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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씨황후의 형제 자매들

엘아라 2012. 4.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늘따라 글 읽기가 무진장 싫습니다.

그래서 대충 적당히 뭔가를 할려고 했는데 요즘 아무생각없이 살았더니 쓸만한 글이 없습니다.

ㅠ.ㅠ

그래서 결국 주변에 "뮤직컬 엘리자벳"을 보고 흐믓해한분들이 있으셔서 시씨황후에 대해서 잠시 다뤄볼까합니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시씨황후의 형제 자매들에 대해서 알아볼까합니다.

글 많이 안 읽어도 되는거라서 말입니다...아하하...


시씨황후의 형제 자매들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황후

"시씨황후"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황후는 바이에른 공작가문 출신입니다. 이 가문은 살짝 복잡한데,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비텔스바흐 가문의 영지를 몽땅 상속받아서 바에이른 국왕이 될 무렵 남아있던 비텔스바흐 가문 분가는 시씨 황후의 가문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가문도 귀천상혼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가문이었는데 시씨황후의 증조 할머니가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누나였기 때문에 바이에른에서 "공작"가문으로 인정받게 됩니다.(그래서 칭호도 Duke in Bavaria라고 표기된답니다.) 그리고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누나의 손자인 막스를 자기 막내딸인 루도비카와 결혼시켰고 이때문에 시씨황후와 그 형제 자매들은 오스트리아 황제, 작센 국왕의 사촌이 됩니다.



시씨 황후의 부모

바이에른의 공작 막시밀리안과 바이에른의 루도비카

...둘이 족보 관계 따지면 또 복잡합니다.-0-;;

막시밀리안은 루도비카 고모의 손자-0-;;



시씨 황후의 오빠 루드비히

시씨황후의 오빠인 루드비히는 공작 막스와 바이에른의 공주 루도비카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민출신의 여성과 귀천상혼했고 이때문에 가문의 계승권을 박탈당했습니다. 두번결혼했는데 모두 귀천상혼이었습니다. "라리슈 백작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지게 되는 마리는 바로 루드비히의 딸이었습니다. 시씨 황후는 이 조카를 예뻐했다고 합니다만, 라리슈 백작부인은 후에 마이어링 사건에 관계되었죠. ( 마리 베체라를 루돌프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이 바로 라리슈 백작부인으로 황후는 아들이 죽은후 조카와의 관계를 끊었습니다.)



루드비히


마리 베체라와 함게 있는 라리슈 백작부인

...왼쪽이 라리슈 백작부인 오른쪽이 마리 베체라(황태자 루돌프와 함께 자살한 여성)


시씨황후의 언니 헬레네

"네네"라는 애칭의 헬레네는 원래 오스트리아의 황후감으로 프란츠 요제프와 선을 봤었습니다. 하지만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그 선자리에 따라온 시씨를 보고 반해서 시씨와 결혼한것이었죠. 선본 남자에게 차인후 헬레네는 한동안 좌절을 겪었는데 후에 투른 운트 탁시스의 막시밀리안 공과 사랑에 빠집니다. 투른 운트 탁시스 가문은 제국의 우편업무를 담당해서 엄청난 부를 쌓은 가문이었습니다만 비텔스바흐 가문과 통혼하기에는 지위가 높지 않아서 처음에는 바이에른 왕가에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씨는 언니의 행복을 위해서 영향력을 행사했고 헬레네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수 있었죠. 시씨황후의 자매들중 유일하게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케이스라고 합니다. 무척 행복한 결혼생활이었지만 남편이 병으로 일찍 사망했습니다.




헬레네

투른 운트 탁시스 공비


시씨황후의 남동생 카를 테오도르

형인 루드비히가 귀천상혼해서 상속권을 박탈당했기에 공작작위는 카를 테오도르가 이어받습니다. 그는 왕족으로 바이에른 군에 입대했고 전쟁에도 참여했습니다만 그가 원한 직업은 왕족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카를 테오도르는 의사가 됩니다. 그는 특히 첫번째 아내를 잃은데 큰 충격을 받아서 의사가 되는데 더 열성적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는 안과 전문의였는데 자신의 집에서 무료로 환자를 보기도 했으며 뮌헨에서 개업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세운 안과 병원은 현재도 뮌헨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는 두번 결혼했는데 첫번째는 사촌인 작센의 공주였습니다만 결혼 2년후에 사망합니다. 두번째 부인은 포르투갈의 미구엘 1세의 딸이었던 마리아 요제파였는데 둘째딸인 엘리자베트는 후에 벨기에의 왕비가 되었고,셋째딸인 마리아 가브리엘라는 바이에른의 왕태자비가 됩니다.



카를 테오도르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아 요제파



시씨 황후의 여동생 마리아 조피

여동생인 마리아 조피는 언니가 오스트리아 황후였기 때문에 좋은 혼처가 들어옵니다. 양시칠리의 왕위계승자인 프란체스코와 결혼하게 되죠. 둘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는데 아름다운 마리아 조피에 프란체스코는 아내에게 많은것을 양보해줬다고 합니다. (역시 미모의 바이에른 가문..--;;;)

그녀도 남편과 행복하지는 않았는데 대신 왕비로써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보이아 가문 중심으로 이탈리아 통일이 진행되면서 양시칠리와 사르데냐사이에 전쟁을 피할수 없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 조피는 남편과 함께 나폴리에서 떨어진 가에타 요새로 들어갔습니다. 요새의 포위공격동안 마리아 조피는 사람들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 일을 했고 이때문에 "전사 왕비"라는 평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양시칠리는 결국 사르데냐에 합병당했고 마리아 조피는 망명생활을 해야했습니다.

 


마리아 조피

양 시칠리의 왕비



시씨 황후의 여동생 마틸데 루도비카

마틸데 루도비카 역시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마틸데 루도비카는 형부 프란체스코의 동생인 루도비코와 결혼했는데 그가 형부인 프란체스코 2세의 추정상속인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둘 사이는 불행했는데 루도비코는 늘 술을 마셨고, 마틸데는 이런 남편을 벗어나 형제 자매들을 만나기 위해 늘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마틸데

트라니 백작부인



시씨 황후의 여동생 조피 

언니들이 모두 화려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조피의 부모는 조피에게도 좋은 혼처를 알아봅니다. 바로 바이에른의 국왕인 루드비히 2세와의 결혼이었죠. 둘은 어린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기에 결혼은 매우 순조로울듯했습니다. 하지만 루드비히 2세는 결혼직전에 약혼을 파기합니다. 그가 약혼을 파기한 이유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추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루드비히 2세가 조피와의 결혼을 내켜하지 않았다는것입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조피가 다른 남자(사진사)와 잠시 연애관계에 있었다는것도 드는데 그와의 연애편지가 남아있긴했지만 단둘이 만난적이 없기 때문에 파혼한것은 그런 이유때문은 아니었을듯합니다. 어쨌든 이 파혼은 조피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이후 조피는 잠시 친척집에 머물다가 만난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국왕의 손자인 알랑송 공작과 결혼합니다. 알랑송 공작의 어머니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기도 했습니다.

조피 역시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파리의 시장에 화재가 났을때 사망했는데 미리 구출될 기회가 있었음에도 조피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구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조피의 장례식때 조카인 바이에른의 공작 영애 엘리자베트가 벨기에의 알베르 1세와 만났습니다.)




조피

알랑송 공작부인


시씨 황후의 남동생 막시밀리안 엠마누엘

막시밀리안 엠마누엘은 시씨 황후의 막내동생으로 황후가 그의 결혼에 개입한것으로 유명하죠. 막시밀리안 엠마누엘은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아말리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원래 바이에른의 레오포트 왕자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시밀리안 엠마누엘과 아말리는 사랑에 빠져버렸죠. 황후는 좋아하는 막내 동생의 결혼에 힘을 씁니다. 그녀는 레오폴트 왕자를 가족 모임에 초대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장녀인 열다섯살의 기젤라 여대공을 왕자에게 소개시켜줬고 레오폴트는 기젤라 여대공과 약혼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막시밀리안 엠마누엘은 아말리와 결혼할수 있었고 둘은 매우 행복했다고 합니다.



막시밀리안 엠마누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