, 음악을 매우 사랑했으며 특히 오페라에 열성적이었다고 열려져있기 때문입니다.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로 그려진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의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은 그녀가 11살때인 1662년 사망했습니다. 대공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며, 결국 상오스트리아는 대공의 동생인 지그문트 프란츠 대공이 이어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 결혼 직후인 1665년 사망했고 결국 티롤을 포함한 상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가문 본가인 황제 레오폴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의 어머니인 안나 대공비는 티롤 지방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실상 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죠. 이 문제는 오래도록 합스부르크가문내에서 문제가 되는데, 1673년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가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면서 해결됩니다.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의 어머니

안나 대공비 

남편이 죽은뒤 상복을 입고


황제 레오폴트 1세는 1673년 첫번째 아내인 안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잃었습니다. 첫번째 아내와의 사이에 살아남은 아이는 딸밖에 없었고 황제에게는 후계자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여러명의 후보가 올랐는데 레오폴트 1세의 총리는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가 황후가 되는것을 반대햇다고 합니다. 하지만, 티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황제와 상속권리를 주장하는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와 결혼하는 방법이 가장 빠른것이었죠. 




황제 레오폴트 1세

...이게 미화임.ㅠ.ㅠ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레오폴트 1세의 애도 기간이 끝난 1673년 10월 황제와 결혼합니다. 이때 클라우디아는 20살이었고 황제는 33살이었죠.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젊고 매력적이었지만, 황후지위에 대해서 겁먹은 모습을 보였고,이때문에 결혼식때 황제는 그녀에 대해서 "나의 마르가레타와는 다르다"라고 아쉬워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매우 좋았는데 황제는 어린 아내에 대해서 잘 대해줬으며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역시 남편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살았죠. 게다가 황후는 남편을 위해 가끔 오페라를 상연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기도 했기에, 사람들은 황후가 황제에게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할까봐 걱정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결혼 3년반동안 두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는 결핵으로 1676년 4월 사망했으며 1675년 태어난 딸인 마리아 요제파 여대공도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해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더힉 쓰고보니 왕창 다르군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