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왕비가 되지 못한 국왕의 어머니들...(6) 랭카스터의 블랜치 : 헨리 4세의 어머니

엘아라 2012. 7.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다음은 랭카스터 공작부인인 블랜치이야기군요.

최근에 책을 찾아보다가 초서가 지은 블랜치에 대한 찬양시인 "공작부인 이야기"가 번역된걸 알았답니다.

사실 영어 원본은 제가 파일로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영어(특히 중세영어)여서 읽기 힘들었을뿐이죠.


그래서 그걸 볼까 심각하게 고민했는데...걍 귀찮아서 관두기로 했습니다.-0-;;;;


왕비가 되지 못한 국왕의 어머니들...(6) 랭카스터의 블랜치 : 헨리 4세의 어머니






랭카스터의 블랜치

랭카스터 공작부인

Blanche of Lancaster,

 Duchess of Lancaster 

(25 March 1342 or 1345 or 1347  – 12 September 1368) 



남편인 곤트의 존에게 "랭카스터 공작"지위를 가져다준 상속녀인 랭카스터의 블랜치는 1대 랭카스터 공작이었던 글로스몬트의 헨리와 그의 부인인 이사벨라 드 보몬트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랭카스터 공작 헨리는 아들이 없었고 이때문에 블랜치와 그녀의 언니인 마틸다(모드)와 함께 랭카스터 공작령의 상속녀가 됩니다.


블랜치의 아버지인 글로스몬트의 헨리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는데. 그는 국왕의 좋은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초서는 그에 대해서 "완벽하고, 온화한 기사"라고 언급하고 있죠. 그는 교육을 잘 받았으며 시인과 예술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일을 후에 블랜치도 이어받게 됩니다.



1대 랭카스터 공작 

글로스몬트의 헨리


어린시절 블랜치는 당시 많은 귀족 여성들처럼 왕비가 후견인이 되어 왕자와 공주들과 함께 왕비의 궁정에서 성장합니다. 이때문에 블랜치는 어린시절부터 훗날 남편이 될 곤트의 존이나 후에 존의 정부가 되고 후에는 랭카스터 공작부인이 되는 캐서린 드 로애(캐서린 스윈포드)와도 잘 알았을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블랜치와 곤트의 존과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강력한 귀족이었던 랭카스터 공작의 상속녀와 자신의 아들 중 한명을 결혼시키려했는데 그가 바로 넷째아들인 곤트의 존이었던것이죠. 하지만 이전에 이미 존은 이미 블랜치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는 블랜치에게 빠져들었고 청혼을 했지만 블랜치는 단번에 그를 거절하죠. 몇달간의 절망의 시간이 흐른후 결국 멋진 기사는 아름다운 숙녀와 결혼하게 되죠. 



블랜치의 남편

곤트의 존

랭카스터 공작


블랜치와 곤트의 존의 결혼

19세기 그림


1359년 곤트의 존과 결혼한 블랜치는 처음에는 랭카스터 공작부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언니가  다른 후계자 없이 죽자 랭카스터 공작의 모든 영지는 블랜치가 상속받게 되었고 결국 국왕은 자신의 아들이자 블랜치의 남편이었던 곤트의 존에게 랭카스터 공작 칭호를 부여했으며 블랜치는 랭카스터 공작부인이 됩니다. 당시 블랜치는 the Duchess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당시 블랜치가 잉글랜드에서 유일한 공작부인이었으며 귀족부인들중에 가장 높은 신분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것이죠.



마틸다와 블랜치가 물려받은 영지들

보라색이 블랜치의 영지,연한 군청색이 마틸다의 영지입니다만, 1362년 마틸다가 후계자 없이 죽자  마틸다의 영지도 블랜치가 상속받게 되고 이후 그녀의 남편과 아들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죠.

 


블랜치는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매우 똑똑했고 교육도 잘 받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초서는 블랜치에 대해서 "White Lady"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고 "잉글랜드 여성의 정수"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초서에 따르면 블랜치는 빛나는 금발머리에 온화하고 선량하며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핑크빛이 도는 흰 피부에 생기있었으며 키가 크고 쭉 뻗은 몸매였다고 합니다.


비록 이미 결혼전 사생아 자녀가 있긴 했지만 곤트의 존은 블랜치와의 결혼 생활동안은 다른 여인과 연애질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후계자를 낳아준 아름다운 블랜치를 매우 사랑했었습니다. 블랜치 역시 결혼생활에 만족했었을듯합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증거로 9년간의 결혼생활동안 모두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나게 되죠. 



테피스트리에 묘사된 귀부인

아마도 블랜치의 외모는 이런 전형적인 아름다운 귀부인의 모습과 유사했을듯합니다.

물론 초서가 과하게 "아부한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




하지만 1368년 12월 블랜치는 20대에 사망합니다. 이때 블랜치의 남편인 랭카스터 공작은 잉글랜드에 있지 않고 바다 건너에 있었죠. 아마도 블랜치가 죽은것은 아마도 아이를 낳은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첫사랑이자 아내였으며 후계자의 어머니였던 블랜치의 죽음은 랭카스터 공작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3세는 아들이 슬픔때문에 죽을까봐 걱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은 슬픔때문에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평생 사랑했던 첫번째 아내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겼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죽은후 블랜치와 함께 묻히길 원했으며 자신과 블랜치를 위한 묘에 대한 구상을 해놓기까지 했었습니다.



존과 블랜치의 묘


아내가 죽은 2년후 랭카스터 공작은 두명의 여인을 아내와 정부로 맞이합니다. 카스티야의 콘스탄체와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이전에 랭카스터 공작부인 궁정의 식솔이었던 캐서린 스윈포드를 정부로 맞이하죠. 그는 아내 콘스탄체와는 "카스티야의 왕위"에 대한 꿈을 공유했으며 다른 나머지 모든것들, 특히 죽은 첫번째 아내의 기억은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 공유했을것이라 추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앨리슨 위어)


블랜치와 랭카스터 공작 사이에는 모두 일곱아이가 태어나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세명입니다. 그중 아들인 볼링블룩의 헨리는 후에 사촌인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4세가 됩니다. 딸인 필리파는 포르투갈 왕비가 되는데, 필리파의 후손 중에는 마리 드 부르고뉴나 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 1세 등이 있습니다. 또 다른 딸인 엘리자베스는 세번 결혼하는데 모두 잉글랜드 귀족과 결혼했었습니다.



블랜치의 아들

볼링블룩의 헨리

잉글랜드의 헨리 4세


자료출처

1.Mistress of the Monarchy : the life of Katherine Swynford, duchess of Lancaster (2010, Alison Weir)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