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데지레 클라리...번외편(2)1810년 경의 스웨덴 왕가 사람들

엘아라 2013. 1.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데지레가 스웨덴으로 갔던 1810년경 스웨덴 왕실에는 전 왕가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데지레는 궁정에서 적응하는것이 힘들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스웨덴에는 왕비,대비,공주등등이 살아있어서 왕실어른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야심도 없는 단지 "프랑스 여성"일 뿐인 데지레에 대해서 별로 안 좋게 봤고 이때문에 데지레는 궁정에서 힘들었고 집으로 짐싸서 가버렸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새해특집]데지레 클라리...번외편(2)1810년 경의 스웨덴 왕가 사람들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로 선출되었던 시점에서 스웨덴의 국왕은 칼 13세였습니다. 그는 아돌프 프레드릭과 프로이센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의 둘째아들이었죠. 형인 구스타프 3세가 암살당한후 조카인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섭정을 지내기도 했었습니다. 조카가 쫓겨난뒤 귀족들에 의해서 국왕이 되었지만 그가 즉위했던 1809년에는 60살의 노인이었죠



칼 13세


칼 13세의 왕비였던 샤를로타 왕비는 홀슈타인-고토로프 출신으로 남편과의 사이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서 배제 당했었지만 늙은 남편이 즉위한뒤로는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었습니다. 베르나도트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로 선출되었던 시기, 샤를로타 왕비는 베르나도트가 아닌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아들인 구스타프 전 왕세자를 지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베르나도트를 만난뒤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칼 13세의 서자인 칼 뢰벤헬름 백작이나 그의 이부형인 구스타프 뢰벤헬름 백작 모두 베르나도트를 만난뒤 베르나도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샤를로타 왕비는 베르나도트에게는 매우 열광했지만 데지레에게는 차갑게 대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녀는 데지레가 프랑스인으로 스웨덴에 그다지 관심없는것에 못마땅해했는데 샤를로타 왕비는 유명한 자신의 일기에 데지레에 대해서 "자신의 새조국을 힐끗이라도 보려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었습니다.



샤를로타 왕비

1810년경


국왕과 왕비 외에 왕실 가족으로는 칼 13세의 형수이자 구스타프 3세의 왕비였으며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어머니인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와 칼 13세의 여동생인 소피아 알베르티나 공주가 있었습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는 "스웨덴 왕실 역사상 가장 외로운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녀는 덴마크 공주로 구스타프 3세와 정략결혼했었죠. 시어머니인 로비사 울리카 왕비는 며느리에게 매우 차갑게 대했으며 남편인 구스타프 3세는 그녀와 형식적인 결혼생활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후계자를 위해 남편과 함께 살았고 결국 후계자를 낳습니다만 이것은 도리어 스웨덴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 이후 남편이랑 다시 별거했고 남편은 암살당하죠. 아들이 즉위했지만 아들은 왕위에서 쫓겨나 아들 가족 모두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녀혼자 스웨덴에 남았었습니다. 그녀는 데지레가 스웨덴에 왔을때 따뜻하게 대해줬던 몇안되는 인물중 하나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가 왕위계승자가 된뒤 베르나도트의 견제를 받았고 결국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궁정에 발길을 끊게 됩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

1792년경


칼 13세의 여동생이었던 소피아 알베르티나 역시 궁정에 머물고있었습니다. 그녀는 미혼으로 평생을 살았는데 이때문에 종종 "Ice princess"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정치적 이유때문에 결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롤로테 폴스베르라는 여성의 강한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때문에 롤로테가 소피아 알베르티나의 사생아라는 소문마저 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롤로테는 소피아 알베르티나의 딸이 아니라 이복 여동생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포시아 알베르티나 역시 베르나도트와 거리가 있었습니다만, 오스카르 1세와는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데지레가 스웨덴으로 돌아왔을때도 살아있었으며, 데지레의 첫손자인 칼이 태어났을때 국왕에게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소피아 알베르티나 공주


스웨덴에는 없었지만 쫓겨난 국왕인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그의 부인인 프레데리카 왕비와 그들의 네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프레데리카 왕비는 결국은 이혼했었죠. 둘의 아들인 구스타프는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바사공"칭호를 받았는데 일반적으로 스웨덴식으로 구스타프손 구스타프로 더 잘알려져있습니다. 그의 외동딸인 카롤라는 작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큰딸인 소피아는 어머니의 숙부인 바덴 대공과 결혼해서 바덴대공비가 되었는데 소피아의 손녀인 빅토리아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기도 하죠.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프레데리카 왕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