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리아나를 하는군요.
사실 딸인 마르가리타 테레사에 대해서는 많이 봤는데 어머니인 마리아나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안 봤었던듯합니다. 마리아나에 대해서는 어린나이에 정략결혼해서 결혼생활을 힘들어했다..정도만 읽었었다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32) 마리아나 (마리아 안나) :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마리아 안나)
에스파냐의 왕비
Mariana of Austria
(Maria Anna; 24 December 1634 – 16 May 1696)
후에 마리아나라고 불리게 되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는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에스파냐의 마리아 안나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마 그녀의 이름인 "마리아 안나"는 어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듯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에스파냐식 이름인 "마리아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이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때는 30년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그녀의 아버지는 아내가 임신한 대부분을 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나의 부모
페르디난트 3세와 에스파냐의 마리아 안나
둘은 사촌지간으로 마리아 안나의 어머니가 페르디난트 3세의 고모였습니다.
물론 족보를 더 파면 더 복잡합니다-0-;;
마리아나의 어머니인 인판타 마리아 안나는 펠리페 3세의 딸로 에스파냐-합스부르크가문 출신이었죠. 그리고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가와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페르디난트 3세와 결혼했습니다. 이처럼 합스부르크 가문은 두 분가 사이의 상속권을 지키기 위해 자주 혼인관계를 유지했었습니다. 이때문에 복잡한 근친혼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마리아나 역시 1646년 11살의 나이로 사촌이었던 아스투리아스 공 발타자르 카를로스와 약혼하게 됩니다. 발타자르 카를로스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4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엘리자베트 드 부르봉의 아들이었죠. 하지만 발타자르 카를로스는 마리아나와 약혼한 그 해에 사망합니다.
발타자르 카를로스는 펠리페 4세의 유일한 왕위계승자였으며 그의 죽음은 펠리페 4세에게 왕위계승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펠리페 4세의 아내이자 발자타르 카를로스의 어머니였던 이사벨은 이미 사망한뒤였었죠.
펠리페 4세의 아들이자 마리아나의 약혼자였던 발타자르 카를로스와 그의 어머니인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결국 펠리페 4세는 아들의 약혼녀였으며 조카이기도 한 마리아나와 재혼하기로 결정합니다. 합스부르크 두 분가 사이의 우호와 왕위계승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죠. 1649년 만 14살의 마리아나는 외삼촌이었던 펠리페 4세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결혼후 그녀는 에스파냐 식으로 "마리아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죠. 펠리페 4세의 살아남은 자녀인 마리아 테레사는 이때 열한살로 마리아나보다 겨우 네살밖에 어리지 않아습니다.
펠리페 4세
마리아나는 1651년 열여섯살의 나이로 첫째딸인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낳습니다. 그리고 1655년 또다른 딸을 낳게 되죠. 아마 이때문에 마리아나는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을듯합니다. 왜냐면 의붓딸이자 사촌이었던 마리아 테레사가 이때 추정왕위계승자였기때문이었죠. 그리고 1657년 아들인 펠리페 프로스페로를 낳았으며 다음해에도 역시 아들인 페르디난도 토마스를 낳아서 후계자 문제를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1559년에는 페르디난도 토마스가 사망햇으며 1661년에는 펠리페 프로스페로마저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장남이 죽은 5일후에 아들인 카를로스를 낳았죠.
마리아나의자녀들중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는 장녀인 마르가리타 테레사와 막내아들인 카를로스 밖에 없었습니다.
마리아나
1665년 마리아나의 남편인 펠리페 4세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3살밖에 안된 그녀의 아들인 카를로스 2세가 3살의 나이로 즉위했으며,마리아나는 섭정이 됩니다. 남편이 죽은뒤 마리아나의 장녀인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외삼촌이었떤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에스파냐를 잃지 않으려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정책때문이엇는데,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동생인 카를로스는 너무 어렸고, 후계자없이 사망할 경우 마르가리타 테레사에게 상속권이 돌아가기 때문이었죠.(언니인 마리아 테레사는 프랑스 왕비가 되었는데 이때 에스파냐는 숙적인 프랑스 왕가에 에스파냐 왕위계승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 왕위계승권을 포기시켰으며 그대신 엄청난 지참금을 주기로 했었습니다. 문제는 이 지참금이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때 루이 14세가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하게 된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마리아나의 아들인 카를로스 2세는 매우 연약했으며, 오랜 근친결혼의 결과 심각한 안면기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기형은 카를로스 2세가 성인이 되었어도 정상적인 통치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마리아나는 지속적으로 아들의 섭정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아들이 성인이 된 직후에도 마리아나는 섭정으로 통치하고 있었지만 곧 남편의 사생아였던 돈 후안에게 섭정의 지위를 뺏기게 됩니다. 이 계기는 마리아나가 총애했던 신하와 마리아나 사이의 스캔들때문이었으며 결국 마리아나는 톨레도로 가서 살았습니다.하지만 1679년 돈 후안이 사망한뒤 마리아나는 다시 궁정으로 복귀하죠.
남편이 죽은후 어린 아들 카를로스 2세와 함께 있는 마리아나
1679년 카를로스 2세는 루이 14세의 조카였던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과 결혼합니다. 그는 아내에 대해 과도할 정도의 애정을 보였지만 후계자는 얻지 못했으며 결국 결혼 10년후인 1689년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이 사망합니다. 그녀가 죽었을때 한동안 마리 루이즈가 독살됐으며 그 배후에는 후계자를 원했던 마리아나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카를로스 2세는 곧 재혼했는데, 두번째 부인은 팔츠-노이부르크의 마리아 안나로 그녀는 마리아나의 남동생인 레오폴트 1세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의 여동생이기도 했었습니다. 후에 마리아나는 며느리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나의 아들 카를로스 2세
1696년 마리아나는 유방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마리아나가 죽은 3년뒤 에스파냐의 추정왕위계승자였던 바이에른의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사망합니다. 요제프 페르디난트는 마리아나의 외손녀이자 레오폴트 1세의 딸이었던 마리아 안토니아의 아들이었죠. 그의 사망으로 카를로스 2세는 결국 에스파냐 왕위를 이복누나의 손자였던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에게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기게 되죠. 그리고 이것은 결국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의 시작이 되게 됩니다.
마리아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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