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절대 메와르 글을 안 읽어서 그런건 아니구요.(읽었거든요...단지 정리가 안될뿐..)
우수 블로그가 된 기념으로 글을 하나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썼던것같은데 올해는 좀 일찍군요.
아하하..우수블로그가 되었답니다.
아무래도 남들 안하는거 하다보니 플러스 요인이 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늘 혼자밖에 없다고 자랑질하는 베르나도트나 마르소 전기는 별 관심이..ㅠ.ㅠ)
늘 제 글을 읽고 댓글 열심히 달아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물론 댓글 안다신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수줍게 글만 읽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제 글읽고 저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글을 가져간분들께는 감사안합니다.--;;;
(올해도 남의 집에 가있는 제글을 안보길 바랬지만 잘 안되더군요..-0-;;)
하여튼 우수 블로그 된 기념으로 뭘 쓸까 고민했었는데 누구 시리즈를 쓸려니 그동안 읽은 책이 없어서 뭘 쓸수가 없더라구요. --;; 그래서 위키 읽다가 잠깐 흥미를 가지게된 사람들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시누이-올케지간이었던 이 두 여성은 매우 친한 사이였지만, 둘다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우수 블로그 기념] 남편들에게 살해된 올케와 시누이 : 이사벨라 데 메데치와 레오노라 데 톨레도
피렌체 공작이자 첫번째 토스카나 대공이 되는 코지모 1세 데 메데치는 에스파냐 고위 귀족이었던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는 열한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토스카나 공작인 코지모 1세와 그의 부인인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
그중 이사벨라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사벨라 데 메디치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매우 교육을 잘 받았는데 특히 음악에 매우 재능이 있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사벨라는 자라면서 어머니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를 닮아서 매우 아들다운 여성으로 성장하게 되죠. 이사벨라는 11살이 되던 1553년 12살이었던 파올로 지오르다노 오르시니와 약혼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는데 코지모 1세는 토스카나 대공령의 남부 접경지대에 영지와 로마에서의 연줄때문에 그를 사위로 삼기로 결정한것이었죠.
이사벨라 데 메데치
1550년대 중후반
한편 이사벨라가 약혼하던 그해, 이사벨라의 사촌이 태어납니다.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의 조카이자 이 고모의 이름을 땄었던 레오노라 알라베스 데 톨레도였습니다. 그녀는 메디치 가문의 궁정으로 보내졌고 고종사촌들인 메디치 가문의 아이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이탈리아식으로는 고모와 같이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라는 이름을 썼을듯하지만,고모와 헷갈리기 때문에 에스파냐식인 레오노라나 애칭인 디아노라로 더 잘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레오노르 알바레스 데 톨레도 이 콜론나
엘레오노라 디 그라시아 디 톨레도
"레오노라"또는 "디오노라"
1571년
이사벨라는 1558년 파올로 오르시니와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파올로는 결혼 다음날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돌아갑니다. 이사벨라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았고 대신 피렌체에 머물렀는데 코지모 1세는 딸을 로마로 떠나보내지 않고 데리고 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파올로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인물"이었다고 알려져있었으며 코지모는 사위의 성향이 딸에게 해를 끼칠까 염려되어서 피렌체에 머물게 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이사벨라는 남편을 자주 방문하는 정도였었죠. 그리고 이 방문은 훗날 문제가 됩니다.
이사벨라 데 메데치의 남편
파올로 오르시니
브라치노 공작
1562년 이사벨라의 어머니였던 엘레오노라 디 톨레도가 사망합니다. 이때문에 피렌체에 있던 가장 나이많은 딸이었던 이사벨라가 궁정을 이끌어가는 여성이 되죠. 하지만 1560년대 이사벨라는 몇번의 유산을 했었고 이때문에 20대 후반까지 자녀를 두지 못했었습니다.
한편 엘레오노라는 메디치가의 궁정에서 매우 사랑받는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활기찼기에 메디치 가문 사람들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특히 1561년 딸 루크레치아가 죽은뒤 코지모 1세는 이 조카를 매우 사랑해서 친딸처럼 대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메디치 가문과 톨레도 가문 사이에서는 다시 한번 혼담을 생각하게 되죠. 엘레오노라가 메데치 가문 사람과 결혼한다면 코지모 1세는 딸 같은 조카를 떠나 보내지 않아도 되었고, 엘레오노라의 친가쪽에서는 역시 토스카나 대공가문과의 연결고리가 하나 더 생기는것이었죠. 결국 1568년 엘레오노라가 15살 되던해에 사촌이자 코지모 1세의 막내아들이었던 피에트로 데 메디치와 약혼하게 됩니다.
엘레오노라 데 톨레도의 남편
피에트로 데 메데치
1560년대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는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데 이사벨라는 어머니가 죽은후 토스카나 대공국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었으며 이때문에 궁정에 머물렀던 엘레오노라의 교육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571년에는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의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긴해였습니다. 이사벨라는 드디어 아이를 낳았고, 엘레오노라는 사촌인 피에트로와 결혼했었죠. 엘레오노라는 고모처럼 엄청난 혼수를 해왔지만 고모처럼 행복한 삶을 살진 못하게 됩니다. 피에트로는 매형인 파올로처럼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다고 합니다.
이사벨라는 피렌체에서 자신의 집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지냈습니다. 특히 그녀는 남편의 사촌인 Troilo Orsini와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둘은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했는데 이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사벨라와 트로리오의 관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됩니다. 이사벨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엘레오노라 역시 폭력적 성향의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것은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를 사랑했던 코지모 1세의 영향때문이었죠.
이사벨라 데 메데치
1560년대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코지모 1세가 죽으면서 끝나게 됩니다. 코지모의 아들이었던 프란체스코는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의 삶을 지속하도록 막아주지 않게 됩니다. 결국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의 주변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며 이 이야기들은 남편들에게 들어가게 됩니다.
1576년 7월 11일 프란체스코는 동생인 피에트로에게서 "아내가 사고로 죽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그렇게 알렸습니다만 사실은 피에트로가 엘레오노라를 살해했으며, 프란체스코는 이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모른척했던것이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후에 엘레오노라가 부정을 저질렀으며 엘레오노라의 부정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상대를 투옥했었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에 동생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이야기했었죠. 하지만 후에 프란체스코는 동생인 피에트로를 궁정에서 추방합니다.
엘레오노라가 죽은지 오일후 이사벨라 역시 남편에 의해서 살해당합니다. 이사벨라의 남편은 그녀가 자신의 사촌과 이상한 소문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뒤 이사벨라를 살해했으며, 트로리오 역시 몇달후 파리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가 살해당한것은 당시 토스카나 대공이었던 프란체스코의 책임도 어느정도 있을듯합니다. 그 자신 역시 비앙카 카펠로와의 연애 관계때문에 궁정에서 말이 많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메디치가의 통치에 반대하는 무리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었죠. 어쩌면 이 문제를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해 이사벨라와 엘레오노라의 부정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으며 동생과 매제가 아내들을 살해하는것을 묵인했던것이 아닐까합니다.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데치
토스카나 대공
이사벨라의 오빠이자 엘레오노라의 시아주버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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