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9) 메리2세 : 제임스 2세의 딸

엘아라 2011. 8.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제임스 1세의 딸)을 해야하나 아니면 메리2세를 해야하나 사실 살짝 망설였습니다. 시대상으로는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를 먼저 해야할듯하지만 왕위 계승 순서를 생각하면 메리2세와 앤 여왕을 한후에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하노버의 조피 선제후비를 해야할듯해서요.

 

고민하다가 결국 메리와 앤 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메리2세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남편과 함께 공동국왕으로 즉위했습니다만, 그녀는 남편에게 언제나 순종적이었고 야심많았던 남편을 정치적으로 지지해줬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9) 메리2세 : 제임스 2세의 딸

 

 

 

 

 

 

메리2세

잉글랜드와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여왕

오라녜 공비

Mary II

(30 April 1662 – 28 December 1694)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 2세(스코틀랜드에서도 역시 메리 2세입니다.)가 되는 요크의 메리는 당시 요크 공작이었던 제임스2세(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7세)와 그의 부인인 레이디 앤 하이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요크 공작은 찰스1세의 아들로 찰스2세의 동생이었습니다. 앤 하이드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하이드는 1대 클라런던 백작으로 찰스2세의 핵심 측근이었죠. 메리의 이름은 그녀의 조상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메리 스튜어트)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요크 공작 제임스(후에 제임스2세)와 요크 공작 부인 앤

 

 

요크 공작 부부의 자녀들중 메리와 동생 앤 만이 살아남았고, 백부인 찰스 2세에게서는 적자가 태어나지 않았기에 결국 메리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 이어 제2 왕위계승자가 됩니다.

앤의 아버지인 요크 공작 제임스는 카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자녀들은 신교도로 성장합니다. 이것은 찰스2세의 뜻에 따른것이었죠. 메리와 동생 앤은 부모와 떨어져 지냈으며 부모나 외할아버지가 가끔 아이들을 방문하고는 했다고 합니다.

메리가 9살 되던해 어머니인 요크 공작부인 앤이 사망했으며 그녀의 아버지인 제임스는 2년후 재혼합니다. 재혼 상대는 모데나의 마리로 겨우 열다섯살로 메리보다 네살많았습니다.

 

 

메리의 새어머니

모데나의 마리

결혼할 무렵인 15살때입니다

 

이후 메리가 열네살에 약혼을 하죠. 메리의 백부인 찰스 2세는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그녀를 루이 14세의 후계자인 도팽 루이와 결혼시키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도이자 프랑스의 왕위계승자인 도팽과의 결혼 계획 자체가 잉글랜드 국민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결국 의회는 메리에게 신교도 남편감을 얻으라고 요구했으며, 찰스2세는 메리의 사촌인 오라녜공 빌렘3세를 남편감으로 선택하죠. 오라녜공 빌렘은 찰스2세의 여동생이자 제임스2세의 누나인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아들이었습니다.

 

 

결혼전 메리

 

오라녜공 빌렘이 메리와 결혼을 원한것 역시 정치적 문제와 연결됩니다. 메리보다 열한살이나 많았던 오라녜공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고, 오래도록 실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한후 정치권력을 장악했을뿐만아니라 프랑스와의 전쟁까지도 유리하게 치뤄냈습니다. 이런 그가 네덜란드에서 인기가 없는 스튜어트 가문과 결혼하려한것은 순전히 정치적목적 때문이었죠. 프랑스와의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이었기에 여전히 친 프랑스 정책을 펴던 잉글랜드를 적어도 프랑스를 지지 못하게 막는것과 더불어 스스로도 당시 잉글랜드의 제4 왕위계승자였으며 제2왕위계승자인 메리와 결혼하는것이 잉글랜드 왕위에 대한 자신의권리를 강화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라녜공과 약혼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소리에 메리는 하루종일 울었다고 합니다.

 

 

메리의 남편

오라녜공 빌렘3세

후에 잉글랜드의 윌리엄3세

 

1677년 열다섯살의 메리는 스물여섯살이 오라녜공과 결혼해서 네덜란드로 갑니다. 순종적이었으며 온화한 성격이었던 메리는 결혼후 남편에 매우 헌신적이 됩니다. 결혼 후 금방임신한 메리는 브레다에 있는 남편을 방문하러 갔다가 유산합니다. 그리고 서너번정도 더 유산한 이후 더이상 아이를 가질수 없었죠. 메리는 이후 이때문에 평생 불행해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인 빌렘은 자주 전장에 나가있었고 메리의 가족은 빌렘이 메리에게 냉담하기 때문에 전장터에 자주 나가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빌렘의 정부로는 메리의 시녀였던 엘리자베스 빌리어스(후에 해밀튼 공작부인)이 알려져있습니다. 딸이 사위와 헤어지길 바랬던 제임스 2세는 딸의 측근에 이 사실을 알려줬고 메리는 남편이 밤에 엘리자베스 빌리어스의 방을 드나드는 현장을 잡아냅니다. 하지만 빌렘은 아내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강변했고, 메리는 이런 남편을 믿고 용서합니다.

 

 

오라녜 공비 시절의 메리

 

1688년 메리의 아버지인 제임스 2세와 새어머니인 모데나의 마리 사이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는 후에 "올드 프리텐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될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였죠.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잉글랜드는 분열 양상에 놓여있었습니다. 카톨릭 교도였던 제임스 2세와 신교도가 주축이 된 의회는 서로 반복하고 있었죠. 이 와중에 카톨릭으로 자랄 아들이 태어난다는것은 의회로써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죠. 결국 이것은 워밍팬스캔들로 번지게 됩니다. (워밍팬 스캔들에 대해서는 저이 앞쪽글인 워밍팬 스캔들: 영국 명예혁명 직전의 스캔들 을 참조해주세요)

 

 

아들 제임스를 안고 있는 마리 왕비

메리는 태어난 동생이 자신의 친동생이 아니라는 소문을 믿었으며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메리의 남편인 빌렘은 잉글랜드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을때도 망설입니다. 그는 왕위를 보장받지 않고서는 잉글랜드로 갈 마음이 없었죠. 메리는 이에 남편에게 늘 그래왔듯이 자신은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국왕이 될것을 보장하죠.

 

빌렘은 메리와 함께 네덜란드 함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갑니다. 당시 런던 사람들은 앞바다에 가득 메운 네덜란드 함선을 보고 경악을 하거나(주로 카톨릭쪽) 환호를 하거나 (주로 영국 국교회쪽) 그랬다고 합니다. 의회지도자들과 장교들은 앞다투어 빌렘에게 달려갔으며, 제임스2세는 내전을 피하기 위해 망명을 선택하죠. 빌렘의 지위는 미묘했는데, 빌렘은 왕위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내인 메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죠. 결국 의회는 둘의 공동즉위를 결정합니다. 이전에 메리 1세가 남편 펠리페2세와 공동 즉위한 예가 있었기에 외국 군주인 빌렘이 아내와 함께 공동으로 즉위하는것은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어보였습니다. 이렇게 메리는 잉글랜드의 메리 2세(스코틀랜드도 메리2세)가 되고 빌렘은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스코틀랜드는 윌리엄2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를 명예혁명이라고 부르죠)

 

 

오라녜공의 상륙

 

윌리엄3세와 메리2세가 즉위한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내전에 휩쌓입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지지자들은 윌리엄을 인정할수 없었죠. 이때문에 윌리엄은 전장에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전이 평전된후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전장에도 가야했죠. 이런 남편을 대신해서 정치를 한것은 메리2세였습니다. 비록 남편의 영향력아래 있었으며 남편이 원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만, 메리는 스스로 판단해서 정치를 했습니다. 이를테면 외삼촌인 헨리 하이드를 반란음모로 감옥에 가둔것등이 있었죠.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동생 앤과의 사이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앤은 당시 말보러 공작부인인 사라 처칠의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메리는 처칠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메리2세와 윌리엄 3세

 

1694년 메리는 천연두에 걸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 중에서 천연두에 걸린적 없는 사람들 모두를 내보냅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서였죠. 동생인 앤은 언니가 죽어가자 임신중이었음에도 언니를 만나려합니다. 죽기전 언니를 볼수 있다면 어떤 위험을 감수할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메리의 의중을 잘 알던 메리의 시녀중 한명은 단호하게 앤을 막아섭니다. 아내가 죽은후 윌리엄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비록 자코바이트들은 그녀에게 비난을 했지만,전국에서 메리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윌리엄의 인기 역시 점점 떨어지게 되죠.

 

메리는 아버지를 쫓아내고 자신과 자신의 남편의 이익만 추구한 여성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특히 제임스2세와 그 아들을 지지했던 자코바이트의 입장에서는 더했죠. 하지만 메리는 스스로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여겼으며,제임스의 정당한 후계자는 자신이라고 여겼을겁니다. 메리의 남편 윌리엄은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메리는 이런 남편을 지지하므로써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을수 있었을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비록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있었지만, 메리 역시 "군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통치했으며 남편의 조언을 따르긴했지만, 스스로의 판단이 필요한 시기에는 스스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메리2세

 

이후 잉글랜드의 왕위는 윌리엄3세가 단독통치하다가 처제인 앤여왕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