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주연배우 파워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도 the king's speech 개봉이 잡혔더라구요
게다가 아카데미상도 받아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살짝 콜린퍼스 팬입니다. (매일 나이 들어서 스웨덴 국왕처럼 되지 말라고 빌고 있을정도라죠..--;;)
솔직히 영 빅토리아 개봉을 안해서 이것도 개봉 안할줄 알고 그냥 느긋하게 있었는데--;;;;
개봉하니까 개봉전에 프리뷰로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잠시 알아볼까합니다.
위키에 언어치료사까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주연세명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왕비, 그 언어치료사분(아직까지 이름 모름)을 해볼까합니다.
전 조지 6세 이야기를 하려면 쌍으로 엘리자베스 왕비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죠. 영국에서는 퀸 마더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불렸던 이분에 대한 전기도 몇권있는데, 제가 휴고 비커스한테 살짝 맛이 갔을때 휴고 비커스 책을 지를뻔하기도 했죠. (안지른 이유는 아마존 평이 너무 해서 말입니다...매일 차마시고 어느옷입고 어디갔다..라는 이야기밖에 안한다고 하더라구요..ㅎㅎㅎ)
영국의 조지 6세
조지 6세
(요크 공작 앨버트)
George VI
(Albert Frederick Arthur George; 14 December 1895 – 6 February 1952)
영국의 조지 6세는 영국의 조지 5세와 그의부인인 메리 왕비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났을때는 이미 형인 에드워드가 있었죠. 세례명은 앨버트 프레드릭 아서 조지로 증조할아버지인 앨버트 공의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이름이 민감한데 손자들이 사랑하는 남편 이름을 안쓴느데 굉장히 섭섭해하는 것을 가끔 보여주기도 합니다.
조지 5세(당시 요크 공작)의 둘째아들이 태어났을때, 이 날은 빅토리아 여왕이 평생 우울해 한날인 앨버트공의 기일인 12월 14일이었습니다. 이 날이 더 우울한 이유는, 여왕의 둘째딸인 앨리스 공주 역시 이날 사망했기에 이 날은 여왕의 슬픔을 가중시키는 날이었죠. 이때문에 새로 태어난 아이의 할아버지인 웨일즈 공( 후에 에드워드 7세)는 아들에게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앨버트로 하는것은 여왕의 슬픔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려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여왕은 새 증손자의 이름을 앨버트로 짓는다는 소리에 이 슬픈날 기쁜 이야기라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여왕님 손녀들에게 자기 이름 안붙인다고 삐지는 모습을 종종 볼수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와 같은 애칭인 "버티(Bertie)"라고 불렸습니다.
조지 6세의 부모
조지5세와 메리 왕비
앨버트는 어린시절부터 병약했는데,이는 아주 어린시절 보모의 잘못된 양육때문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첫 모보였던 여성은 왕위계승자인 에드워드에게는 매우 잘했지만, 둘째아들인 버티는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그 결과 버티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위가 안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때 보조 보모였던 '랄라'라는 애칭의 샬럿 빌은 수석보모의 행동에 매우 충격을 받았고, 이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수석보모가 정신적인 질환때문에 버티를 학대했다는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랄라는 이후 수석 보모가 되었고, 왕가의 아이들이 그녀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랄라는 앨버트의 막내 동생이자 간질 환자였던 조니를 가장 사랑했다고 합니다.)어린시절 앨버트는 "잘 싸우며 잘 운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말을 더듬었으며 왼손잡이였다고 합니다. 조지 5세와 메리 왕비는 매우 엄한 부모였는데,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으로 글을 쓰라고 강요받았으며, 말을 더듬는다고 늘 혼났다고 합니다.
형 에드워드와 동생 메리와 함께
왼쪽에 킬트 치마 입은 소년이 에드워드 8세고 그 옆의 세일러 복을 입은 소년이 조지 6세입니다.
앨버트는 아버지처럼 해군이 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고 해군 장교로 복무합니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영국 해군으로 전투에 참전하기도 합니다만, 늘 문제가 되었던 위때문에 전투에 더이상 참여하기 못합니다. 그후 영국 공군이 창설되면서 공군의 참모로 근무했습니다.
1919년 영국 공군 행사중
맨 왼쪽이 조지6세입니다.
전쟁이 끝난후 그는 캠브리지로 가서 역사학을 공부합니다. 1920년 요크공작이 된 후 아버지를 대신해 여러가지 공적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중 하나가 여러 공장등이나 광산등 산업에 관련된 일을 했으며 이때문에 'Industrial Prince"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크공작은 형인 웨일즈 공보다 빛나지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더 수줍음이 많고 말을 더듬었던 그에게 공적 생활은 무척이나 힘든것이었습니다.
1921년 앨버트는 스코틀랜드 귀족가문 출신이었던 레이디 엘리자베스 보위스-라이언에게 청혼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왕자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앨버트는 어머니 메리 왕비에게 레이디 엘리자베스 외에는 다른 여성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메리 왕비는 아들의 마음을 뺏은 레이디 엘리자베스를 만나보죠. 메리 왕비는 레이디 엘리자베스를 만난후 "버티가 그녀와 결혼한다면 행복할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22년 앨버트는 다시 한번 레이디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합니다만 역시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1923년 결국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청혼을 수락했습니다.
1927년의 요크 공작 부부
말을 더듬었기에 공적 생활(특히 연설)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앨버트는 조용한 삶을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지 5세에게는 왕족으로써의 의무가 우선이었으며, 어느 아들들에게도 이는 적용되는 것이었죠. 특히 1925년 영국 제국 박람회에서 연설을 보면 그가 말을 더듬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이후 요크 공작은 라이오넬 로그라는 언어치료사를 고용했으며, 연습을 통해 말을 더듬지 않고 연설을 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라이오넬 로그
조지 6세의 언어 치료를 맡았던 언어 치료사
요크 공작 부부에게는 두명의 딸이 태어나는데 현 영국 여왕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동생인 요크의 마거릿 로즈가 태어나죠. 스캔들을 일으키던 큰아들 웨일즈공과 달리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가족과 함께 착실한 삶을 살던 요크공작을 조지 5세가 좋아했고 심지어 큰아들에게 결혼하지 않고 죽어서 왕위가 "릴리벳에게 가길 바란다"라고 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릴리벳은 현 영국 여왕의 애칭입니다. 첫 손녀였던 엘리자베스 공주를 조지6세와 메리 왕비가 끔찍히 아꼈다고 합니다.)
할머니 메리 왕비와 함께 있는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거릿 공주
요크 공작의 형이었던 웨일즈 공은 오래도록 결혼하지 않고 여러 여성들과 스캔들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스캔들에 치를 떨며 "건전한 왕실"을 외치던 조지 5세에게는 너무나 못마땅한 일이었죠. 특히 웨일즈공이 사귀던 미국 출신의 월리스 심프슨이라는 여성에 대해서는 매우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죽은후, 형인 에드워드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하지만, 곧 결혼문제에 직면합니다. 결혼하고 싶어했던 월리스 심프슨은 두번이나 이혼한 여성으로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수장이 이런 여성과 결혼하는것은 교회도 내각도 용서할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제국의 총리들이 모두 모여서 이에 대해서 토론을 했는데 반대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은 월리스가 누군지 몰랐다던가 아니면 무슨일을 토론하는곳인지 몰랐다고 하던가 그랬댑니다.) 에드워드 8세는 "귀천상혼"정도로 타협하길 원했지만, 강한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퇴위를 결정합니다.(쉽게 말하면 현재 웨일즈 공과 콘웰 공작부인 정도의 타이틀을 원했을듯합니다. 뭐 찰스가 국왕이 되더라도 콘웰 공작부인이 Queen이라는 칭호를 못쓸듯하거든요.)
에드워드 8세
형의 퇴위로 결국 요크 공작 앨버트는 국왕이 됩니다. 할아버지 에드워드 7세처럼 앨버트 역시 독일식이름이라고 여겨졌던 "앨버트"라는 이름 보다는 영국 국왕들의 이름이었던 "조지"를 왕명으로 선택했고 그는 조지6세가 됩니다.
조지 6세가 국왕으로 빛이 난 시절은 바로 2차 세계대전때였습니다. 전쟁이 터진후 국왕은 거의 매일 폭격당하다시피 하는 런던을 떠나지 않고 머물렀으며, 왕비와 공주들 역시 국왕곁에 있었죠. 그리고 국왕과 왕비는 폭격당한 여러곳을 방문해서 늘 국민들을 위로했고 국왕 부부는 국민들의 영웅이 됩니다. 이후 영국 국민들은 유럽 승전일날 버킹엄 궁전앞에서 "We want the King"을 외칠정도였다고 합니다.
2차대전중 엘레노어 루즈벨트와 함께 있는 국왕 부부
...이사진 보고 순간 엘리자베스 왕비를 딸인 여왕으로 착각했습니다.--;;;
여왕님 젊을때는 아부지 닮았는줄 알았더니 어머니를 많이 닮긴 닮았었군요.
전후 영국 제국은 해체되었으며, 제국에 속했던 각 나라들은 영국 국왕을 상징적 수장으로 두는 영 연방에 가입할수 있게 되었죠. 대부분의 나라들이 영 연방에 가입햇으며, 조지 6세는 첫번째 연방의 수장이 됩니다.
조지 6세는 전후 폐암에 걸렸는데, 전쟁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담배를 너무나 많이 피웠고 이때문에 암에 걸린것이었죠. 건강이 악화되면서 왕위계승자였던 엘리자베스 공주가 공적업무를 점차 많이 맡게 됩니다.
1952년 2월 5일 조지 6세는 잠자던중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다음 카페 로얄 하우스 (http://cafe.daum.net/yulia0818) 율리아님의 글 "궁정에서의 어린시절"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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