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참조한 Channel 4의 자료에는 조지2세의 장남인 웨일즈 공 프레드릭이 빠져있습니다.
아마도 그 뒤를 그의 아들인 조지 3세가 이었기 때문에 뺀듯합니다.
어쨌든 저는 다뤄볼까합니다.
문득 생각해봤는데 제임스2세의 아들인 올드 프리텐더와 그 아들인 영프리텐더 그리고 그뒤의 후손들 이야기를 번외편으로 해볼까도 고민중입니다.
국왕이 되지 못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자들...
(5) 웨일즈 공 프레드릭 : 조지 2세의 장남
프레드릭
Frederick, Prince of Wales
(Frederick Louis; 1 February 1707 – 20 March 1751)
영국의 왕위계승자로 웨일즈 공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프레드릭은 영국의 조지2세와 그의 왕비인 안스바흐의 캐롤라인(카롤리네)의 장남이었습니다. 그는 독일의 하노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때는 그의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 조차도 잉글랜드의 국왕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영국의 국왕이 된것은 1714년으로 프레드릭은 그동안 독일식으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공작 프리드리히 루드비히로 불렸을듯합니다.
프레드릭의 부모
영국의 조지 2세와 캐롤라인 왕비
할
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가 영국의 국왕이 되자, 프데드릭의 부모 역시 제1왕위계승자부부로 영국으로 건너가야했죠. 그때가 프레드릭이 7살때였습니다. 부부는 아들을 하노버에 남겨두기로 결정했고, 프레드릭은 할아버지의 동생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보호아래 있게 됩니다. 부모를 다시 만난것은 그가 성장한 후인 1728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그는 어린시절부터 과음하는것을 즐겼으며, 사냥과 도박 여자등을 과하게 좋아하는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그가 영국으로 왔을때 부모와 그의 사이는 매우 서먹했는데 이것은 평생 그랬습니다.
하노버에 있었을때의 프레드릭
그는 영국에 오는 것조차 쉽게 허락받지 못했는데 그의 할아버지인 조지1세는 어린 왕자에게 부모와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하노버가문의 대표자로써 처신하길원해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할아버지가 죽을때 까지 그는 영국에 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즉위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하노버의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공으로 알려졌었다고 합니다. 이후 1729년 정식으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에게 부여되는 칭호인 웨일즈 공 칭호를 받습니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바이올린과 첼로를 잘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학과 예술에도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와 사이가 나빴기에 정치적으로도 부모와 반대되는 입장을 유지합니다. 이는 예술에 대한 후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오는데 그는 왕실과 유력자들이 후원하는 음악가들의 라이벌들을 후원했습니다. 아들과 서먹했던 조지 2세는 이런 아들의 행동에 대해 더욱더 껄끄러워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국왕이 프레드릭에게는 영국의 왕위를 물려주지만, 하노버는 프레드릭의 동생이자 국왕이 가장 아꼈던 아들인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에게 물려줄거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합니다.
누이 동생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 중인 프레드릭
그는 원래 자신의 사촌인 프로이센의 빌헬미네 공주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인 조지 2세와 고모부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합의를 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결혼은 이리저리 연기되다가 결국 성사되지 못합니다.
이후 1736년 프레드릭은 열일곱살의 작센-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타와 결혼합니다. 어린시절 프레드릭은 방탕한 생활을 했었지만, 결혼이후 그는 정착했으며, 아내에게 착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프레드릭의 사촌이자 혼담이 오갔던 여성
프로이센의 빌헬미네 공주
브란덴부르크-바이로트의 공비
그녀의
조지 1세와 조지 2세의 관계처럼 조지 2세와 프레드릭의 관계도 좋지 못했고, 이때문에 프레드릭은 궁정 출입을 금지 당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심하게 아플때 병문안하는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그러자 그는 자신의 집에 자신만의 궁정을 두고 반정부파들을 끌어들였죠.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못한것에 대한 반대작용이었는지 몰라도 그는 매우 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웨일즈 공 부부와 그 자녀들과 고용인들
프레드릭은 1751년 44살이 나이로 가슴에 종양이 생겨서 사망합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프레드릭이 죽은것은 그가 열을 올렸던 크리켓이나 테니스공에 맞은것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확인된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프레드릭의 장남인 조지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영국의 국왕인 조지 3세가 됩니다.
남편이 죽은뒤 자녀들과 함께 있는 웨일즈 공비 아우구스타
아우구스타가 안고 있는 막내딸인 캐롤린 마틸다는 프레드릭이 죽은 4개월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국 왕실의 대부모들이야기를 조지 3세 자녀들하다가 말았군요..ㅠ.ㅠ)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영국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가 출처인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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