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가의 유전 : Habsburg jaw(Habsburg lip) : (2) 어떻게 심해지는가?

엘아라 2011. 7.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합스부르크가에서 이 주걱턱이 어떻게 심해졌는가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목차

(연재글 목록을 보시고프면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더보기

합스부르크의 안면 유전 : Habsburg jaw(Habsburg lip) 

 

(1)언제부터 시작되었나

(2) 어떻게 심해지나 (현재글)

(3)근친결혼 : 스페인

(4)근친결혼 : 오스트리아 - 첫번째

(5)근친결혼 : 오스트리아 - 두번째

 

 

합스부르크가의 유전 : Habsburg jaw(Habsburg lip) : (2) 어떻게 심해지는가?

 

합스부르크가의 주걱턱은 일반적으로 근친결혼으로 인해 더 심해졌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실제로 근친결혼이 절정에 이르렀던 세대인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나 신성로마제국의 레오폴트 1세같은 경우 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윗세대였던 카를로스1세(카를 5세)나 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 같은 경우에도 심한 주걱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합스부르크가가 근친 결혼을 한 이유는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합스부르크가는 전통적으로 결혼을 통해서 영지를 넓혀갔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미묘할때는 결혼을 통한 여러 동맹이 큰 힘이 되기도 했죠. 대표적인 예가 티롤을 손에 넣을때였습니다.하지만 진정으로 합스부르크가가 결혼으로 부를 손에 넣는것은 막시밀리안 1세가 유럽 최고의 상속녀였던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한 이후입니다. 마리와 막시밀리안의 아들인 필립은 스페인의 공주인 후아나와 결혼했는데 후아나의 언니 오빠가 다 죽는 바람에 그녀가 스페인과 신대륙의 상속녀가 됩니다. 이때문에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의 최강자가 될수 있었죠.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 그 후손들

막시밀리안 1세는 스스로도 결혼을 잘했을뿐만 아니라 아들을 스페인의 상속녀와 결혼시켰으며, 손녀를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국왕과 결혼시키고, 손자를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상속녀와 결혼시킵니다.

그결과 합스부르크가는 신대륙에서 헝가리 보헤미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지를 손에 넣게 됩니다.

 

 

이때문에 합스부르크가는 근친결혼을 강화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유럽교회에서는  사촌들이나 가까운 인척간들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황의 사면장이 있다면 결혼가능했습니다. 특히 합스부르크는 살리카법이 통하던 오스트리아와 달리 여성상속이 인정되던 스페인을 지키기 위해 근친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살리카법으로 영지는 지킬수 있더라도 유동재산에 대한 여성 상속권은 인정 받았기때문에 이런 유동자산에 대한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근친결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특히 사촌들간의 결혼이 이런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두가문으로 분가한후에 서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것도 중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심한 근친결혼의 후손이었던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의 가계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는 부계 모계 모두 막시밀리안1세의 아들인 필립과 그의 부인인 카스티야의 후아나의 후손들입니다.

 

합스부르크가에서 주걱턱이 확연하게 처음 나타나는 사람은 황제 프리드리히 3세였습니다. 그는 포르투갈의 공주인 엘레오노레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막시밀리안이 태어납니다.

 

 

프리드리히 3세의 황후

포르투갈의 엘레오노레

막시밀리안 1세의 어머니

 

하지만 프리드리히 3세가  합스부르크가를 위해 가장 잘한 일은 부르고뉴 공작이었던 용담공 샤를과 동맹을 맺은것입니다. 샤를의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후, 그의 유일한 딸이자 부르고뉴의 상속녀였던 마리 드 부르고뉴는 아버지의 동맹자였던 합스부르크가로 시집가기로 결정합니다. 마리 드 부르고뉴와 막시밀리안의 결혼은 합스부르크가가 유럽의 최강자가 되는 시작중 하나가 됩니다.막시밀리안 1세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Habsburg lip이 나타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

그 역시 합스부르크 립으로 불린 아랫입술이 약간 튀어나온 모습을 보여줍니다.

 

 

막시밀리안과 마리 드 부르고뉴 사이에는 모두 두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들이자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던 필립과 딸인 마르가레타였죠. 하지만 마리 드 부르고뉴는 세번째 아이를 임신중 낙마사고로 사망했고, 후계자가 있었던 막시밀리안은 정치적으로 필요해질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아내를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살았습니다.

 

 

마리 드 부르고뉴

"합스부르크의 황금의 신부"

부르고뉴 지방은 당대 최고로 부유했던 지역이었으며 이곳은 손에 넣은 합스부르크가는 떼돈을 번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지역은 이후에도 알짜부자 지역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어디냐구요..현재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지역입니다..)

 

 

막시밀리안의 두 자녀인 필립과 마르가레타의 초상화에는 둘다 합스부르크 립이 나타나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필립과 마르가레타는 둘 다 스페인의 왕족과 결혼합니다. 필립은 스페인의 후아나와 결혼했고, 마르가레타는 스페인의 왕위계승자였던 아스투리아공 후안과 결혼했죠. 하지만 후안이 자녀없이 일찍 죽고난뒤 스페인의 상속권은 후아나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문에 필립과 후아나의 자녀인 카를은 엄청난 대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오스트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위를 물려받았고, 아버지(할머니)로부터는 부르고뉴 지역을 상속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스페인과 그에 딸린 신대륙 전체를 상속받게 되죠.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의 자녀들

필립과 마르가레타

둘다 합스부르크 립이 보이죠.

 

필립은 아버지보다 일찍 죽었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수는 없었습니다만, 장모인 이사벨라 여왕이 죽고 아내인 후아나가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자 그녀의 남편으로 카스티야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필립과 후아나 사이에서는 모두 여섯아이가 태어납니다. 이중 아들들인 카를로스와 페르디난트는 확실히 주걱턱이 나타납니다.

 

 

카스티야의 후아나

"후아나 라 로카"

이 복장은 부르고뉴 공작부인으로써의 후아나이 모습이라고 합니다.(마리 드 부르고뉴가 입었던 옷이랑 유사하더라구요.) 일반적으로 "미친 후아나"로 알려진 그녀는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미쳤다고 알려져있습니다만, 뭐 선조들인 카스티야 왕가의 사람들보다는 평범해보였습니다.

 

특히 카를로스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심한 주걱턱이 나타나는데 이는 여러 조각상등에도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딸중에 포르투갈 왕비였다가 프랑스 왕비가 되는 엘레오노레 역시 합스부르크 립이 나타납니다.합스부르크의 주걱턱은 이미 카를 5세나 페르디난트 1세때 이미 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때가지는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가의 근친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어린시절의 카를 5세와 그의 동생 페르디난트 1세

둘다 합스부르크의 전형적인 주걱턱을 보여줍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아실테지만 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