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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과학자들...(2) 티코 브라헤

엘아라 2012. 3.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역시 아무 생각없을땐 좀 아는걸 이야기해야 글 읽는 시간이 줄어든다죠.

일디보 공연이 끝난지 오래건만....아직도 정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카를로스는 여동생이 애낳은것 자랑질 하느라 팬들을 좀 씁쓸하게 만들었다죠.

(...--;;아니 제랄딘이 애를 낳았는데 카를로스는 왜 동네방네 트윗질에 페이스북까지 난리냐구요.-0-;;;진짜 조카 태어난 오빠 모드...--;;뭐 진작 남매사이라고 여기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확인하니 진짜 좀 씁쓸하다는....)

 

어쨌든 여러모로 마음이 심숭생숭하여--;;이번에도 그냥 땜빵으로 넘어가렵니다.

브라헤 가문은 북유럽의 오래된 귀족가문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에서는 "백작"칭호를 받기도 했는데 왕족에게만 "공작"칭호를 부여하던 스웨덴에서 백작은 왕족 이외 귀족들이 받을수 있는 최고의 지위였습니다.

어쨌든 스웨덴, 덴마크 등에 있던 브라헤 가문의 사람들중 한명인 티코 브라헤는 당대 최고의 점성술사이자 관측천문학자였습니다. 그릭고 제가 어린  시절 열광할만한 특이한 인물이기도 했죠. (네 전 특이한 사람 좋아해요..ㅎㅎㅎ)

 

 

귀족과학자들...(2) 티코 브라헤

 

 

 

 

티코 브라헤

Tycho Brahe

(14 December 1546 – 24 October 1601)

Tyge Ottesen Brahe

저기 걸고 있는 훈장은 덴마크의 코끼리 훈장

(왕족들 이야기에 많이 나오는 그 훈장 맞는건가..ㅎㅎㅎ)

 

티코 브라헤는 현재 스웨덴 남부 지방인 스카니아의 크누트스토르프 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덴마크어로 어떻게 읽냐고요...ㅠ.ㅠ 스웨덴어 읽듯이 읽으면 안되는건가..ㅠ.ㅠ) 그의 아버지은 오테 브라헤는 덴마크 귀족으로 궁정 조신이었으며 그의 어머니 역시 덴마크의 유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티코 브라헤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그의 쌍둥이 형제는 세례를 받기전 사망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티코 브라헤가 태어난 성

현재 스웨덴 남부 지방에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Knutstorps_slott.JPG

 

티코 브라헤는 어린시절 아이가 없던 백부였던 율겐 브라헤에 의해 길러졌습니다. 티코 브라헤의 부모는 자녀가 없던 형 부부를 위해 자신들중 하나를 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율겐은 조카를 납치하기에 이르렀죠. 하지만 티코 브라헤의 부모는 이에 대해서 크게 항의하지 않았으며 티코 브라헤는 백부의 손에 자랐습니다. 티코 브라헤의 백부인 율겐 브라헤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귀족이었으며 아버지와 백부 모두 궁정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궁정 조신이었기에 티코 브라헤는 훌륭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의 백부인 율겐 브라헤는 조카가 자신의 뒤를 잇길 바랬을듯합니다. 티코 브라헤는 코펜하겐 대학에 들어가서 백부의 바램대로 법률을 공부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 천문학에 매료당하게 됩니다. 특히 1560년 일식은 티코 브라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것은 이미 일어날것이라고 예측되어있던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듯합니다.

하지만 율겐 브라헤는 티코 브라헤가 관직에 나가길 원했고, 티코 브라헤를 위해 유럽 여러곳에서 공부하도록 유학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미 천문학에 빠져있던 티코 브라헤는 자신의 멘토를 설득해 결국 유럽의 대학들에서 천문학을 공부하게 되죠.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안 티코 브라헤의 신화가 될 이야기중 하나가 생겨납니다. 그는 동료와 검으로 결투를 했으며 결국 코가 잘리게 됩니다. 결국 평생 그는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했는데, 훗날에 이르러서는 그가 은이나 금으로 된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죠. 하지만 1901년 그의 무덤을 열었을때 구리로 된 마스크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후 티코 브라헤는 연금술과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의 백부이자 양아버지였던 율겐 브라헤가 전투중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를 구하고 난뒤 폐렴으로 사망하자 그는 덴마크로 돌아옵니다. 그후 그는 덴마크에 천문대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연구를 합니다.

티코 브라헤의 천문대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곳중 한곳이 됩니다. 이곳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했었죠. 그의 천문대를 후원한 사람은 프레데릭 2세로 그는 티코 브라헤를 잡아두기 위해 멋진 천문대를 건설하도록 후원했었습니다.

후에 프레데릭 2세가 죽은후, 새 덴마크 국왕은 티코 브라헤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티코 브라헤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국왕이었던 루돌프 2세의 초대로 프라하로 갔고 그곳에서 사망합니다.

 

 

티코 브라헤의 두 후원자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와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 2세

참로고 루돌프 2세 턱이 저런것은 합스부르크가문이라서 그렇습니다.

 

 

티코 브라헤는 귀족으로 매우 오만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습니다만 그는 매우 성실한 관측자였습니다. 그의 시력은 매우 좋았기에 망원경이 아니라 맨눈으로 관측을 했지만 정확도는 아주정밀했다고합니다.그는 매일 밤마다 관측을 했는데 여동생인 소피아 브라헤가 그의 관측 기록을 상당부분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기록들은 후에 티코 브라헤의 제자인 케플러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티코 브라헤의 아내는 평민 출신이었는데, 당시 덴마크에서는 평민과 귀족이 결혼할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천상혼"과 유사한 형태로 결혼해서 살아갈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비록 둘은 정식으로 결혼한것으로 인정되지만, 둘의 자녀들에게 상속권은 주어지지 않는것이었죠. 티코 브라헤는 아내와 행복했고 여덟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훗날 티코 브라헤의 여동생인 소피아는 오빠의 가족들은 정식으로 인정해줬다고 합니다. (아마 상속권을 인정해준듯해요.--;;)

 

 

소피아 브라헤

티코 브라헤의 여동생

 

티코 브라헤의 죽음은 매우 갑작스러운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요독증 내지 신장이상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케플러의 기록에 따른 것이었는데 케플러에 의하면 티크 브라헤가 파티에 참석했다가 화장실 가는것이 실례였기 때문에 매우 오래 참았고 결국 이때문에 요독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현재는 티코 브라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햇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 결과 그는 치명적일정도의 수은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죠.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가 연금술에 관심이 있었기에 많은 연금술사들이 그랬던것처럼 중금속을 맛보다가 중독되었을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또 그의 코를 가리기 위한 마스크에서 중금속 물질이 나왔을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또다른 이야기는 티코 브라헤가 정적에 의해 수은으로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티코 브라헤는 망원경이 나오기 직전, 최고의 관측천문학자였습니다. 그의 주된 임무는 사실 점성술이긴했습니다. 티코 브라헤의 예언중 가장 유명한 예언은 바로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 대한 예언이었죠. 구스타프2세 아돌프가 탄생한 때의 별을 보고 "위대한 국왕이 탄생할것"이라고 예언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점성술에서 천체의 운동과 위치는 매우 중요했으며 이런 천체의 운동은 천문학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티코 브라헤가 수십년간 성실히 관측한 자료는 매우 중요한것이었습니다.

 

특히 1572년에 터진 초신성(SN 1572)에 대한 관측으로 유명한데, 이 초신성을 "티코 초신성(Tycho Supernov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혜성과 같은 것들은 지구 대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냈습니다.

 

 

티코 브라헤의 기록(왼쪽)과 X선과 적외선으로 관측된 SN 1572의 이미지(오른쪽)

뭐라고 그러던데 대충 저기 나오는 이미지가 초신성이 폭발하고 난뒤의 잔해물질(뭐라고 해석해야하는거야..ㅠ.ㅠ)이라고 합니다. 저 물질들은 초신성이 폭발하고 난뒤에 계속 퍼져나가고 있는 것인데 저 지름이 kpc(킬로 파섹...1pc이 몇광년이더라..하여튼 킬로 파섹이면 대충 몇천광년쯤 되겠죠..) 단위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엄청 넓게 퍼져있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것은 그의 관측 기록이 아닐까합니다. 수십년에 걸쳐 꼼꼼하게 기록된 그의 관측 기록은 훗날 케플러에게 넘어가서 (물론 바로 넘어간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쟁이 있었습니다.) 케플러가 "지동설"(태양중심 우주관)을 주장하게 되는 바탕이 되기때문입니다.

비록 티코 브라헤 스스로는 자신의 관측 기록과 기존의 "천동설"(지구중심 우주관)이 맞지 않는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를 생각하긴 했었지만 말입니다.

 

 

 

프라하에 있는 케플러와 브라헤의 동상

...누가 케플러고 누가 브라헤인겁니까..-0-;;

(두루마리 든 사람이 케플러 같긴 합니다만...-0-;;)

http://en.wikipedia.org/wiki/File:Brahe_kepler.jpg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