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신성로마제국의황후들(완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21)첼레의 바르바라 :지기스문트의 황후

엘아라 2012. 3.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다음부터 합스부르크가입니다.

이전에는 진짜 모르는 사람들이라 힘들었는데 합스부르크가문은 그래도 이름 들어본 사람들이 몇명 있어서 다행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21)첼레의 바르바라 :지그문트의 황후

 

 

 

 

 

 

첼레의 바르바라

바르바라 첼스카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Barbara of Cilli

(1392 – 11 July 1451)

 

 

첼레의 바르바라는 첼레의 백작인 헤르만 2세와 그의 부인인 샤움베르크의 백작영애 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첼레는 현재 슬로베니아 지방으로 첼레의 백작가문은 이곳의 영주로 동유럽쪽 국가들인 보헤미아,폴란드,헝가리등의 군주와 다양한 친척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문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첼레가문 사람들은 매우 뛰어난 군인이기도 했습니다. 헤르만 2세는 지기스문트의 군대에서 복무했으며 전투중에 지그문트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터키군으로부터 지기스문트를 구하고 있는 헤르만2세

 

지기스문트는 자신의 첫번째 아내이자 헝가리 왕국의 후계자였던 마리를 1935년 잃습니다. 그녀는 임신중이었는데 사고를 당해서 아이를 조산했고 곧 아이와 함께 사망합니다. 지그문트는 아내의 권리를 통해 자신이 헝가리 왕국을 상속받아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첼레 가문의 여성과 결혼한것도 이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것이 아닐까합니다. 왜냐면 헤르만 2세와 지기스문트의 첫번째 아내인 마리가 아마도 사촌관계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르바라의 사촌인 첼레의 안나는 폴란드 왕비가 되기 때문에 이런 동유럽 왕가와 혼맥을 이어갔으며 뛰어난 군인들이 많았던 이 가문이 중요했을듯합니다.

 

 

 

 

지기스문트

 

 

바르바라는 1401년 지기스문트와 약혼했으며 1405년 내지 1408년에 결혼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기스문트와 바르바라의 나이차는 무려 24살이나 됐습니다. 1409년 바르바라는 지기스문트의 외동딸인 엘리자베트를 낳습니다. 엘리자베트는 훗날 독일,헝가리,보헤미아와 왕비가 됩니다.

 

 

대관식때 딸 엘리자베트와 함께 있는 바르바라

앞쪽 왕관을 쓴 여성이 바르바라, 뒤쪽에 왕관을 쓴 여성이 엘리자베트 입니다.

 

1408년 바르바라는 남편과 함께 "the Order of Dragon"을 설립합니다. 이 훈장은 지기스문트가 측근을 위해 마련한 훈장으로 기독교의 적들과의 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사람에게 주던 훈장이었습니다.

 

바르바라는 주로 헝가리에 머물렀는데 남편이 헝가리를 떠나 인근 주변과 독일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동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헝가리에서 남편 부재시 섭정으로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바르바라가 결혼했을때, 지기스문트는 독일의 국왕지위에서도 물러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헝가이 왕비로만 대관했었습니다. 이후 남편이 독일 국왕지위를 되찾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국왕도 겸하게 되면서 그녀 역시 독일의 왕비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후이며 보헤미아의 왕비가 되죠.

 

 

황제가 된후의 지기스문트

 

바르바라는 남편이 죽어가자 음모를 꾸밉니다. 폴란드의 국왕에게 남편사후 자신과 결혼한다면, 그를 보헤미아 국왕으로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죠. 이때 보헤미아의 국왕은 바르바라의 사위이자 합스부르크가 출신인 알브레히트 2세가 될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기스문트의 후계자로 외동딸인 엘리자베트와 결혼한 알브레히트가 그의 지위를 세습하려 하고 있었는데 바르바라가 음모를 꾸며 이를 막으려하고 있었던 것이죠. 지기스문트는 이 사실을 알고 1437년 12월 3일 아내인 바르바라를 체포해서 감옥에 가둡니다. 하지만 그는 6일후인 12월 9일 세상을 떠납니다.

 

 

바르바라

 

바르바라는 남편이 죽은뒤 바로 자유를 되찾습니다만, 대신 남편으로부터 얻었던 모든 지위를 잃게 되고, 결국 헝가리를 떠나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폴란드로 갔으나 곧 보헤미아로 옮겨갑니다. 그곳에서 바르바라는 대비지위를 인정받고 살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바르바라는 심령학과 점성술에 매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451년 바르바라는 페스트로 사망했습니다.

 

 

 

바르바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