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리 드 부르고뉴를 할 차례군요.
마리 드 부르고뉴와 막시밀리안 1세의 결혼은 합스부르크가가 이후 떵떵거리게 살게되는 기반이 되는 결혼이었습니다. 이후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의 결혼으로 인해 합스부르크가는 에스파냐와 신대륙,보헤미아와 헝가리등등을 손에 넣게 되고 유럽 최대의 가문이 되게 되죠.
마리 드 부르고뉴가 결혼할때 정치상황이 굉장히 복잡했는데 늘 "풍요로운곳"으로 여겨졌던 부르고뉴지방을 차지하기 위해 난리도 아니었죠..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번외편(2)
마리 드 부르고뉴 : 막시밀리안 1세의 첫번째 부인
마리 드 부르고뉴
부르고뉴의 여공작
Mary of Burgundy
(13 February 1457 – 27 March 1482)
마리의 초상화 대부분은 저런 에냉을 쓴 부르고뉴식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마리가 죽은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마리 드 부르고뉴는 당시 샤를루아 백작 샤를 (후에 부르고뉴 공작인 용담공 샤를)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이사벨라 드 부르봉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의 할아버지는 부르고뉴 공작인 선량공 필리프였으며 할머니는 포르투갈의 이사벨라였습니다. 부르고뉴 공작은 후계자가 될 손자가 아니라 손녀가 태어났다는것에 엄청 실망했다고 전해집니다. 마리의 대부는 당시 도팽이었던 루이 (후에 프랑스의 루이 11세)였는데 마리의 이름 역시 도팽의 어머니인 앙주의 마리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후에 루이 11세와 마리의 아버지인 용담공 사이가 매우 안 좋아지게 된다는것이죠.
마리 드 부르고뉴의 부모
부르고뉴 공작 샤를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이사벨라 드 부르봉
샤를은 원래 잉글랜드의 공주와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프랑스 왕족과 결혼해야했습니다.
결국 친척관계였던 부르봉 공작의 딸인 이사벨라 드 부르봉과 결혼합니다. (이사벨라의 어머니가 부르고뉴 가문 출신으로 둘이 사촌간이던가 그렇습니다.)
부르고뉴 공작이 다스리던 영지는 현재 프랑스 일부와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지방인데 "저지주(Low country)"라고 알려진 지방이었습니다. 이곳은 상업과 공업이 발달한 풍요로운 곳으로 모두가 탐내던 곳이었죠. 마리의 할아버지인 선량공 필리프가 사망할 당시 그의 후계자는 오직 샤를밖에 없었으며 샤를에게는 외동딸인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마리는 어린시절부터 최고의 신부감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왕위계승자들이 마리와 결혼하길 원했는데 특히 부르고뉴 공작령을 탐내던 프랑스 왕가에서 더욱더 그랬습니다. 마리의 대부였던 루이 11세는 자신의 아들중 하나와 마리가 결혼하길 원했습니다.
루이 11세
생미셸 훈장의 기사들과 함께 있는 모습입니다
루이 11세는 부르고뉴 공작이 만든 황금양모기사단보다 더 권위있는 훈장을 만들고 싶어했고 그래서 만든 것이 생미셸훈장입니다..
마리의 아버지인 용담공 샤를은 프랑스 국왕의 봉신인 공작이 아니라 자신의 영지에 왕국을 세우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프랑스 국왕이 용납할리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프랑스국왕과 전쟁을 해야했죠. 이때 샤를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가와 동맹을 맺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3세와 동맹을 맺었고, 그는 딸인 마리 드 부르고뉴와 프리드리히 3세의 후계자인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과의 혼담도 추진했죠.
1477년 마리의 아버지인 샤를이 전사합니다. 아버지가 죽은후 마리는 부르고뉴 공작령의 상속녀가 됩니다만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힙니다. 저지의 주(Low Country)의 귀족들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원치 않았으며 샤를이 부과한 여러가지 세금에 대해서도 반대를 합니다. 스무살이었던 마리는 이런 귀족들의 요구를 승인할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마리의 상속녀 지위를 인정했고 이때문에 마리는 부르고뉴의 여공작으로 모든 지역의 상속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프랑스의 루이 11세는 부르고뉴의 독립을 막고 영원히 프랑스 왕가에 영지가 귀속되게 하기 위해 마리와 자신의 아들과의 결혼은 추진합니다. 그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이를 성사시키려하죠. 루이 11세의 아들이자 도팽이었던 샤를은 마리보다 무려 열세살이나 어렸습니다만 루이 11세는 상관하지 않았죠.
이런 복잡한 정치 상황속에서 마리는 자신의 새어머니였던 요크의 마거릿의 조언을 받아들입니다. 요크의 마거릿은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여동생으로 그녀 역시 혼란한 잉글랜드 정치 상황에서 여러가지를 터득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마거릿은 요크 공작의 딸이었지만, 마거릿의 어머니인 세실은 랭카스터 공작인 곤트의 존과 그의 세번째 부인인 캐서린 스윈포드의 외손녀이기도 했죠.)
마거릿은 마리에게 프랑스 국왕의 뜻대로 하지 말라고 조언해줍니다. 그녀는 용담공이 추진했던 동맹을 상기시켰으며,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과 결혼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했습니다. 18살이었던 막시밀리안은 다른 구혼자들보다 마리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켜줄수 있으리라 판단한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잉글랜드에 도움을 요청했고, 에드워드 4세는 자신의 여동생과 마리 드 부르고뉴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요크의 마거릿
그녀는 잉글랜드 국왕이 되는 에드워드 4세의 누이였습니다.
어머니인 요크 공작부인 세실은 랭카스터 가문의 혈통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마리 드 부르고뉴는 이 새어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마리의 결혼 승락을 받은 막시밀리안은 1477년 8월 마리와 만나기 위해 현재 벨기에 지방인 헨트로 갑니다.그곳에서 마리와 막시밀리안은 처음 만났습니다. 마리와 막시밀리안은 서로 말도 통하지 않았으며, 긴장으로 둘다 "시체처럼 창백했다"고합니다. 하지만 곧 둘은 서로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고 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부르고뉴 공작부인은 막시밀리안에게 궁정에서 연인들 사이에 즐기던 놀이중 하나를 하게 하면서 더욱 긴장을 풀어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리는 막시밀리안과 만난 다음날인 1477년 8월 18일 그와 결혼합니다.
마리와 막시밀리안의 만남
마리 드 부르고뉴와 막시밀리안은 비록 정략결혼했지만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둘사이에는 후계자가 될 아들인 필리프과 딸인 마르가레테가 태어나죠. 특히 마르가레테는 마리 드 부르고뉴가 너무나 사랑했던 새어머니인 요크의 마거릿의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은 사고로 끝을 맺습니다. 마리 드 부르고뉴는 말타는것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셋째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1482년 왜가리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이때문에 아이를 사산했고 그녀 역시 사망하게 되죠.
마리 드 부르고뉴
막시밀리안은 아내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는 평생 첫번째 아내를 잊지 않았으며 평생에 걸쳐 수많은 초상화를 그리게 합니다. 이때문에 남아있는 마리 드 부르고뉴의 초상화는 후대에 그려졌음에도 그녀가 죽기 직전 그렸던 초상화에서 모습을 그대로 따와서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마리의 남편
막시밀리안 1세
루벤스가 그린 그림
왠지 이 모습을 넣고 싶었습니다. (미화버전)
마리의 아들인 필리프는 후에 에스파냐의 상속녀인 후아나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이 결혼을 통해 합스부르크가문은 에스파냐와 에스파냐의 신대륙 영지까지 차지하게 되죠. 또 필리프의 자녀들 역시 정략결혼을 통해서 합스부르크가문은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까지 얻게 됩니다.
막시밀리안과 마리 드 부르고뉴
그리고 아들 필리프와 필리프의 아이들과 사위
가운데 황금양모 기사단 체인과 배지를 한 아이가 후에 황제 카를 5세가 되는 손자입니다. 막시밀리안이 안고 있는 아이가 카를 5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이고 카를이 손을 뻗히고 있는 사람은 카를의 매제인 헝가리 국왕입니다. (이름을까먹었다는...--;;)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필리프 오른쪽이 마리 드 부르고뉴 왼쪽이 막시밀리안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2007,국립현대미술관) :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전 도록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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