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신성로마제국의황후들(완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번외편(3) 보헤미아의 안나 (페르디난트1세의 부인)

엘아라 2012. 4.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전 안나가 당연히 황후가 됐을줄 알았는데 바로 며느리인 마리아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어랏 싶었는데 남편이 황제가 되기전 사망한듯합니다.

안나와 페르디난트 역시 정략결혼이었으며 이 결혼을 통해 합스부르크가는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안나의 남동생이 적자 없이 전사하면서 결국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 계승권이 안나와 그 후손에게 돌아가게 되거든요.)

하지만 둘은 매우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번외편(3)보헤미아의 안나 (페르디난트1세의 부인)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안나

안나 야겔로니카

Anna of Bohemia and Hungary

 Anna Jagellonica

(23 July 1503 – 27 January 1547)

그러고 보니 야겔론 가문 사람으로 아는 사람은 스웨덴 왕비가 되는 카타리나 야겔로니카밖에 없는데 말입니다.카타리나 야겔로니카는 스웨덴의 요한 3세의 왕비로 안나와는 사촌간이었습니다.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안나는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국왕이었던 브와디스와프 2세와 그의 부인인 안나 드 푸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안나의 아버지인 브와디스와프 2세는 유명한 야겔론 가문 사람으로 폴란드 국왕인 카시미르 4세와 그의 부인인 보헤미아의 엘리자베트의 아들이었는데 보헤미아의 엘리자베트는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보헤미아와 헝가리 국왕의 딸이었으며 이때문에 브와디스와프 2세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에 오를수 있었죠.

안나의 어머니인 안나 드 푸아는 콩달의 백작이었던 가스통 드 푸아와 그의 부인인 나바르의 공주인 인판타 카타리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푸아 가문은 프랑스의 오래된 귀족가문으로 나바르 왕실과의 통혼을 통해 나바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후에 프랑스의 국왕이 되는 나바르의 앙리 3세 (부르봉 가문 출신의 방돔 공작인 앙투안과 나바르의 여왕이었던 잔 달브레의 아들로 후에 프랑스의 앙리 4세) 역시 푸아 백작이기도 했죠.

 

안나의 부모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국왕 브와디스와프와 그의 부인인 안나 드 푸아-콩달

 

 

브와디스와프 2세(폴란드식으로 읽은거..ㅠ.ㅠ 진짜 이쪽 이름 읽기는 엄청 난해하다죠..ㅠ.ㅠ)는 세번이나 결혼했는데 세번째 부인인 안나 드 푸아와의 사이에서 적자들인 안나와 라요쉬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폴란드의 카시미르 4세와 함께 있는 브와디스와프

뒤에 브와디스와프의 자녀들인 안나와 라요쉬입니다.

 

 

브와디스와프 2세는 1515년 합스부르크가와의 동맹을 위해 자녀들을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손녀들과 결혼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아들인 라요쉬는 막시밀리안 1세의 손녀인 합스부르크의 마리와 결혼시키는 동시에 딸인 안나는 막시밀리안의 손자들 중 한명과 결혼시키기로 합니다. 결국 안나는 막시밀리안의 두번째 손자인 페르디난트와 약혼하게 됩니다. (라요쉬와 마리는 후에 이때 너무 어려서 결혼했기에 교회법상 결혼이 무효가 될 요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1522년경 다시 결혼식을 한번 더 합니다.)

안나의 아버지가 1516년 죽은후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자신의 손자 사위인 라요쉬의 후견인이 됩니다. 합스부르크가문의 대공의 약혼녀였던 안나 역시 아마도 합스부르크가에서 교육받았을듯합니다.

 

 

라요쉬와 마리

 

그리고 1521년 안나와 페르디난트는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이때 페르디난트는 형인 카를을 대신해서 합스부르크가문의 오스트리아쪽 영토를 통치하는 총독이 됐습니다. 이것은 헝가리와 보헤미아에 페르디난트가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또 다른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1520년대 페르디난트

...합스부르크가의 주걱턱이 보이죠.-0-;;;

 

1526년 안나의 남동생인 라요쉬가 오스만 제국와의 전쟁에서 전사하게 되자 페르디난트는 아내의 권리를 통해 자신이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국왕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보헤미아는 이를 받아들였고 1526년 페르디난트와 안나는 보헤미아의 국왕과 왕비로 대관합니다. 하지만 헝가리쪽은 좀 복잡했는데 일단 슐레이만 대제가 헝가리의 영토 많은 부분을 빼앗았고 이에 헝가리 귀족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페르디난트가 왕위를 주장하자 헝가리 귀족들은 그를 지지하는 귀족들과 안그래도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혼란한데 외국인을 국왕으로 맞이하는것에 반대하는 귀족들로 나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오래 가지만 결국 헝가리 왕위 역시 합스부르크가로 돌아가게 되죠.

 

라요쉬 2세의 시신 발견

1860년 작품

그는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중 사망했고, 그의 아내인 마리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 홀로 살았습니다.

 

 

1531년 페르디난트의 형인 카를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자 페르디난트는 형을 대리하는 입장으로 독일의 국왕격인 "King of Romans"가 됩니다. 이에 안나도 독일의 왕비가 되죠.

안나와 페르디난트는 매우 행복한 부부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페르디난트는 정부를 두는것보다 아내와 있는것을 더 좋아했으며 그는 아내와 떨어지는것을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제국의 통치자인 형을 대리하는 입장이었고 또 헝가리와 보헤미아 왕위를 주장했기에 그는 많은 곳을 다녀야했는데 이때 늘 아내를 동행하려고 했습니다.

 

 

안나

 

안나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지적이었고 현명했으며 자애롭고 자선사업에 열심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녀는 체코어,독일어,라틴어,헝가리어를 말할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런 능력은 아마도 그녀가 제국을 여행할때 큰 도움이 됐을듯합니다.

 

 

안나

 

안나와 페르디난트 사이에서는 모두 열다섯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열세명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중 큰 아들인 막시밀리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고 다른 아들인 카를의 자녀들은 스페인의 왕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죠. 딸들인 엘리자베트와 카타리나는 폴란드의 왕비였습니다.

 

 

안나와 페르디난트의 딸들

위에서 다섯명입니다.

(엘리자베트,안나,마리아,마그달레나,카타리나,엘레오노라 중에 한명이 빠졌는데 누가 빠진건지..ㅠ.ㅠ)

 

 

안나는 프라하에서 막내인 율리아나를 낳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9년후 페르디난트는 형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가 됩니다만 재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안나의 남편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