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신이 산만한 엘입니다.
요즘 집중이 잘 안되는군요..ㅠ.ㅠ
일디보 공연 보고나서 한동안 멍하게 살았더니 멍하게 사는데 너무 익숙해진듯합니다..ㅠ.ㅠ
이것저것 할려고 계획했었던것도 하나도 못하고 말입니다..ㅠ.ㅠ
겨우 매일 글쓰는거 하나만 하고 있습니다...흑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23)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자 : 막시밀리안 1세의 황후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자
사보이 공작부인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Bianca Maria Sforza
(5 April 1472 – 31 December 1510)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자는 밀라노 공작인 갈레초 마리아 스포르자와 그의 부인인 사보이의 보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갈레초 마리아 스포르자는 밀라노 공작이었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자와 밀라노 공작의 상속녀인 비앙카 마리아 비스콘티의 아들이었죠. 갈레초는 자신의 첫번째 딸을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지은것이기도 합니다. 밀라노 공작령을 두고 스포르자 가문과 비스콘티 가문이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프란체스코와 비앙카 마리아가 결혼하므로써 이 경쟁관계가 끝나게 되는것이었죠. 비앙카 마리아 비스콘티는 비스콘티 가문의 마지막 밀라노 공작이었던 이폴리토 비스콘티의 딸이었습니다. 비록 사생아였지만, 이폴리토의 유일한 딸이었기에 밀라노 공작령의 상속녀로 대우받았던듯합니다.
비앙카의 어머니인 사보이의 보나는 사보이 공작의 딸로 보나의 언니인 샤를롯은 프랑스의 루이 11세의 왕비이기도 했습니다. 원래 사보이의 보나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와 약혼했었지만, 그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하는 바람에 혼담이 깨졌으며 이후 밀라노 공작과 유대를 강화하길 원했던 프랑스 왕실의 의견에 따라 밀라노 공작과 결혼한것이었죠.
비앙카의 할머니 비앙카 마리아 비스콘티와 비앙카의 아버지인 갈레초 마리아 스포르자
이탈리아는 복잡해서 잘 모릅니다.--;;;
1474년 비앙카는 자신의 사촌인 사보이 공작 필리베르토 1세와 결혼합니다. 이때 비앙카의 나이는 만 두살이 되지 않았고 필리베르토는 11살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482년 필리베르토가 사망했고 비앙카는 겨우 10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은후 비앙카는 밀라노로 돌아오길 원했고 돌아오게 됩니다. 비앙카의 아버지인 프란체스코는 비앙카가 5살때 암살당했습니다. 이때문에 비앙카가 밀라노로 돌아왔을때 밀라노 공작은 비앙카의 오빠였습니다만 곧 섭정이었던 숙부가 권력을 얻게 되죠. 비앙카는 밀라노로 돌아온후 조용히 살았는데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기에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단지 자신이 좋아했던 바느질하는것만을 소일로 살아가고 있었죠.
비앙카의 첫번째 남편
사보이의 필리베르토 1세
1494년 비앙카는 두번째 결혼을 합니다. 두번째 남편은 자신과 같은 시기(1482년)에 아내를 잃었던 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이었죠. 당시 그는 이미 독일의 국왕이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것이 확실해 보였죠. 비앙카의 결혼은 비앙카의 숙부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자에 의한것이었습니다. 루도비코 스포르자는 조카와 공동으로 밀라노 공작이 되어 밀라노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고 싶어했죠. 이를 위해 그는 비앙카와 막시밀리안의 결혼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비앙카가 결혼할때 엄청난 혼수를 해주죠. 막시밀리안 역시 비앙카와의 결혼으로 정치적 이점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었는데, 막시밀리안은 밀라노 공작을 스스로의 권리로 인정해주면서 밀라노 공작이 프랑스가 아닌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아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킬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비앙카의 숙부인 루도비코 스포르자와 비앙카의 두번째 남편인 막시밀리안 1세
비앙카와 막시밀리안의 결혼은 불행했습니다. 막시밀리안은 전처였던 마리 드 부르고뉴에 대해서 매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혼하기 전 아내가 죽은지 오래지났지만 여전히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등의 일을 하고 있었죠. 비앙카는 마리 드 부르고뉴보다 훨씬 교육을 덜 받았습니다. 이때문에 막시밀리안은 늘 비앙카와 죽은 전처를 비교하게 되었던듯합니다. 아무래도 어린시절부터 부르고뉴 공작령의 후계자로 살았던 마리 드 부르고뉴에 비해서 어린시절 과부가 되어 조용히 살았던 비앙카는 세련되지 못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비앙카는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질수는 없었습니다. 몇번의 유산만 했을뿐 아이를 낳을수 없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막시밀리안과 비앙카는 점점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막시밀리안의 사생아들이 1500년대 중반에 태어난것으로 봐서 아마도 그쯤에 둘사이가 완전히 멀어진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황후시절의 비앙카
1508년 막시밀리안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가 됩니다. 비앙카는 막시밀리안의 부인이었기에 황후가 되죠. 그리고 2년후 비앙카는 남편보다 먼저 사망했습니다.
막시밀리안 1세
비앙카가 죽은뒤 8년정도 더 살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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