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합스부르크입니다.-0-;;;
합스부르크는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프리드리히 3세 황후인 엘레오노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듯...-0-;;;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22) 포르투갈의 엘레오노르 : 프리드리히 3세의 황후
인판타 엘레오노르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Eleanor of Portugal
(18 September 1434 – 3 September 1467)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이자 이후 황제들의 조상이 되는 인판타 엘레오노르는 포르투갈의 국왕인 두아르테와 그의 부인인 아라곤의 엘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두아르테의 어머니는 랭카스터 공작 존의 딸인 필리파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의 손녀였죠. 두아르테라는 이름 역시 이 에드워드 3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것이라고 합니다. 두아르테의 동생중에는 "항해왕자"로 유명한 엔리케도 있습니다. 아라곤의 엘레오노르는 아라곤의 국왕인 페르디난도 1세의 딸이었습니다. 재미난것은 아라곤의 엘레오노르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유명했던 여성들인 엘레오노르 데 구스만과 이네스 데 카스트로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엘레오노르의 부모
아라곤의 엘레오노르와 포르투갈의 두아르테
엘레오노르가 네살무렵 아버지인 두아르테가 사망했고 오빠인 알폰수가 국왕이 됩니다만 역시 어렸기에 어머니가 섭정이 됩니다. 하지만 엘레오노르 왕비는 외국인으로 매우 인기가 없었기에 결국 섭정의 자리에서 물러나야했고 카스티야로 추방당합니다. 이때 엘레오노르는 어머니와 함께 갈수없었는데 엘레오노르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그녀는 그냥 포르투갈에 남았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는 자라면서 여러곳의 혼담이 들어옵니다. 엘레오노르는 포르투갈 국왕의 여동생이었을뿐만 아니라 나폴리와 아라곤의 국왕의 조카이기도 했죠.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국왕과도 혼담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엘레오노르와 합스부르크의 프리드리히 사이의 혼담은 엘레오노르의 고모이자 부르고뉴 공작부인이었던 인판타 이사벨라가 추진했습니다. 재미난것은 부르고뉴 공작부인인 이사벨라의 아들은 바로 용담공 샤를로 후에 샤를의 딸인 마리 드 부르고뉴는 엘레오노르의 아들인 막시밀리안과 결혼하게 되죠.
엘레오노르의 고모
인판타 이사벨라
부르고뉴 공작부인
마리 드 부르고뉴의 할머니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국왕보다 프리드리히를 더 마음에 들어했는데 그와 결혼한다면 황후가 될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엘레오노르가 17살이되던 1451년 나폴리에서 결혼 협정이 이루어졌으며 엘레오노르는 프리드리히와 결혼하기 위해서 로마로 떠납니다.
1452년 로마에서 37살의 프리드리히와 18살이 엘레오노르는 결혼합니다. 결혼후 프리드리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했으며 엘레오노르는 황후가 되죠.
엘레오노르를 처음 만나는 프리드리히 3세
...만나자 마자 결혼..-0-;;
둘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레오노르가 가져온 혼수를 다 써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는 너무나 달랐는데 엘레오노르는 춤을 좋아했지만, 반면 프리드리히는 사냥을 좋아했으며 둘은 서로의 취미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 프리드리히는 결혼직후 아내의 포르투갈인 시종들 대부분을 돌려보내버렸기에 엘레오노르는 심각하게 향수병을 앓기도 했습니다.
혼담이 오갈때, 엘레오노르가 어린시절 병을 앓아서 아이를 낳을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혼후 프리드리히와 엘레오노르는 모두 다섯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아이 양육문제에서도 둘은 사이가 맞지 않았죠. 특히 프리드리히는 다섯명중 세명의 아이들이 어린시절 죽은것에 대해 아내의 양육방식을 비난했으며 포르투갈 음식을 먹여서 그렇다고 주장하기 까지 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
....합스부르크가문의 전형적인 주걱턱을 가지고 계신걸로 보입니다.
저 유전자 오래가죠-0-;;;
프리드리히는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감정적 교류를 잘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이때문에 아내와 아이들과도 따로 떨어져 지냈죠. 물론 고정적 정부가 있었던것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프리드리히의 행동 때문에 엘레오노르 혼자 아이들을 교육시켜야했습니다.
아들 막시밀리안과 함께 있는 엘레오노르
저기 귀여운 아이가 후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떵떵거리게 살수 있는 기반을 닦은 막시밀리안1세입니다.-0-;;
엘레오노르는 1467년 33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프리드리히 3세는 그녀보다 무려 26년가량 더 살고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재혼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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