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우아앙..ㅠ.ㅠ 알고보니 페르디난트 1세의 딸인 바르바라를 빼먹었습니다.
알려주신 "바람처럼"님 감사합니다.
어쨌든 이제 레오폴트 1세 딸들 하기전이라 얼른 해볼까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여대공들...(35)바르바라 :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바르바라
페라라 공작부인
Barbara of Austria
(30 April 1539 – 19 September 1572)
오스트리아의 바르바라 여대공은 황제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부인인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안나의 열한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바르바라는 다른 자매들과 함께 인스부르크에서 매우 엄격한 가톨릭교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1565년 25살의 바르바라는 페라라의 공작이었던 알폰소 2세(알폰소 데스테)의 두번째 부인이 됩니다. 이 결혼은 합스부르크가문의 전통대로 정략결혼이었는데, 합스부르크가문은 페라라 공작가문이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인것을 우려했으며 이에 합스부르크가문의 여성을 시집보내서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친밀성을 강조하려했었던것이죠.
페라라 공작
알폰소 2세 데스테
페라라 공작이었던 알폰소 2세는 페라라 공작인 에르콜2세와 그의 부인인 프랑스의 르네의 아들이었습니다. 르네는 루이 12세와 그의 부인인 안 드 브르타뉴의 딸이었죠. (앞쪽에서 설명했었는데 루이 12세는 막시밀리안 1세의 딸이자 페르니난트 1세의 고모인 마르가레테의 약혼자였고, 안 드 브르타뉴는 막시밀리안 1세의 약혼녀였습니다. 하지만 안이 브르타뉴 공작령을 상속받자 루이 12세가 두개의 결혼을 깨고 무력으로 안과 결혼했었죠.) 젊은 시절 알폰소는 프랑스의 앙리 2세 밑에서 합스부르크가와의 전쟁에 참전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르네
바르바라의 시어머니
그녀는 남편이 죽은뒤 프랑스로 돌아가야했다고 합니다.
둘의 결혼식은 매우 호화롭게 열렸으며,둘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다고 합니다.(알폰소2세는 세번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리날도"로 유명한 시인이었던 토르콰토 타소가 페라라 궁정으로 와서 바르바라를 위한 소네트를 쓰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570년 11월 15일과 16일 페라라에서는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후 4년이나 여진이 진행되었으며, 특히 1571년 2월까지 여진이 2000여차례나 일어난 엄청난 상황이었죠. 알폰소와 바르바라는 간신히 도시를 빠져나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지진이후 페라라는 수많은 상인들이 떠나버렸으며 이때문에 경제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합니다.
지진이후 바르바라는 자신의 개인 수입으로 지진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개설했으며 후원하게 됩니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바르바라가 페라라에서 인기있는 왕족이 되게 했었죠.
바르바라는 엄격한 가톨릭 신자로 늘 예수회와 연결을 끊지 않았고, 후원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에 있던 시어머니인 르네와의 관계도 좋게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시어머니인 르네는 신교도였으며 이때문에 교황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페라라에 있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갔어야했었죠.
바르바라는 결혼직후 병을 앓은후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으며, 1572년 33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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