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올해는 필립공이 90살이 되는 해입니다.
영국의 iTV가 이때문에 필립공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뭐 적당히 다 알려진 이야기를 한것 같은데 재미난것은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물들이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전 살아있는 사람은 관심이 없어서 필립공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른답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여왕과 함께그다지 큰 스캔들 없이 무난히 산것을 생각하면 (자식들이 이혼한것은 부모책임은 아니니까요..) 뭐 그거 하나로도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90살 되셔서 특집으로 글을 쓰긴합니다만 역시나 살아있는 사람은 좀 쓰기가 그렇다죠.
그래서 그냥 적당히 알려진 결혼이야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사실 제가 저기까지 밖에 모릅니다.)
사실 이 글은 미리 써놨었는데 필립공 90살 생일인 6월 10일에 올릴려고 했는데....
왠일로 사람들이 검색해서 오시길래 그냥 올립니다. (...망언 이야기가 신문에 떴군요....쿨럭..-0-;; 안그래도 어제 글쓸려고 텔레그라프 들어갔다 왠 실수 모음..--;;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말입니다. )
대신 90살 생일 기념으로는 텔레그라프에 나온 막내 누나 이야기를 써야겠습니다.--;;;
영국의 필립공 : 에든버러 공작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 공 (Prince Philip)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왕이 되기전 잘생긴 해군 장교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해군 중위인 필립 마운트배튼이었죠. 2차대전에 영국 해군으로 참전하기도 한 이 사람은 단순한 영국 시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영국 시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왕족이었던 조상과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와 사촌이었던 그리스 국왕 덕분이었습니다.1
평생 Pirnce 칭호에 익숙했던 이 사람은 원래 그리스 왕족으로 태어났습니다. 필립공의 아버지는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였고, 어머니는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였죠.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리스 국왕의 아들이었지만, 또 덴마크 국왕의 손자이기도 했습니다. 안드레아스 왕자의 할아버지가 바로 유명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였기때문이죠.필립 공은 부계로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후손이었지만, 모계로는 더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었습니다. 필립공의 어머니였던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의 딸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인 앨리스 공주의 외손녀였습니다.
이때문에 필립공은 여왕과 부계로 칠촌, 모계로 팔촌관계였고, 이런 관계는 필립공이 결혼할때 여왕과 너무 가까운 친척사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필립공의 부모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둘다 필립 드 라즐로의 그림
그리스는 근현대사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나라였으며 필립공 역시 이런 불안정함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코르푸 섬에 있는 집에서 태어났는데, 이때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왕자는 전선에 나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직후 외할아버지인 밀퍼드헤이븐 후작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유아시절 필립공은 가족과 함께 그리스를 떠나 망명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결혼하기 전까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죠
필립공은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여러개의 언어로 이야기하던 삶을 언급했습니다. 그와 누나들은(필립공 위로 누나가 네명이었습니다) 대화를 할때 여러개의 언어를 섞어서 말했는데 그들은 한 언어로 대화를 시작하다가 그 언어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생각나는 언어의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언어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다가 중간에 프랑스어, 그리스어를 거쳐 독일어로 끝나는 식이었죠. 이것은 필립공의 불안정한 삶을 잘 이야기해주는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 왕족들은 여러개의 언어를 하는것이 일반적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태어났지만, 그리스에서 살지 못하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오가면서 살았던 필립공과 그 가족들이 여러개의 언어를 쓰게 된것이 아닐까 합니다.
필립 공의 어린시절을 불행하게 만든것은 정치적 상황만이 아니었습니다. 필립공의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리스의 쿠데타 이후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우울한 삶을 살았으며 사교계의 환락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리스 군인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안드레아스 왕자에게 나라에서 쫓겨난 것은 큰 충격이었으며 그리스로 다시 돌아갈수 없다는 것은 큰 좌절이었죠. 필립공의 어머니 앨리스 왕자비 역시 편안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두번의 망명과 혁명으로 죽은 이모 가족들(러시아의 니콜라이2세가족들)과 불안한 정치상황으로 남편의 목숨은 위협받았으며 자신과 아이들의 안전까지 보장받지 못하다가 간신히 그리스에서 빠져나온 상황등등은 앨리스를 우울증에 빠져들게 했으며 우울증이 심해져서 결국 요양원에 보내지게 됩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간 직후, 누나들 모두는 서둘러 결혼했고 (어머니의 상태가 알려진다면 공주들이 남편감을 구할수 없을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왕족들은 여러조건을 따졌는데, 엄마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은 나름 큰 흠중 하나였습니다.) 필립공은 누나들의 집과 외가에 맡겨졌습니다. 필립공을 돌본 사람은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마운트배튼과 둘째 누나인 테오도라였습니다.
필립공의 외할머니
헤센의 빅토리아
밀포드헤이븐 후작부인 빅토리아 마운트배튼
....역시나 필립 드 라즐로 작품
필립공은 어린시절 독일에서 자주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그가 후에 "나치"와 연관되어있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당시 독일 대부분은 나치의 영향력에 들었으며 그의 매형인 헤센-카셀의 크리스토프는 매우 유명한 나치였습니다. (막내 누나의 남편) 하지만 필립공은 주로 둘째 누나와 그 매형이 살았던 곳에서 지냈습니다. 필립공의 둘째 누나인 테오도라는 바덴가의 수장이었던 베르톨트와 결혼했습니다. 바덴가문은 나치에 비협조적이었다고 알려져있었죠. 필립공은 이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던 곳의 독일인들은 "나치에 그렇게 열광하지 않았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치가 득세하자 필립공은 외가가 있는 영국으로 왔고, 학교를 졸업한후 외가의 전통에 따라 해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때쯤 병에서 회복되었지만, 그리스에서 아들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앨리스 왕자비는 언젠가 자신의 아들이 그리스로 돌아와서 왕족으로 의무를 수행해야한다고 여겼고 이를 위해 자신이 그리스에 머물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드레아스 왕자 역시 살아있었지만, 더이상 부인과는 함께 지내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좌절을 가져다준 그리스로 돌아가는것을 포기하고 사교계의 즐거운 삶을 살게 되죠. 가족들과도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지만, 필립공은 어린시절 자신과 자주 함께 있으려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왕자의 빚은 후에 필립공에게 큰 부담이 되긴했습니다.)
2차대전때 필립공은 외국 왕족이었지만, 영국 해군으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것은 영국인들의 눈에는 그가 중요한 "신랑감"으로 인식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결혼은 외삼촌인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잘생긴 조카를 영국 왕위계승자의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고 그리스 왕실 역시 이를 지지했습니다. 둘이 만날 기회를 마련한 인물중에는 엘리자베스 공주의 숙모이자 필립공의 사촌인 켄트 공작부인 마리나도 있었죠.
그리스의 마리나 공주
켄트 공작부인 마리나
역시나 필립 드 라즐로 그림
...은근슬쩍 필립 드 라즐로 팬질중임..-0-;;;;
이런 노력으로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랑에 빠졌지만,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였던 왕비는 이 결혼을 결사 반대했다고 전해집니다. 조지 6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왕비는 인종 차별은 하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인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왕비는 독일인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합니다. 왕비에게 독일인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악한 존재였으며 누나들이 모두 독일인과 결혼한 필립공 역시 왕비에게는 독일인과 다름없었습니다. 왕비의 반대 뿐만 아니라 필립공이 그리스의 왕위계승자라는 사실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필립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혼담이 이야기되던시기 필립공의 왕위계승순위는 세번째였습니다. 사촌인 게오르기오스1세와 그의 동생인 파울로스가 있었고 혼담이 시작될때는 파울로스의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백부인 게오르기오스 왕자와 그 아들이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게오르기오스 왕자의 아들은 귀천상혼했고 이때문에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기에 필립공이 세번째가 된것이었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두번째였으며 파울로스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제1왕위계승자가 될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필립공에게는 다행히도 파울로스에게는 아들이 태어났고 필립공은 안심하고 왕위계승권을 포기할수 있었죠. 그는 그리스 왕족 지위와 시민권을 포기하고 영국의 시민인 해군 중위 필립 마운트배튼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영국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하기 위한 절차중 하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식은 1947년 11월 20일 치뤄집니다. 이때 장인인 조지 6세는 그에게 에든버러 공작과 그외다른 작위들을 수여합니다. 그래서 이때 이후 그는 에든버러 공작 필립이라고 불리게 되고, 그의 부인이자 왕위계승자였던 엘리자베스 공주는 에든버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공주라고 불렸습니다. 영국의 여왕이 될 사람의 결혼식이었기에 수많은 유럽의 왕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에 초대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로 필립공의 누나들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반 독일 감정이 심했는데 필립공의 누나들 모두가 독일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이 사실을 덮어두는것으로 무마하려했습니다. 이때문에 누나들은 결혼식에 초대받을수 없었죠. 이때 누나들이 좀 맘상했다고 합니다만 곧 다시 화해하게 됩니다.
필립공은 결혼한 후에도 영국 해군 장교로 살았고, 엘리자베스 공주는 남편을 따라 임지를 따라가는등 장교부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필립공의 삶을 바꾸게 된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장인인 조지 6세가 사망한것이죠. 이전까지는 비록 아내가 왕위계승자라고 하더라도 그는 스스로의 직업이 있었고 가장으로써 아내와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전통적인 삶"을 살고 있었죠. (...빅토리아 시대쯤이라고 이해시면 됩니다. 유럽도 그렇게 빨리 바뀐것이 아니라죠..) 하지만 아내인 엘리자베스가 국왕이 되면서 모든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아내의 "신하"였으며 모든 자리에서 아내의 뒤를 따라야했죠.
이에 대해서 어머니였던 앨리스 왕자비는 굉장히 우려했다고 합니다. 이제 아들이 독립된 직업을 가지지도 못하며 아내에게 종속된 삶을 잘 견뎌낼수 있을까 하는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필립공은 장인이 죽은후 자신의 경력이 "끝났다"라고 언급했습니다.
1953년 대관식때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필립공은 꽤나 좋은 평가를 받은듯 합니다. 여왕의 숙모이자 필립공의 사촌이었던 마리나는 필립공에 대해서 너무 나서지도 않고 ,너무 죽어지내지도 않는 적절한 선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뭐 이런저런 가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전 개인적으로 필립공은 적당히 여왕의 남편이라는 어려운 자리를 잘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뭐 영국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듯 하구요.
손자 결혼식때의 여왕 부부
자료출처
1.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2.텔레그라프 기사 :Prince Philip at 90, ITV1.review
http://www.telegraph.co.uk/culture/tvandradio/8533939/Prince-Philip-at-90-ITV1-review.html
3.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 필립공은 조지6세의 허락으로 영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사실로 법적으로 그는 이미 영국국민이 될 자격이 있었는데, 조지1세가 영국의 국왕이 될때 의회는 조지1세의 어머니인 하노버의 선제후비 조피와 그 후손들이 영국의 시민권을 갖는다는 법령을 통과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조지1세의 후손인 필립공에게는 법적으로 영국 시민권을 얻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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