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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와르의 투쟁 : 마르와르(Marwar)

엘아라 2012. 11. 1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라즈싱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정리가 안됩니다.--;;;;

전쟁이야기만 왕창 나오고 대충 흐름을 알겠는데 이걸 어찌 써야할지 난감하다죠

인도사는 진짜 모르겠어요..ㅠ.ㅠ 우리나라에서는 인도사에 대한 책도 잘 없고 말입니다..ㅠ.ㅠ


사실 보고있는 책에서는 말와이야기를 아주 쬐금하거든요--;;;

쿨하게 몇마디해주고 바로 무굴제국과의 투쟁에 접어드는데 뭐랄까 안할려니 제가 이해가 안되어서 말와 이야기를 좀 봐볼까합니다.--;;


메와르와 무굴제국의 투쟁: 마르와르(Marwar)


메와르와 무굴제국과의 투쟁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새로운 황제인 아우랑제브와 새로운 라나인 라즈 싱의 이야기였다. 메와르의 라즈 싱은 그의 선조인 프라탑 싱과 비견되는 인물이다. 그의 기사도 정신와 무굴제국의 저항은 당대 최고의 라지푸트 전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하게 된다. 특히 그가 황제에게 보낸 라자스탄 지방의 세금 징수에 대한 부당함을 고하는 편지는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라즈 싱이 처음부터 무굴제국에 적대적이었던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 역시 아우랑제브의 비무슬림에 대한 강압 통치에 부담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무굴제국과의 투쟁에 접어들게 된것은 바로 마르와르(Marwar) 때문이었다.



마르와르지역

회색표시가 말와이고 그 옆에 빨간색 가는 선이 메와르인듯합니다.



마르와르는 인도 라자스탄주의 남서부지역으로 대부분 사막인 지방이었다. 말와라는 이름은 "사막 지역"이라는 산스크리트어"마루와트(Maruwat)"의 영어식 변형이다. 무굴제국 당시 이곳을 통치하던 가문은 라지푸트 족의 일족이었던 Rathore부족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중심지는 조드푸르였다.

마르와르가 강성기였던 시기는 바로 라오 말데오 라토르(Rao Maldeo Rathore)의 통치기였다.그는 이 시기 가장 강력한 힌두스탄 군주로 평가았다. 그의 치세는 운과 능력 두개가 모두 결합된 시기였다. 이 당시 무굴제국의 후마윤은 델리 술탄 왕조의 통치자였던 쉐르 샤 수리(Sher Shah Suri-쉐르 칸)에 의해 쫓겨난 상태였으며,메와르 역시 이전의 전투에서 간신히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시기 라오 말데오는 세력을 늘였었다. 라오 말데오 역시 쉐르 칸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영토를 다시 되찾았다. 



라오 말데오


이후 마르와르는 악바르 대제에 의해 복속당했으며 한동안 무굴제국의 직속 영지로 편입되었었다. 라오 말데오의 아들이었던 우다이 싱은 아버지에 의해서 무굴제국 궁정에 인질로 보내졌었다. 동생이 마르와르의 군주가 되는 동안 그는 여전히 인질로 남아있었는데 악바르 대제에 의해 마르와르가 복속된뒤 그는 무굴제국의 궁정에서 일을 하게 된다.그는 동생이 죽은뒤 악바르에 의해서 무굴제국 총독으로 보내졌으며 후에는 조드푸르 군주로 복귀했으며 "라자"칭호를 쓰게 된다. 특히 우다이 싱의 딸은 자한기르의 세번째 아내로 샤자한의 어머니였다.

이런 무굴제국과의 연대는 마르와르의 통치자가 무굴제국의 궁정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얻게 했으며, 라자스탄 지방을 대표하는 존재로 부각되게 했다. 이후 마르와르의 군주는 "마하라자"라는 칭호를 쓰게 되는데 이것은 라자들 중에 우두머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하지만 대부분 마하라자라는 칭호를 썼다.- 재미난것은 메와르는 마하라나라는 칭호를 썼는데 이것은 무굴제국이 내린 "라자"라는 칭호가 아닌 독자적으로 쓰던 "라나"라는 칭호를 중요시한것이다.)


마르와르와 무굴제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것은 아우랑제브때였다. 마르와르의 통치자였던 자스완트 싱(Jaswant Sinhg)은 아우랑제브가 황제에 오를때 그를 반대했었다. 결국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는 아우랑제브에게 후계자이자 아들은 인질로 보내야만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자 유일한 후계자는 무굴제국의 궁정에서 사망했다. 말와의 연대기에는 아우랑제브가 자스완트 싱의 아들인 프리트비 싱(Prithvi Singh)에게 독이 묻은 옷을 하사해서 매우 고통스럽게 죽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자스완트 싱은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중에 갑작스럽게사망했다. 몇몇 저자들은 자스완트 싱 역시 아우랑제브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자스완트 싱에게는 당장의 남성후계자가 없었으며 이때문에 이슬람 통치 주의를 추구하던 아우랑제브가 마르와르에 이슬람 통치자를 보낼 중요한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자스완트 싱은 복수해줄 후계자가 없다는것에 매우 슬퍼하면서 죽어갔다고 한다.



자스완트 싱


자스완트 싱이 죽을 당시 그의 아내들중 임신중인 아내가 두명이 있었다. 아우랑제브는 그 아내들을 보호하기 위해 델리로 이동하게 했다. 말와의 신하들은 이를 수용했는데 그녀들과 함께 간 사람들중에는 자스완트 싱의 충직한 신하이자 용감한 장군이었던 두르가 다스가 있었다. 

자스완트 싱의 아내 둘은 모두 자스완트 싱의 후계자가 될수 있는 아들을 낳았다. 이렇게 되자 아우랑제브의 태도가 모호했는데 그는 아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 아이들이 아우랑제브의 하렘에서 성장해야한다고 못밖에 된다. 이것은 결국 마르와르의 통치자를 이슬람교도로 만들려는 것이었고 이것은 마르와르의 반발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아우랑제브


먼저 태어난 아들은 아지트 싱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메와르 출신의 왕녀였으며 그녀는 아들의안전을 걱정하게 되었다. 아들이 무굴 제국의 궁정에 있다면 언제라도 죽임을 당할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라니들과 함께 동행했던 신하들은 아지트 싱을 궁정에서 빼돌리기로 결정했다. 무굴제국의 군사들을 겨우 따돌리고 아지트 싱은 간신히 안전한 곳으로 가게 된다. 아지트 싱을 빼돌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두르가 다스는 300명의 사람들을 모았는데,자이푸르에 도착했을때는 일곱명밖에 남지 않았었다고 한다.


두르가 다스는 아지트 싱을 보호하기 위해 메와르의 군주인 라즈 싱에게 간다. 아지트 싱의 어머니가 메와르 출신이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리고 메와르는 다시 한번 무굴제국과의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자료출처

1.Tod's Annals of Rajastan : The Annals of Mewar (Payne)

2.Maharana Raj Sinhg and His times (Sri Ram Sharma)

3.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