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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공주들...(2) 마리아 공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엘아라 2011. 10.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번에 이야기 할 사람은 마리아 공주입니다. 마리아 공주는 언니처럼 러시아대공과 결혼했습니다만, 일찍 죽은 언니와 달리 오래 살았고 때문에 러시아의 혁명과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함 모두를 경험했습니다.

 

 

그리스의 공주들...(2) 마리아 공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의 마리아 공주

러시아의 마리아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와 올가 왕비의 딸

러시아의 게오르기 마하일로비치 대공(니콜라이1세의 손자)의 부인

Maria or Marie Georgievna

Princess of Greece  and Denmark 

(Πριγκίπισσα Μαρία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Δανίας)

(3 March 1876 – 14 December 1940)

 

마리아 공주는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부인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위로는 콘스탄티노스,게오르기오스,알렉산드라,니콜라오스가 있었고, 동생들로는 안드레아스,크리스토포로스가 있었죠.

마리아의 가족들은 매우 친했으며, 친척들끼리도 왕래가 잦았습니다. 가족들은 덴마크에서 가족모임에 자주 갔으며, 여기에는 마리아의 고모들의 가족들인 러시아, 영국의 왕실 가족들도 자주 참석했죠.

애칭이 "그리스의 미니"(이것은 고모인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의 애칭이 "미니"였던것때문에 구별되라고 부른것인듯합니다.)였던 그녀는 사촌인 러시아의 크세니아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의 딸)과 매우 친한 사이였고, 나중에 결혼한 후에도 러시아에서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왼쪽 소녀가 마리아입니다.

가운데 앉은 아이는 니콜라오스 왕자인데 저기 두 소년은 역시나 헷갈립니다.

마리아의 손을 잡고 있는 소년이 큰오빠인 콘스탄티노스일듯합니다. 그옆이 게오르기오스

맨 오른쪽 소녀는 알렉산드라

 

 

마리아는 어린시절 주로 아테네의 왕궁과 타토이에 있는 왕실 영지에서 생활했습니다. 타토이에 있는 그리스 왕실 영지는 덴마크풍의 집들로 덴마크를 그리워한 아버지 게오르기오스 1세의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곳으로 그리스 왕실가족 모두가 사랑한 곳이었습니다.

 

 

부모와 언니 오빠와 함께

앞에 어머니 올가 왕비와 함께 있는 소녀가 마리아입니다.

뒷줄은 왼쪽에서 게오르기오스 1세, 알렉산드라,(아마도) 니콜라오스,콘스탄티노스

 

마리아는 그리스를 사랑했는데, 그 때문에 외국 왕족과 결혼해서 그리스를 떠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방문하던 러시아 친척들중 어머니의 사촌이었던 러시아의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은 이런 마리아에게 청혼을 하죠. 마리아는 처음에 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결혼해야했을때 그리스에 자주 올수 있는 조건이었던 게오르기 대공과 결혼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와 결혼할때 그녀는 그를 사랑해서 결혼하는것이 아니라고 명확히 했습니다.

 

 

러시아의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그리스의 마리아 공주의 결혼사진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은 니콜라이 1세의 막내아들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아들로 게오르기 대공은 다른 로마노프 왕족들처럼 군대에 입대해서 일을 했습니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게오르기 대공은 다른 로마노프 대공들처럼 과음,파티등을 즐겼으며 여러 여자들과의 연애사건을 일으켰죠. 하지만 그는 매우 과묵한 성격이기도 했으며, 여러가지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러시아의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젊어서 부터 저렇게 대머리였댑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대머리 유전자는 강력하다는..-0-;;)

 

마리아와 게오르기는 1900년 코르푸에서 결혼했으며 두 딸인 니나와 크세니아가 태어납니다. 게오르기는 두딸을 매우 사랑했지만, 마리아와 게오르기의 결혼생활은 불행했습니다.  마리아가 러시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인 그리스를 그리워한것이 가장 큰이유 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주 그리스로 가서 머물렀는데 결국 1914년 딸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갔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딸들의 건강때문이었지만, 실제적으로 남편과 별거하는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마리아와 게오르기

두딸인 니나와 크세니아

 

마리아가 딸들과 러시아를 떠난 한달후 1차대전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일어난후에 마리아는 러시아로 가고 싶어도 돌아갈수 없었죠. 마리아는 영국에 머물면서 야전병원을 후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1919년 마리아의 남편인 게오르기 대공은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바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것이죠. 마리아는 다른 많은 친척들 역시 잃습니다만, 영국에 있었기에 무사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마리아는 1차대전이 끝난후에 그리스로 갑니다. 1920년 그리스로 돌아가던 길에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로 돌아가기 위해 탔던 구축함의 함장이었던 페리클레스 이오니데스였죠. 둘은 1922년 결혼합니다.

마리아는 2차대전 직후 그리스-이탈리아 전쟁 기간에 사망했습니다.

 

마리아의 두 딸들인 니나 게오르기예브나와 크세니아 게오르기예브나는 아버지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지만,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간 뒤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죠. 다행히 니나와 크세니아는 무사히 영국에 있엇지만, 사랑했던 아버지와의 기억은 어머니와의 사이를 좋지 않게 만듭니다. 그때문에 둘다 어머니 곁을 벗어나기 위해 빨리 결혼합니다. 니나는 그루지아 왕가의 후예인  Paul Alexandrovich Chavchavadze 공과 결혼했고, 크세니아는 외숙모인 낸시 리즈의 아들인 윌리엄 리즈와 결혼했습니다.

 

 

마리아의 두 딸인 니나 게오르기예브나 공녀와 크세니아 게오르기예브나 공녀

왼쪽이 니나의 사진,오른쪽이 크세니아의 초상화

크세니아의 초상화는 필립 드 라즐로의 작품입니다만, 실물 사진은 더 예쁩니다.-0-;;;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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