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여러분 식중독에 주의하세요-0-;;
전 죽다 살아났습니다..ㅠ.ㅠ
왕비가 되지 못한 국왕의 어머니들...(2)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 : 조지 3세의 어머니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
웨일즈 공비
조지 3세의 어머니
Princess Augusta of Saxe-Gotha-Altenburg
(30 November 1719 – 8 February 1772)
작센-고타-알덴부르크의 아우구스타는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프리드리히 2세와 그의 부인인 안할트-제르브스트의 마그달레나 아우구스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와 마그달레나 아우구스타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행복한 결혼생활의 증거중 하나로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죠. 아우구스타의 부모는 열아홉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아우구스타는 끝에서 두번째 아이였습니다.
아우구스타의 부모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프리드리히 2세와 그의 부인인 안할트-제르브스트의 마그달레나 아우구스타 (이름이 참 거창하군요...-0-;;)
작센의 작은 공작령들은 장자상속제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여기 엄청나게 복잡합니다. 장자상속제가 아니라서 영지를 지키기 위해 작센의 공작가문들끼리 통혼하는 예도 엄청많았구요.
1735년 열다섯살의 아우구스타는 어머니와 함께 하노버 선제후의 영지를 방문합니다. 아마도 하노버 선제후의 후계자의 신부감으로 선을 보러갔던것으로 같습니다. 당시 하노버 선제후는 바로 영국의 조지 2세였고, 하노버 선제후의 후계자는 영국의 왕위계승자였던 웨일즈공 프레드릭이었습니다. 조지 2세와 프리드리히 2세는 자녀들의 결혼을 성사시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736년 아우구스타는 결혼하기 위해 영국으로 갑니다.
웨일즈공 프레드릭
1736년 열여섯살의 아우구스타는 28살의 웨일즈공 프레드릭과 결혼합니다. 열두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아우구스타와 프레드릭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합니다. 아우구스타가 결혼할 당시 아우구스타는 영어를 할줄 몰랐는데 아마도 이때문에 그녀는 남편에게 의존하게 되었을듯합니다. 이런 관계는 그녀와 시부모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웨일즈공은 부모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웨일즈공은 첫아이가 태어날때 부모가 거기있는것이 싫었기에 이미 진통이 시작된 아내에게 다른 궁전으로 거처를 옮겨가게 할 정도였습니다. 아우구스타 역시 이런 남편의 영향을 받아 시부모와의 관계가 소홀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우구스타
남편인 웨일즈공이 국왕이 되기전 44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자 아우구스타는 아홉명의 아이와 함께 남겨지게 됩니다. 특히 막내인 캐롤라인은 유복자였죠. (이 캐롤라인이 덴마크 왕비가 되어서 스캔들을 일으켰던 그 왕비였군요-0-;;)
남편이 죽은후 아홉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우구스타
남편이 죽은후 아우구스타는 정치적으로 좀더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이 죽었을때 장남인 조지는 열두살이었기 때문이었죠. 조지 2세가 새 웨일즈공이 성인이 되기전 사망할때를 대비해서 의회는 웨일즈공이 미성년으로 즉위할 경우 아우구스타를 섭정으로 임명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때문에 아우구스타의 위치는 매우 중요해지죠.
아우구스타
1759년
남편이 죽은후 아우구스타는 아들의 가정교사였던 뷰트 백작 존 스튜어트 (John Stuart, 3rd Earl of Bute)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뷰트 백작은 죽은 웨일즈공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때문에 조지 3세의 가정교사가 될수 있었죠. 아우구스타가 남편과 친했던 뷰트 백작을 신임했던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던 아우구스타가 특정인물과 가까이 지낸다는것은 상당히 좋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곧 아우구스타와 뷰트 백작 사이에 연애관계일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게 됩니다. 특히 이 소문은 뷰트 백작이 따로 아우구스타를 몰래 만난적이 있었기때문에 훨씬더 확대되어서 퍼졌다고 합니다만 둘 사이에 연애관계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합니다.
존 스튜어트
3대 뷰트 백작
나중에 수상도 되는 분이군요.
이 사람의 집인 루턴후(Luton Hoo)를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아나스타샤 데 토르비 이야기할때 봤었던 집이군요.
이후 아우구스타와 뷰트 백작은 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때문에 아우구스타는 대중에게 오래도록 비호감 대상이 됩니다. 그녀는 아들인 조지 3세가 성인으로 즉위한 후에조차도 이 문제로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타는 52살의 나이에 후두암으로 사망합니다.
아우구스타는 아들이 국왕이 되었지만, 왕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잉글랜드에서 국왕의 어머니를 일컫는 말인 Queen Mother가 될수 없었습니다. 대신 남편이 죽은후 평생 The Dowager Princess of Wale로 살았습니다. 아우구스타는 잉글랜드 역사상 왕비가 되지 못한 세명의 웨일즈 공비중 한명이라고 하네요. (나머지 둘은 누구지?)
아우구스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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