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1) 헨리1세의 딸 모드 (마틸다 황후)

엘아라 2011. 5. 31. 06:3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여성 왕위계승자 시리즈를 나라별로 쓰려하고 있었다죠. 원래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스웨덴쪽을 쓰려했는데 여기 골치아파서 (어느시대까지 올라가야하나 고민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이름 읽는것이 귀찮아서...) 그냥 일단 써놨었던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를 확장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이거 끝나면 스코틀랜드도 해보고, 스웨덴도 해보고 스페인도 해보고 그럴렵니다..아하하하..-0-;;;;

 

사실 프랑스 혁명 전쟁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데 마르소 장군 전기 읽다가 전쟁 이야기에 지쳐서 말입니다. 마르소 장군 전기 다 읽으면 다시 혁명전쟁이야기를 하던가 말던가 하죠..ㅠ.ㅠ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1) 헨리 1세의 딸 모드, 마틸다 황후

 

 

 

마틸다 황후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여영주

헨리 2세의 어머니

 

잉글랜드의 첫번째 여성 왕위계승자는 헨리 1세의 딸이었던 모드(마틸다)입니다. 마틸다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의 공주였던 에디트로 결혼후에 아마도 마틸다(모드)라고 불렸을듯합니다.

 

 

 

 

헨리 1세와 그의 부인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마틸다는 일곱살이었던 1109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5세와 약혼합니다. 그리고 8살이 되던 1110년 독일로 보내집니다. 당시 어린 신부들은 시집으로 보내져 교육을 받던것이 일상이었고 마틸다 역시 남편이 될 하인리히 5세의 아내로 교육을 받기 위해 보내진것이었죠. 당시 하인리히 5세는 독일의 왕이었으며 마틸다는 그의 약혼녀로 독일의 왕비로 대관을 했습니다.

1114년 12살이었던 마틸다는 하인리히 5세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마틸다의 나이는 중세 유럽에서 결혼 가능한 최소한의 나이 정도로 생각됩니다. 왜냐면 당시는 평균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20대 후반이면 벌써 중년의 나이에 속한다고 여길정도였다고 합니다.

결혼후 마틸다는 제국을 순례하는 남편 하인리히 5세와 동행했으며, 남편의 부재시에는 섭정으로써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인리히 5세는 1125년에 사망했습니다. 마틸다와 하인리히 5세 사이에 자녀는 없다고 알려져있지만, 어린시절 죽은 아들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하인리히 5세와 마틸다 황후

 

남편이 죽은후 마틸다는 잉글랜드로 돌아왔는데 당시 마틸다의 아버지 헨리 1세에게 남은 적자는 마틸다 한명 뿐이었습니다. 사실 마틸다에게는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120년 마틸다의 남동생인 윌리엄이 익사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후계자가 죽은후 서둘러 재혼했지만, 적자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마틸다의 아버지인 헨리 1세는 딸을 앙주 백작의 후계자이자 멘 여백작의 후계자였던 앙주의 조프루아와 결혼시킵니다. 이것은 노르망디와 앙주 사이의 평화를 위한것이기도 했죠. 플랜태저넷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던 조프루아는 매우 잘생겼으며 교육도 잘 받았고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헨리 1세는 흡족해했다고 합니다. 둘은 조프루아의 아버지인 풀크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전 결혼했습니다.

 

 

앙주의 조프루아

마틸다의 두번째 남편

 

조프루아와 마틸다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으로 둘 사이는 매우 불행했습니다. 마틸다는 조프루아보다 일곱살이나 많았으며, 또 자신이 황후였던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때문에 겨우 어린 "백작"인 새 남편을 무시했죠. 조프루아 역시 이런 오만하고 나이 많은 아내에게 화를 내면서 다른 여성들과 수많은 연애질을 합니다. 비록 부부사이는 최악이었지만, 마틸다와 조프루아는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결국 둘 사이에 세명의 아들이 태어납니다. 첫째 아들은 1133년에 태어난 앙리로 그는 후에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됩니다. 둘째아들은 낭트 백작인 조프리로 1134년 조프리를 낳다가 마틸다는 거의 죽을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내는 푸아투 백작인 기욤이었습니다. 마틸다의 아들들은 모두 황후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피츠엠프레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헨리 1세는 두번째 부인사이에서 적자를 얻을수 없자 마틸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귀족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죠. 하지만 중세 시대는 다른 시대들 처럼 여성의 지위가 남성들보다 높지 않았고 귀족들은 여성 통치자를 용납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헨리1세의 딸인 마틸다가 아니라 헨리 1세의 조카이자 정복왕 윌리엄의 외손자인 블루아의 스티븐(에티엔 드 블루아)를 왕위승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국왕

블루아의 에티엔

 

1135년 헨리 1세가 사망하자 귀족들은 마틸다를 헨리 1세의 후계자로 인정하겠다는 맹세를 깨고, 스티븐을 왕위계승자로 세웁니다. 스티븐은 잉글랜드로 들어가서 권력을 장악합니다만, 마틸다와 그녀의 남편인 조프리는 노르망디로 들어가서 노르망디를 장악합니다. 그리고 마틸다는 나머지 상속영지인 잉글랜드를 얻으려하죠. 마틸다는 스티븐에 대항해서 잉글랜드를 공격했으며 몇차례 시도 끝에 잉글랜드를 장악하고 런던에 입성합니다. 마틸다는 Queen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단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의 통치자라는 의미로 lady of England라는 칭호를 얻게 되죠. 하지만 마틸다는 매우 오만했고 이때문에 귀족들은 마틸다에게 등을 돌렸고 "무능한"이라는 평가를 받는 스티븐을 다시 지지합니다.

1144년 마틸다의 남편인 조프루아가 노르망디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자,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다시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마틸다는 잉글랜드 내 지지 세력이었던 이복오빠 글로스터의 로버트가 사망하자 잉글랜드에서 노르망디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148년 아들인 앙리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루앙으로 은퇴합니다.

 

마틸다의 아들 앙리는 어머니로부터 노르망디와 잉글랜드의 왕위계승권을 이어받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16살이 된 앙리는 잉글랜드로 갔고, 외할머니의 오빠였던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1세로부터 기사작위를 얻습니다.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거만한 마틸다보다는 무능력한 스티븐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그의 무능력은 손쓸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귀족들은 다시 마틸다의 아들인 앙리에게 호감을 가지게 됩니다. 스티븐은 처음에는 앙리와의 전쟁을 치룰려고 했지만 1153년 스티븐의 아들이자 후계자가 사망하자 결국 스티븐은 자신의 후계자로 앙리를 인정하게 됩니다.

 

 

마틸다의 아들 부부

헨리 2세와 그의 부인인 엘레오노르 다퀴텐

 

마틸다는 루앙으로 은퇴한후 지혜와 겸손함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 시작합니다. 잉글랜드에서 뼈아픈 경험이 "거만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던 마틸다를 변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후 사람들은 마틸다를 존중했으며 특히 아들인 앙리는 어머니의 조언을 늘 새겨들었다고 합니다.

마틸다는 아들이 없는 동안 노르망디 공작령의 섭정으로 통치를 하기도 했고 앙리가 동생인 조프루아와 싸울때 둘 사이에 중재를 맡기도 했습니다. 또 토마스 베켓과 아들인 헨리 2세와의 사이가 나빠졌을때도 둘 사이를 중재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토마스 베켓과 헨리 2세

 

마틸다는 1167년 사망했으며 그녀의 묘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태어나면서 고귀했고, 결혼으로 더욱 고귀해졌으며, 자녀를 통해서 가장 고귀해졌다. 헨리의 딸이자 부인이자 어머니인 마틸다 여기 잠들다 (Great by Birth, Greater by Marriage, Greatest in her Offspring: Here lies Matilda, the daughter, wife, and mother of Henry.)"

 

마틸다 황후

잉글랜드의 모드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앨리슨 위어, 곽재은,루비박스,2011)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