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이미 한번했었습니다.
그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였거든요.
아하하..사실 다음으로 할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라서 앞에서 했었습니다.
울궈먹는것도 좋군요..ㅎㅎㅎ
이번에도 미묘하게 다를 예정입니다.-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30) 티롤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증손녀
티롤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Maria Leopoldine
(6 April 1632 – 7 August 1649)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 여대공은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증손녀로 오스트리아의 대공인 레오폴트 5세와 그의 부인인 클라우디아 데 메디치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대공은 오스트리아의 카를 대공의 아들이자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동생으로 마리아 레오폴디나와 페르디난트 3세는 사촌간이기도 했습니다.레오폴트 대공은 원래 어린시절부터 성직자가 되어 20대에 슈트라스부르크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오스트리아(Futher Austria or Upper Austria)의 영지를 상속받게 되면서 성직자의 길을 그만두게 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아버지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대공
주교시절 모습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어머니인 클라우디아 데 메데치는 투스카니의 대공이었던 페르디난도 1세와 그의 부인인 로렌의 크리스티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클라우디아의 할아버지는 투스카니의 대공이자 메디치 가의 중흥을 이끌었던 코시모1세였고 할머니는 상속녀에 매우 아름다웠던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였죠. 클라우디아의 외할아버지는 프랑스의 앙리 2세였으며 외할머니는 카트린 데 메데치였습니다.
클라우디아 데 메데치
클라우디아는 첫번째 남편과 사별한후 레오폴트 대공과 재혼했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나가 태어난지 두달만에 아버지 레오폴트 대공이 사망했었으며,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큰오빠인 페르디난트 카를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하지만 페르디난트 카를은 아직 어렸기에 어머니인 클라우디아 대공비가 섭정으로 상오스트리아의 통치에 관여했었습니다.
1641년 겨우 아홉살이던 마리아 레오폴디나에게 혼담이 들어오게 됩니다. 상대는 팔츠의 카를 루드비히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보헤미아의 겨울 왕과 왕비"로 유명한 팔츠의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였죠. 카를 루드비히의 외삼촌인 잉글랜드의 찰스 1세와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사촌이었던 페르디난트 3세가 주선한 혼담이었죠. 하지만 이 혼담은 양가문의 거센 반대로 끝나게 됩니다. 사실상 팔츠 가문과 합스부르크가문은 완전히 견원지간이나 다름없었죠. 카를 루드비히의 가문을 쫓아낸것이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이었으며, 합스부르크 가문 측에서는 합스부르크가문의 영지나 다름없던 보헤미아를 덥썩 삼키려했었던 팔츠 가문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죠.
팔츠의 카를 루드비히
그는 부모와 함께 망명후 여기저기 떠돌다가 30년전쟁이 종식되면서 다시 팔츠 선제후령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딸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테를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 엘리자베트 샤를로트의 외손자가 바로 로렌의 프란츠 슈테판으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되는 분 되겠습니다.
황제 페르디난트 3세는 1646년 아내를 잃은후, 사촌인 마리아 레오폴디나와 1648년 결혼합니다. 이때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16살이었으며 페르디난트 3세는 40살로, 페르디난트 3세의 큰아들인 페르디난트는 마리아 레오폴디나 보다 겨우 한살 어렸습니다. 결혼식은 매우 성대하게 치뤄졌는데 작곡가였던 안드레아스 라우흐(Andreas Rauch)는 이 결혼식을 "30년전쟁의 가장 아름다운끝"으로 여길정도였다고 합니다. 지오반니 펠리스 산체스(Giovanni Felice Sances)가 작곡한 오페라 "Trifoni d'Amore"가 마리아 레오폴디나와 페르디난트3세의 결혼식을 기념에서 작곡되었는데, 상연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면,결혼식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4세가 사망해서 애도기간이 겹치면서 오페라 상연이 불가능했으며, 애도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그만 잊혀지게 된것이었죠.
페르디난트 3세
...미화임=-=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결혼 다음해 첫아이인 카를 요제프를 낳습니다. 하지만 매우 난산이었고, 아이는 무사히 출산했지만 열일곱살의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사망했죠.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외아들이었던 카를 요제프는 외할아버지처럼 성직자로 키워집니다만 열다섯살의나이로 사망합니다.
카를 요제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독일어 위키 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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