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영국 왕실의 대부모 이거 마저 쓸려고 그림 찾다가...-0-;;
그만 이상한곳으로 빠졌습니다.....
원래는 조지3세 형제들에 대해서 해야하는데..글을 읽다가 보니 재미붙어서-0-;;;
하노버 가문의 전체를 읽고 있군요...
하노버의 선제후(정식명칭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였던 게오르그는 어머니인 조피 선제후비를 통해 영국의 왕위계승권을 얻었습니다. (...제글 영국의 여성왕위계승자들을 참조해주세요.-0-;;)
그는 독일의 군주로 영국에는 이상적인 군주는 아니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선입견이었던 우둔한 인물은 아니었다죠. 중년을 넘어서서 영국의 왕위를 얻은 그는 나이만큼이나 노련한 인물이었습니다. 영국내에서 그가 하노버에서처럼 통치할수 없으리라는것을 알았기에, 의회 권력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이때문에 영국은 수상이 정부의 우두머리가 되는 내각 책임제가 발달하게 되죠. 널리알려진 "영어를 못해서 통치를 못했다"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고, 국왕 스스로가 영국 의회의 눈치를 봤다는 편이 더 옳습니다. 그가 왕위계승을 할때 영국은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는데, 특히 스튜어트 왕가의 고향이었던 스코틀랜드의 반발이 심했죠.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경제 재제를 가하면서 압박을 가했습니다. ^^* 어쨌든 앤 여왕이 죽은후 의회가 권력을 잡고 왕위계승자에 대해서 결정할것을 알았던 조지1세는 섭정단이 누가 될것인지 파악해서 그들과 미리 친분을 도모했다고 합니다. ^^*
하여튼 노련한 정치가인 조지1세는 부인과는 사이가 극악이었고, 결국 부인과 이혼한후 부인을 성에 유폐시킬정도였습니다. 그럼 그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영국의 조지1세
하노버의 선제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그 루드비히
영국의 조지1세는 원래 영국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막내아들이었기에 물려받을 재산이 거의 없었죠. 어머니는 팔츠의 공녀이자 영국 국왕의 외손녀였지만, 역시 30년전쟁 와중에 가문이 거의 몰락하다시피했다가 간신히 회복되는 중이었죠. 조지1세가 태어났을때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게오르그 루드비히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조지1세의 어머니
하노버의 선제후비 조피
팔츠의 조피
그녀의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로 영국의 제임스1세의 딸이었죠.
하지만 그가 태어났을때, 그는 가문전체의 유일한 남성후계자였습니다. 세명의 백부들은 모두 적자들이 없었고, 그는 장남이었죠.이후 동생들이 태어났지만, 백부들에게서는 남성후계자가 한명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백부중 한명이었던 게오르그 빌헬름은 정부에게서 딸이 한명있었을 뿐이었죠.결국 가문은 장자상속을 조건으로 가문의 모든 영지를 게오르그 루드비히에게 상속시키기로 합니다.
하지만 백부였던 게오르그 빌헬름은 딸인 조피 도로테아를 위해 정부였던 여성과 정식으로 결혼했고, 비록 영지는 딸에게 물려줄수 없었지만(살리카법으로 딸들은 작위를 물려받을수는 없었기에 영지 역시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영지가 아닌 재산들은 딸에게 물려줄수 있게 되었고, 조피 도로테아는 아버지가 죽은후 막대한 상속을 받게 될것이었습니다.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조지1세의 사촌이자 부인
이때문에 조피 도로테아는 중요한 신부감중에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조피 도로테아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가 왕족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었죠. 한쪽이 왕족이고 다른한쪽신분이 귀족일경우 귀천상혼으로 인정받아서 계승권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조피 도로테아의 경우 딸이었기에 계승권과는 무관해서 상관없었지만, 그녀와 결혼했을때 자녀들의 지위가 애매해질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가문의 재산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는것을 막기 위해 결국 조피 도로테아와 조지1세는 정략결혼하게 됩니다.둘은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특히 조피 도로테아는 조지1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텼다고 합니다.
조지1세의 어머니인 조피 선제후비역시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며느리의 어머니가 신분이 낮은데다가, 조피 도로테아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틴것이 밉게 보였을듯합니다. 조피는 조카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트(오를레앙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들이 재산때문에 탐탁지 않은 여성과 결혼한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한 둘은 매우 불행했는데, 처음부터 서로 못마땅했었던 부부는 결혼한후에도 나아지지 않았죠.
특히 둘째 아이인 조피 도로테아가 태어난후 부부는 별거상태에 이릅니다. 조지1세는 오래도록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 정부 에렌가르트 멜루시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를 만났고, 조피 도로테아 역시 스웨덴 출신의 백작인 필리프 크리스토프 폰 쾨닉스마르크와 사랑에 빠집니다. 조피 도로테아와 필리프는 어린시절부터알고 지냈는데, 처음만났을때 이미 둘은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둘이 다시 만났을때, 궁정에서 조피와 필리프 사이를 알았지만 둘의 관계가 플라토닉한 관계라고 여겼기에 처음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피의 시아버지였던 하노버의 선제후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가 둘의 사이를 알게 되었고, 스캔들을 원치 않았던 그는 둘이 헤어지길 원합니다. 그는 필리프를 전장으로 보내기로 하죠. 하지만 그는 도망쳐서 다시 하노버로 돌아왔고, 결국 선제후는 그를 추방합니다.
조지1세의 정부
에렌가르드 멜루시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
조피 도로테아와 스캔들이 있었던 스웨덴 백작
필리프 크리스토프 폰 쾨닉스마르크
이 문제로 조피 도로테아와 조지1세는 대판 싸웁니다. 조지1세는 스캔들을 일으킨 부인을 비난했고, 조피 도로테아 역시 지지 않고 정부와 함께 사는 조지1세를 비난했죠. 둘의 싸움은 격해졌고, 말로 부인을 못당하자 조지1세는 부인을 때렸고, 시중드는 사람들이 간신히 그를 말렸다고 합니다.=-=;;
결국 조피 도로테아는 참지 못하고 필리프와 야밤도주할 계획을 세웁니다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사건으로 조지1세는 조피 도로테아와 이혼합니다.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을뿐만아니라-..자기도 마찬가지면서..- 야밤도주하려고 해서 남편을 저버렸다는 이유였습니다. 백부이자 조피 도로테아의 아버지와 합의하에 조피 도로테아를 첼레에 있는 알덴성에 유폐시켰고,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했으며 그녀가 재혼하는것도 심지어 성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조피 도로테아와 두 아이
영국의 조지2세와 하노버의 조피도로테아(후에 프로이센의 왕비, 아들이 유명한 프리드리히 대왕입니다.)
조피 도로테아는 30년 이상 알덴성에 유폐된채 살았습니다. 그동안 조지1세는 하노버의 선제후가 되었고, 나아가서 영국의 국왕이 되었죠. 그리고 정부였던 멜루시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와 귀천상혼했을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조피 도로테아는 죽기 직전 남편에게 무덤에서도 저주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조지1세는 런던이나 하노버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것(상복을 입는것)을 금했다고 합니다. 자신과 조피 도로테아의 딸인 조피 도로테아가 결혼한 프로이센 궁정에서 상복을 입었다는 소리에 당황했다고도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도...3.고조부모 (0) | 2010.12.06 |
---|---|
버마백작부인 에드위나 마운트배튼 (에드위나 애쉴리) (0) | 2010.09.14 |
영국 왕실의 대부모들...18.조지3세의 아들과 손주들의 대부모들(1) (0) | 2010.05.18 |
알바니의 찰스 에드워드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카를 에두아르트 (0) | 2010.04.10 |
영국 왕실의 유전병 : 포르피린 증 (0) | 2010.03.30 |