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이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시리즈였는데 채널 4에 가서 읽기가 귀찮아서 관두고 있었습니다. 채널 4의 history 항목에 보면 the monarchs we never had라는 항목으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중 국왕이 되지 못한 여섯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뭐 이 여섯명을 살펴볼까합니다. (에디는 했는데..ㅠ.ㅠ)
국왕이 되지 못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자들...
(1) 고귀한 윌리엄 (William the Atheling,William Adelin)
"고귀한" 윌리엄
노르망디의 공작
잉글랜드의 헨리 1세의 후계자
(1103-1120)
헨리 1세의 아들인 윌리엄은 윌리엄 더 애설링으로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애설링은 고귀한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앵글로-색슨어로 "왕의 아들"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윌리엄 왕자쯤으로 번역될수 있겠죠. 또 아델린이라고도 알려져있는데 이 역시 독일어로 고귀한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윌리엄의 아버지는 잉글랜드의 국왕이자 노르망디의 공작이었던 헨리 1세였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의 공주인 에디트(후에 마틸다로 바꿈)였습니다. 누나는 바로 유명한 헨리 2세의 어머니가 되는 마틸다 황후죠. ( 마틸다 황후에 대해서는 저의 앞쪽 포스트인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계승자들...(1) 헨리 1세의 딸 모드 (마틸다 황후)" 를 참조해주세요)
윌리엄의 부모 스코틀랜드의 에디트와 잉글랜드의 헨리 1세
윌리엄의 친할아버지는 정복왕 윌리엄이었고, 외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던 말콤3세였기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국왕인 앨프러드 대왕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말콤 3세는 앵글로-색슨왕가의 후손이기도 했기에 결국 윌리엄은 새 왕가인 노르만 족과 옛 왕가인 앵글로 색슨 왕가의 혈통을 동시에 이어받게 됩니다. 이때문에 그의 통치기는 옛 왕가와 새 왕가의 결합으로 나라가 재결속된 시대가 될것이라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1113년 노르망디 공작가와 숙적이었던 앙주 백작가문과의 화친을 위해 윌리엄은 10살의 나이로 앙주 백작 풀크 5세의 큰딸인 이사벨라와 약혼합니다. 둘은 1119년에 결혼하죠.
윌리엄은 1115년 아버지로부터 노르망디 공작의 칭호를 받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헨리1세는 아들에게 노르망디 공작령과 작위를 생전에 물려줬는데 이는 그가 잉글랜드의 국왕이긴 했지만 동시에 노르망디 공작으로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동등한 지위의 국왕임에도 노르망디 공작으로 프랑스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봉신으로써 의무를 수행해야하는것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헨리 1세는 자신의 권리로 아들에게 노르망디 공작 칭호를 물려줬지만, 프랑스측은 이를 바로 승인해주지 않았습니다. 헨리 1세와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6세 사이에 노르망디를 두고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때 헨리1세가 승리했기에 루이 6세는 윌리엄을 노르망디 공작으로 승인해줄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르망디 공작으로 루이 6세에게 봉신으로서 맹세를 하고 있는 윌리엄
바다건너 영지가 있었기 때문에 헨리 1세는 자주 잉글랜드에서 노르망디로 가야했으며, 그가 부재시에 잉글랜드는 부인인 마틸다가 통치했습니다. 하지만 1118년 마틸다가 죽자 윌리엄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잉글랜드를 통치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통치했는데 사실상 그의 실권은 거의 없었을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가문의 전통대로 윌리엄 역시 아버지를 따라 전장에 나가 싸웠습니다. 특히 1119년 루이 6세가 헨리 1세에게 패배했던 전투에서 윌리엄 역시 참가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헨리 1세는 가족들과 가신들을 데리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1120년 11월 26일 헨리 1세는 미리 출발했고, 그 뒤를 윌리엄과 그 또래 사람들이 함께 White ship을 타고 출발합니다. 이들은 해질때까지 술을 마시고 즐겼는데 이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이후 배는 연안에 좌초하게 됩니다. 선원들은 배를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윌리엄과 조신들은 간신이 배에서 빠져나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이복누나인 페르슈 백작부인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다시 물로 들어갔지만 결국 누나와 함께 익사합니다.
화이트 쉽의 난파
그의 죽음은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줍니다. 헨리 1세는 총명했고 뛰어났던 유일한 후계자를 잃었으며 이후 그는 남성후계자를 둘수 없었죠. 결국 그는 외동딸이 된 마틸다를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로 지목합니다. 하지만 여성 왕위계승자를 허용할수 없었던 잉글랜드 귀족들은 마틸다가 아닌 헨리1세의 조카 스티븐을 국왕으로 세우죠. 하지만 마틸다는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잉글랜드를 침공했으며 결국 잉글랜드는 오랜 내전에 시달리게 되죠.
그리고 마틸다의 아들인 앙주 백작 앙리가 헨리2세가 되었으며 그는 아버지로부터 앙주를 어머니로부터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상속받았으며, 아퀴텐의 상속녀인 엘레오노르와 결혼해서 아퀴텐마저 통치하는 중세 유럽의 막강한 군주가 됩니다.
윌리엄의 누나 마틸다 황후, 윌리엄의 조카인 잉글랜드의 헨리2세와 헨리2세의부인인 엘레오노르 다퀴텐
자료출처
1.http://www.channel4.com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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