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왕비가 되지 못한 국왕의 어머니들...(4)앤 하이드 : 메리2세와 앤 여왕의 어머니

엘아라 2012. 7. 9. 06:3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앞머리에 늘 "안녕하세요 엘입니다."이걸 넣었더니 검색할때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를 넣어서 검색하신분이 계시는군요.아하하하....반복하면 눈에 익숙해지나봐요!


조지1세의 어머니인 팔츠 선제후비 조피를 넣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는데 안 넣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조피는 왕비가 아니라 "여왕"이 못됐던것이니까요 게다가 앞쪽에서 여성왕위계승자 이야기를 하면서 쭈욱했었기도 하구요. 그래서 비슷한 케이스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나 마틸다 황후등은 안할 예정입니다.


앤 하이드와 제임스 2세의 결혼은 좀 복잡했었던듯합니다...아하하..-0-;;;


왕비가 되지 못한 국왕의 어머니들...(4)앤 하이드 : 메리2세와 앤 여왕의 어머니





앤 하이드

요크 공작부인

메리 2세와 앤 여왕의 어머니

Anne Hyde 

(22 March [O.S. 12 March] 1638 – 10 April [O.S. 31 March] 1671)



앤 하이드는 앨즈버리 준남작의 딸인 프랜시스 앨즈버리와 후에 클레런든 백작이 되는 에드워드 하이드경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앤의 가문은  후에 정치적으로 유력한 가문이 되지만 앤이 태어났을때 그녀는 "레이디"칭호를 받는 귀족의 딸은 아니었죠.


앤의 아버지

에드워드 하이드 경

후에 1대 클레런든 백작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면서 잉글랜드에서 내전상태가 되자 앤의 아버지 에드워드 하이드는 왕당파로 왕실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찰스2세의 조언자가됩니다. 이때 앤 역시 왕실이 망명중인 네덜란드로 갔습니다. 앤은 이곳에서 찰스 2세의 누이인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시녀로 일을 하게 됩니다. (메리는 당시 오라녜공비였고 그녀의 아들인 빌렘은 오라녜공의 후계자였습니다만, 남편이 죽은후 정치적 실권은 정치가들에게 넘어가있었으며 이때문에 오빠인 찰스 2세나 동생인 제임스 2세에게 도움을 줄 처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찰스 1세의 자녀들

제임스 2세, 찰스 2세, 프린세스 로열 메리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가 진행되고 있던 1659년경 앤은 찰스 2세의 남동생인 제임스 왕자와 연애를 시작합니다. 찰스 2세는 동생이 앤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했는데 아마도 두가지 이유때문이었을듯합니다. 첫번째는 왕실 복위를 위해서는 외국 세력과의 연합이 필요했고 이런 연합은 주로 "결혼"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자신이나 동생 모두 외국 공주들과 결혼할 필요가 있었을겁니다. 두번째로는 앤 하이드의 가문때문이었을겁니다. 그녀의 친가나 외가 모두 정치적으로 중요한 가문이었고 만약 동생이 앤과 결혼한다면 이 가문들이 정치에 강하게 영향을 미칠것을 우려했던것이죠. 게다가 앤은 매우 의지가 강한 여성으로 제임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칠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

후에 제임스 2세



하지만 제임스는 앤과 결혼하기로 결정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형인 찰스 2세에게 적자들이 태어나서 자신에게 왕위가 돌아올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것이었던듯합니다. 게다가 1659년말에서 1660년 초 앤은 임신을 하게 되죠. 1660년 4월 찰스 2세가 다시 국왕이 되면서 제임스는 국왕의 동생으로 요크공작이 되어서 런던으로 돌아가죠. 아마 앤과 제임스는 이미 비밀리에 결혼했던것으로 추정되지만, 임신한 앤이 아이를 낳기 전에 공식적으로 결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1660년 9월 앤과 제임스는 런던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결혼 두달후에 첫째 아이가 태어나죠.



요크 공작 부부

제임스와 앤


앤은 그리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었으며 외모에 대해서는 그저 그렇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의지가 강한 인물이었는데 프랑스 대사는 앤에 대해서 "용기있고, 똑똑하며, 왕가의 혈통에 맞먹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적고 있었습니다. 이런 앤의 성격은 찰스 2세 동생과 앤의 결혼을 반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죠.



요크 공작부인 앤

1670년대


앤은 나이가 들면서 가톨릭으로 비밀리에 개종합니다. 이것은 앤의 가족들에게 모두 충격이었는데 앤의 친가나 외가 모두 국교회를 독실하게 믿었으며 국교회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찰스 2세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인 앤의 두딸들은 가톨릭이 아닌 신교도로 교육받게 합니다.


앤은 결혼생활동안 모두 여덟아이를 낳습니다만 영유아기를 넘긴 자녀는 딸들인 메리와 앤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명의 딸은 모두 영국의 여왕이 되죠.


앤의 두딸들

메리 2세와 앤 여왕



앤은 막내아이인 캐서린을 낳고 난뒤 쇠약해졌으며 아이를 두달도 안되어서 사망합니다. 앤이 죽은후 앤의 남편인 제임스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아내가 죽은 2년뒤에 열다섯살인 모데나의 마리와 재혼합니다. (제임스 2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가톨릭 교도 아내를 맞이했기에 잉글랜드 내 신교도들이 불안해했지만 제임스 2세의 후계자였던 메리와 앤은 신교도엿기에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데나의 마리가 아들을 낳자 신교도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고 결국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와 사위인 오라녜공에게 자신들을 위해 잉글랜드로 와달라고 했고 이에 오라녜공은 네덜란드군을 이끌고 잉글랜드로 갔습니다. 이것이 명예혁명인데 오라녜공이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전쟁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앤 하이드이후에 잉글랜드 여성이 영국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한 경우는  작고한 웨일즈 공비 다이애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퀸마더인 엘리자베스 왕비는 스코틀랜드 출신입니다.-0-;;-별걸 다 따지고 있는지..ㅎㅎㅎ)




앤 하이드

요크 공작부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